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1만 4000명 고용 최다…"대기업만 살아남고 혁신기업 도태" 우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비자의 수수료를 현행 215달러(약 30만 원)에서 10만 달러(약 1억 4100만 원)로 465배 올리면서 미국 혁신 생태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배런스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정책 변화는 해마다 8만 5000명의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는 H-1B 프로그램을 뿌리부터 바꾸는 것이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과 수익이 빠듯한 지역병원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 1만 4000명 최다 고용…대기업 쏠림 현상 심화
트럼프 정부는 지난 19일 H-1B 비자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올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21일 오전 12시 1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번 조치에는 기존 추첨 방식을 고임금 근로자 우선 제도로 바꾸는 내용도 들어있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엑스(X)를 통해 "이는 해마다 내는 수수료가 아닌 한 번만 내는 수수료로 새 비자 신청에만 해당하며, 갱신이나 기존 비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정책은 2026년 9월 21일까지 1년간 유효하며 늘릴 수 있다.
미국 시민권·이민서비스청(USCIS)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이 2024 회계연도에 1만 4000명 이상의 H-1B 비자를 가진 사람을 고용해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이어 구글(5364명), 메타(4844명), 마이크로소프트(4725명), 애플(3873명) 순으로 나타났다고 CNN이 보도했다.
전체적으로 2024 회계연도에 총 39만 9395건의 H-1B 비자가 승인됐다. 이 가운데 인도 출신이 28만 3397명(71%)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고, 중국 출신이 4만 6680명(11.7%)으로 뒤를 이었다고 비주얼 캐피털리스트가 보도했다.
"추첨 조작하는 아웃소싱 업체" 견제가 목적
정부는 이번 조치가 아웃소싱 업체들의 H-1B 프로그램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H-1B 비자는 신청자가 많으면 추첨으로 뽑는데, 일부 아웃소싱 업체들이 이 제도의 허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들 업체는 한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여러 개의 신청서를 내서 당첨 확률을 높인다. 추첨에서 당첨되면 실제로 그 근로자가 필요한 다른 회사에 비자를 팔아넘기는 식으로 장사를 한다. 마치 콘서트 티켓을 여러 장 사서 비싸게 되파는 암표상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정작 진짜 필요한 회사들은 비자를 못 받고, 중간 업체만 돈을 버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부 쪽 주장이다.
법률 권한 논란과 의회 협력 필요성
미국이민위원회 선임연구원 애런 라이클린-멜닉은 엑스를 통해 "대통령은 비자에 10만 달러 수수료를 매길 법률 권한이 전혀 없다"며 "의회가 행정부에 준 유일한 권한은 신청 처리 비용을 건져내기 위한 수수료 부과뿐"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H-1B 제도는 의회가 만들었으며,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비자에 세금을 매길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은 1952년 법률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 이익에 해로운 이민자의 입국을 막을 수 있다"는 조항을 넓게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짐 뱅크스 공화당 상원의원(인디애나주)은 최근 H-1B 비자를 가진 사람의 임금 조건을 높이고 추첨 제도를 입찰 제도로 바꾸는 법안을 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퇴임 뒤 사라질 임시방편을 원하는지, 아니면 수년간 이어질 종합 개혁을 원하는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들의 H-1B 의존도와 스타트업·지역병원 타격
승인된 H-1B 비자의 64%가 컴퓨터 관련 직종이었으며, 건축·엔지니어링·측량 분야가 10%, 교육 관련 직종이 6%를 차지했다고 USCIS는 발표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높은 수수료가 제도 남용을 막을 수는 있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존 대기업에만 주로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기존 업체를 밀어내려 할 때 더 큰 불리함을 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미 빠듯한 수익으로 운영되는 농촌이나 지역 병원에는 재정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실제 영향
브루킹스연구소의 마르셀라 에스코바리 선임연구원은 배런스 기고문에서 "H-1B 추첨에서 모든 신청이 당첨된 기업들은 매출이 20% 이상 늘었으며, 살아남을 가능성도 2.5%포인트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에스코바리 연구원은 "연구 결과 이민은 일반적으로 미국 태생 근로자들을 더 높은 임금의 관리직과 리더십 자리로 밀어올린다"며 "특히 작은 기업에서 H-1B 근로자 고용은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H-1B 프로그램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생산성 증가의 30~50%를 맡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또한, H-1B 비자를 가진 근로자들은 혁신을 만들어내고 높은 과세 대상 임금을 받으며, 2023년 외국 학생들은 미국 경제에 500억 달러(약 70조 5000억 원) 이상을 기여했다고 배런스는 덧붙였다.
하지만 백악관은 "H-1B 프로그램 남용으로 대학 졸업자들이 정보기술(IT) 직종 취업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22~27세 대학 졸업자 중 컴퓨터 과학 및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의 실업률이 각각 6.1%, 7.5%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에스코바리 연구원은 미국 노동시장의 뿌리 문제로 "기술 변화와 해외 아웃소싱 등의 변화가 은행 창구직원이나 품질관리 검사원 같은 중간 숙련 일자리 수요를 줄여 중산층을 갉아먹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숙련 이민 제한은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