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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화웨이, EUV 없이 '2nm 기적' 도전…3년 전 특허로 美 제재 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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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화웨이, EUV 없이 '2nm 기적' 도전…3년 전 특허로 美 제재 뚫나

ASML 최신 장비 막히자 '금속 적층 기술' 특허 꺼내들어…구형 DUV로 한계 돌파 시도
SMIC, 멀티 패터닝으로 '메이트 80' 5nm 구현했지만 수율·비용 한계…신기술이 '게임 체인저' 될까
네덜란드 ASML의 차세대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칩을 생산할 수 있는 필수 장비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의 수출 통제로 중국 기업의 접근이 원천 차단된 상태다. 화웨이는 이에 맞서 구형 장비인 DUV를 활용한 2나노 공정 구현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ASML이미지 확대보기
네덜란드 ASML의 차세대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칩을 생산할 수 있는 필수 장비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의 수출 통제로 중국 기업의 접근이 원천 차단된 상태다. 화웨이는 이에 맞서 구형 장비인 DUV를 활용한 2나노 공정 구현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ASML
미국의 강력한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로 첨단 장비 수급이 막힌 중국 화웨이가 3년 전 출원한 특허 기술을 앞세워 '2나노미터(nm) 공정'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없이, 구형 심자외선(DUV) 장비만으로 초미세 공정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이자,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필사적인 생존 투쟁으로 해석된다.

4일(현지시각) IT 전문 매체 폰아레나 등 외신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인용해 화웨이가 2022년 출원한 특허 기술을 활용, DUV 장비로 2나노급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EUV 봉쇄'에 갇힌 중국…DUV로 버티기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7나노 이하의 초미세 회로를 그리기 위해서는 ASML의 EUV 장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네덜란드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중국 기업들이 이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팹리스(설계)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들은 손발이 묶인 채 반도체 자립을 이뤄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ASML은 여전히 구형 모델인 DUV 노광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고 있지만, 이 장비는 본래 7나노 이하의 첨단 칩을 생산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하다. 빛의 파장 대역이 EUV보다 길어 미세한 회로 패턴을 한 번에 새길 수 없기 때문이다.

SMIC의 고육지책 '멀티 패터닝'…비용·수율의 늪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이러한 장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멀티 패터닝(Multi-patterning)' 기술을 사용해왔다. 이는 DUV 장비로 웨이퍼에 회로를 한 번에 그리는 대신, 최대 네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인쇄하고 식각하는 방식이다. EUV 장비라면 단 한 번의 공정(Single pass)으로 끝날 작업을 네 번 반복하는 셈이다.

SMIC는 이 기술을 고도화해 최근 출시된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80 프로 맥스(Mate 80 Pro Max)'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 9030(Kirin 9030)'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기린 9030이 SMIC의 'N+3' 공정 노드를 통해 제조되었으며, 5나노급 성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멀티 패터닝 방식은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회로를 여러 번 겹쳐 그리는 과정에서 정렬(Alignment)이 어긋날 위험이 크고, 공정 단계가 늘어나는 만큼 불량률이 높아져 수율(Yield)이 떨어진다. 이는 곧 칩 생산 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지며, 상업적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원인이 된다.

화웨이의 승부수, '금속 적층법' 특허


화웨이가 이번에 다시 꺼내 든 카드는 이러한 멀티 패터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기술적 도약이다.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는 2022년 출원한 특허를 통해 '금속 적층법(metal integration method)'을 활용한 칩 제조 기술을 구상하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DUV 장비를 사용하면서도 금속 구조물을 정밀하게 통합하여, EUV 없이도 2나노급 성능을 내는 칩을 구현하는 데 있다. 구체적인 기술적 메커니즘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기존의 멀티 패터닝 방식이 갖는 복잡성과 수율 저하 문제를 해결하고 회로 선폭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식일 것으로 추정된다.

'2nm 기적' 가능할까…회의론과 기대감 공존


업계 전문가들은 화웨이의 시도를 '기적'에 비유한다. 물리적으로 파장이 긴 DUV 광원으로 2나노 회로를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 난이도가 극도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7나노, 5나노 칩 상용화에 연이어 성공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특허 기술이 실제 양산 공정에 적용될 경우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만약 화웨이가 DUV 장비만으로 2나노급 공정의 수율을 확보하고 양산에 성공한다면, 이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무력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메이트 80' 시리즈에 이어 차세대 디바이스에 탑재될 칩의 성능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