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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애플 '두뇌 유출' 쇼크…반도체 수장까지 "짐 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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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애플 '두뇌 유출' 쇼크…반도체 수장까지 "짐 싸겠다"

AI·디자인 C레벨 줄사표…메타·오픈AI로 인재 '엑소더스'
팀 쿡 리더십 흔들…내부선 "혁신 동력 잃었다" 위기감
'애플 실리콘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니 스루지 애플 하드웨어 기술 담당 수석부사장이 최근 팀 쿡 CEO에게 퇴사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애플은 창사 이래 최대의 핵심 인재 이탈 위기에 직면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애플 실리콘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니 스루지 애플 하드웨어 기술 담당 수석부사장이 최근 팀 쿡 CEO에게 퇴사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애플은 창사 이래 최대의 핵심 인재 이탈 위기에 직면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견고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철옹성' 애플이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의 인적 쇄신과 핵심 인재 이탈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AI(인공지능)와 디자인 수장이 잇달아 옷을 벗은 데 이어, 애플의 독자 칩 기술을 완성한 핵심 임원마저 퇴사를 고심 중이다. 경쟁사인 메타(Meta)와 오픈AI(OpenAI)로의 인력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팀 쿡 체제의 애플이 AI 패권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애플 칩 아버지' 스루지도 이탈 조짐


7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애플의 하드웨어 기술 담당 수석부사장 조니 스루지(Johny Srouji)가 최근 팀 쿡 최고경영자(CEO)에게 조만간 회사를 떠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스루지는 애플 자체 칩 설계(애플 실리콘)를 주도하며 아이폰과 맥(Mac)의 성능 혁신을 이끈 인물로, 사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꼽힌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퇴사할 경우 타사로 이직하겠다는 뜻을 동료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경영진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쿡 CEO는 스루지에게 막대한 보상과 권한 확대를 제시하며 만류에 나섰다. 내부에서는 그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승진시켜 하드웨어와 실리콘 기술 전반을 총괄하는 '서열 2위'로 만드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잔류 여부는 불투명하다. 차기 CEO 유력 후보인 존 터너스(John Ternus) 부사장의 승진 문제와 얽혀 셈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스루지가 떠난다면 그의 측근인 종지안 첸(Zongjian Chen)이나 스리발란 산타남(Sribalan Santhanam)이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AI·디자인 수뇌부 붕괴…경쟁사로 이직 러시


스루지의 거취 파동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주에만 AI 책임자와 인터페이스 디자인 책임자가 사임했고, 법무 자문위원과 대관 업무 책임자까지 퇴사를 발표했다. 팀 쿡에게 직보하는 최고위급 임원 4명이 한꺼번에 짐을 싸는 초유의 사태다.

특히 AI 부문의 타격이 뼈아프다. 존 지아난드레아(John Giannandrea) 수석부사장의 퇴진은 애플의 생성형 AI 전략 실패를 자인한 꼴이 됐다. 야심작 '애플 인텔리전스'는 기능 구현이 늦어졌고, 시리(Siri) 업그레이드는 1년 반 이상 지체됐다. 결국 구글 제미나이 등 외부 기술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다.

이 틈을 타 핵심 엔지니어들은 경쟁사로 대거 이동 중이다. AI 모델 책임자였던 루오밍 팡(Ruoming Pang)을 비롯해 주요 연구원들이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한 메타로 이직했다. 디자인 부문에서도 베테랑 앨런 다이(Alan Dye)가 메타의 리얼리티 랩으로 적을 옮기는 등 '두뇌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늙어가는 경영진…팀 쿡 승계 시계 빨라지나


잇단 줄사표는 경영진의 '고령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달 팀 쿡의 2인자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은퇴했고, 루카 마에스트리(Luca Maestri) CFO도 일선에서 물러났다. 주요 임원 대부분이 60대에 접어들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65세가 된 팀 쿡 CEO의 거취도 관심사다. 측근들은 당장 그가 물러날 가능성은 작다고 하지만, 사내에서는 이미 50세인 존 터너스 하드웨어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 제기된 쿡 CEO의 손 떨림 등 건강 이상설에 대해 측근들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혁신 멈춘 사이…오픈AI·메타 맹추격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인력 교체가 아닌 '혁신 동력 상실'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애플이 지난 10년간 시장을 뒤흔들 '한 방'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오픈AI와 메타 같은 경쟁자들이 애플의 영토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AI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Jony Ive)와 손잡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개발 중이며, 비전 프로(Vision Pro) 개발진을 포함한 애플 엔지니어 수십 명을 빨아들이고 있다. 애플은 메타와 구글 출신 임원을 긴급 수혈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AI 시대 주도권을 쥔 경쟁사들의 공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2025년, 애플은 창사 이래 가장 혹독한 '인재 전쟁'의 시험대에 올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