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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트럼프발 관세 공세에 속수무책…BNP “재정·통화정책 여력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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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트럼프발 관세 공세에 속수무책…BNP “재정·통화정책 여력 거의 없어”

이자벨 마테오스 이 라고 BNP파리바 수석 이코노미스트. 사진=X이미지 확대보기
이자벨 마테오스 이 라고 BNP파리바 수석 이코노미스트. 사진=X
일본 경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관세 공세로 인해 중대한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이를 방어할 수단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6일(이하 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이자벨 마테오스 이 라고 BNP파리바 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이나 통화 정책의 여력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일본은 정책적인 뒷받침 없이 불확실한 시기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BNP는 일본의 재정정책 여력을 가로막고 있는 핵심 요인으로 고질적인 국가채무를 지목했다. 일본 재무성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 정부의 채무 잔액은 사상 최대인 1320조 엔(약 1252조7600억원)에 이르렀다.

일본은 최근 미국으로부터 자동차·자동차 부품,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받았으며 미국이 ‘상호주의 관세’를 명분으로 모든 수출품에 평균 24%의 관세를 매기고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국제무역투자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기준 약 17%였으며 최대 수출 대상국은 미국, 그다음은 중국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2024년에도 이어졌다.

이같은 관세 여파로 일본은행은 2025·2026 회계연도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으며 세계 무역의 “극도로 높은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일본의 실질 GDP는 2024년 한 해 동안 0.1% 증가에 그쳤고 올해 1~3월에는 소비 위축 탓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에 대기업의 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이 소비를 짓눌렀다.

일본은행은 현재 기준금리를 0.5%로 유지하고 있으나 추가 금리 인상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마테오스 이 라고는 “일본은행은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는 추가 인상을 유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미국 신용등급이 이달 초 무디스에 의해 한 단계 강등된 가운데 마테오스 이 라고는 “일본과 프랑스도 신용등급 하락 위험이 있다”며 “양국 정부 모두 재정건전성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보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손실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내 정치권도 물가 상승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오는 7월 열리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국민민주당은 소비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으나 시게루 이시바 일본 총리는 추가 국채 발행을 통한 세수 보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닛케이와 TV도쿄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달 기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조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관세 협상을 담당하는 아카자와 료세이 수석대표는 미국 현지에서 진행된 3차 협상 이후 “국익을 해치면서까지 서두를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미국산 쌀에 대한 관세에 비판적이지만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핵심 지지층이 농민인 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 협상단은 당초 모든 관세를 철폐하는 전략을 폈으나 최근에는 일부 인하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테오스 이 라고는 “미국과 일본이 상호 제안서를 주고받은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선거 전까지는 틀조차 마련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영국과의 협상에서 자동차와 철강 산업을 우선시한 것처럼, 일본에도 비슷한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이 내다봤다.

이번 달 초 미국은 영국산 자동차·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철폐 또는 인하하고 영국은 미국산 쇠고기 관세를 없애는 데 합의했다. 당시 일부 영국 언론은 농업을 희생한 타협이라고 보도했다.

마테오스 이 라고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제품 구매와 투자 약속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