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글로벌이코노믹이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400조1675억 원으로, 2020년 말(483조5523억 원)과 비교해 오히려 줄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86조2682억 원에서 약 186조3686억 원으로 급등했다. 최근 3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하이닉스의 6배에 달했지만, 현재 격차는 2.1배 수준까지 좁혀졌다.
특히 2022년 말 삼성전자가 반도체 업황 침체 여파로 약 330조 원대까지 내려앉을 때 하이닉스는 약 54조 원으로 추락했으나, 이후 AI(인공지능) 투자 수요 확대에 따른 HBM(고대역폭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반등 폭이 삼성전자를 압도했다. 지난해 말 시총 126조5996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불과 8개월 만에 약 60조 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의 패러다임 전환이 하이닉스 시총 랠리를 견인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낸드·시스템 반도체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집중하는 동안, 하이닉스는 AI 서버 핵심 부품인 HBM에 사활을 걸면서 투자자들에게 'AI 순수 플레이어'로 부각됐다"고 말했다.
신규섭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SK하이닉스에 대한 낙관론이 뚜렷하다"며 "HBM 시장 선도에 대한 프리미엄이 시총 급등으로 직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반도체 수요 확대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하면서 삼성전자와의 '시총 격차 좁히기'가 본격화됐다"며 "단기적으로 투자자들의 시선은 하이닉스 쪽에 더 쏠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삼성전자는 여전히 범용 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압도적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AI용 HBM 경쟁에서 주도권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며 "향후 삼성의 전략 변화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종욱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밸류에이션은 안정적인 반면, 하이닉스는 성장 기대치가 크게 반영되고 있다"며 "향후 업황 개선 국면에서 두 회사의 주가 탄력성이 더욱 차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삼강 체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이 글로벌 HBM 공급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최근 엔비디아·AMD 등 AI 칩 설계 기업이 GPU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HBM 수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블랙웰' 공급망에 하이닉스가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것이 시총 급등의 촉매제가 됐다"며 "향후 AI 서버 확산 속도가 하이닉스의 몸값을 좌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하이닉스 쏠림을 뒷받침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외국인은 하이닉스 주식만 1조7053억 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조5167억 원치 팔아치웠다. 글로벌 자금이 'AI 반도체 순수 플레이어'로 하이닉스를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뉴욕 소재 한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여전히 거대한 기업이지만, 단기 성장 스토리 측면에서는 하이닉스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12단 적층 HBM3E를 개발해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 TSV(실리콘 관통 전극) 공정을 통한 초고속·저전력 구현이 가능해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HBM3E 제품의 발열·전력 효율 문제로 주요 고객사 인증에 다소 지연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 격차’가 단기간 시총 격차 축소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하이닉스의 체질 개선과 공격적 투자 전략에는 그룹 차원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딥체인지'를 강조하며 AI·반도체·배터리를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못 박은 이후, 하이닉스가 HBM 투자에 사실상 사활을 걸 수 있었다"며 "지속적인 연구개발(R&D)과 과감한 설비투자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가능케 했다"고 전했다.
또한 최 회장이 주창해온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동반 성장' 기조 역시 투자자들의 긍정적 평가를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 속에서도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며 기업가치를 키우려는 리더십이 하이닉스의 몸값 상승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해석이다.
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친환경 반도체 생산' 전략을 추진하며,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고객사들이 ESG 요인을 발주 조건으로 삼는 만큼, 최 회장의 중장기 비전이 하이닉스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삼성전자가 마냥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 세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차세대 D램 및 HBM4 양산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기술 완성도를 확보할 경우 HBM4 시대에는 판세가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성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0328syu@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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