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집중, 범용 D램 여력 축소"…하이퍼스케일러 증설 경쟁이 공급난 부채질
DDR5 16Gb 한 달새 60%↑…PC·스마트폰 원가 압박 전이 '초읽기'
DDR5 16Gb 한 달새 60%↑…PC·스마트폰 원가 압박 전이 '초읽기'
이미지 확대보기2025년 4분기 메모리 반도체 계약 가격 협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인공지능(AI)발 수요 폭증이 촉발한 공급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상류(업스트림) 국제 제조사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주요 핵심 고객사조차 주문 이행률이 70% 선까지 밀려난 것으로 파악됐다.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28일(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하며, 서버용 D램 계약 가격이 3분기 대비 무려 40~50% 폭등했다고 전했다. 중소형 서버 업체나 모듈 제조사 등 후순위 고객사의 경우, 향후 2분기 동안 공급받을 수 있는 물량이 40% 미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11월까지 완판"…현물가 한 달새 60% 폭등
AI 애플리케이션이 촉발한 폭발적인 수요는 업계 전반의 극심한 메모리 부족 현상과 가파른 가격 인상을 동시에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 구동, 클라우드 AI 트레이닝 인프라 구축 경쟁이 수요 폭증의 진원지로 꼽힌다. 엔비디아의 H100/H200, AMD의 MI300X 등 AI 가속기 기반 서버는 일반 서버 대비 2배에서 4배에 달하는 메모리를 탑재해, 공급망 전반의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일부 메모리 모듈 제조사들은 당장 10월부터 재고 부족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주요 메모리 공급사들은 DDR5 D램 칩이 빨라야 11월까지 전량 완판(Sold-out)됐다는 이유로, 신규 주문에 대한 가격 견적조차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조사들의 현재 경직된 태도를 감안할 때, 4분기 내내 극심한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이 확실시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긴급하게 물량이 필요한 구매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현물 시장 가격을 그대로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현물 시장의 가격 폭등세는 이미 가시화됐다. DDR5 현물 가격은 지난 9월 말부터 가파르게 치솟으며 최근 가장 빠른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DDR5 16Gb(기가비트) 모듈 가격은 불과 한 달 전인 9월 7~8달러 선에서 현재 약 13달러까지 급등했다. 이는 단 한 달 새 60% 이상 폭등한 수치다. 이러한 가격 상승세는 서버 시장뿐 아니라 하이엔드 PC와 노트북 시장으로도 연쇄 확산하고 있다. 업계는 추가적인 물량 부족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50% 인상에도 "못 구한다"…SK는 HBM 집중
이러한 공급자 우위 시장 속에서 삼성전자는 최근 2025년 4분기 계약 가격을 공식화했다. 강력한 서버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High-density/High-speed) 제품과 첨단 공정 노드에 생산 능력을 우선 배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DDR5 관련 1β(1베타), 1γ(1감마) 등 첨단 공정 생산 비중을 서둘러 확대하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DDR4 생산은 축소하는 전략이다.
가격 인상 폭은 시장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가격은 15~35% 인상됐으며, 서버용 RDIMM(Registered Dual In-line Memory Module) 메모리 가격은 당초 업계 전망치였던 30% 상승을 훌쩍 넘어 40~50%까지 폭등시켰다.
공급망 업계는 이처럼 가파른 가격 인상에도 공급 압박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25년 1~3분기 평균 출하량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과 중국의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들조차 필요한 물량을 100%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평균 주문 이행률이 70% 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의 사정도 공급난을 부추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의 '필수재'로 불리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범용 서버 D램의 공급 여력이 제한적이다. 이로써 일반 D램 시장의 공급 부족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이크론 역시 미국 내 생산시설을 증설 중이나, 본격적인 가동은 2026년 중반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공급난 해소에는 역부족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이퍼스케일러 확장 경쟁이 공급난 부채질
공급 부족의 근본 원인으로는 4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공격적인 증설 경쟁이 꼽힌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빅4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의 절반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오픈AI와 오라클 같은 후발주자들마저 2026년 하반기 대규모 데이터센터 확장을 공언했다. 이로 인한 서버 메모리 수요 급증은 적어도 2026년 말까지 D램 시장의 만성적인 공급 부족을 고착화시킬 전망이다.
거대 기업들의 물량 싹쓸이 속에 중소형 업체, 유통 채널 고객사, 메모리 모듈 공급업체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최상위 기업들과의 납품 우선순위 경쟁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며, 평균 주문 이행률이 35~40% 수준에 머무는 처지에 놓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고 부족 딜레마'가 최소 2026년 1분기까지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DDR4 시장, '롱테일' 현상 속 공급 차질
한편, 시장의 주력이 DDR5로 넘어가는 과도기 속에서 구형인 DDR4 시장의 불균형도 감지된다. 대만 난야(Nanya)는 최근 "DDR4가 전 세계 D램 시장의 약 20%를 차지하며, 이 중 약 10%가 표준 DDR4, 나머지는 LPDDR4"라고 분석했다.
PC 제조사들은 DDR5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TV, 네트워킹 장비, 가전, 산업용 PC, IoT 기기 등 틈새 부문은 여전히 DDR4 채택을 고수하며 전환을 꺼리고 있다. 데이터센터 스위치 역시 아직은 DDR4를 주력으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D램 제조사들의 DDR4 생산 비중이 점차 축소됨에 따라, '롱테일(Long-tail)' 효과 때문에 앞으로 1~2년간 10%가 넘는 구조적인 생산 부족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방위적 원가 압박…소비자 전가 시작
이번 메모리 부족 사태는 단순히 시장 가격을 부풀리는 것을 넘어, 전방위적인 공급망 교란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 PC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들이 DDR5를 주력 표준으로 채택하는 가운데 계약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들의 재고 수준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PC용 D램의 가용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2025년 상반기에는 미·중 관세 갈등 우려 때문에 조기 재고 확보(Pull-in) 수요가 있었으나, 2026년 무역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수요가 회복된다면(업계는 2026년 2분기 이후 재반등 가능성 주시), 억눌렸던 PC 수요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업계는 만약 PC 수요가 급격히 반등한다면, PC OEM 업체들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충분한 메모리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며, 자칫 팬데믹 기간에 목격했던 심각한 공급망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메모리발 원가 압박은 이미 최종 소비재 시장으로 전가되기 시작했다. 최근 샤오미의 한 고위 경영진은 "메모리 칩 비용 증가 폭이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인정하며, "이러한 원가 압박을 신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원가(BOM) 급등으로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업계는 현재의 공급난이 단순한 경기 순환 요인을 넘어, AI 인프라 확장과 첨단 공정 전환의 속도 한계가 맞물린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2026년 1분기까지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고가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PC, 스마트폰, 서버 등 완제품 제조사들의 원가 부담은 한계에 이를 전망이다. 메모리 가격 폭등과 물량 부족 사태가 PC를 넘어 스마트폰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