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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메모리값 감당 안 돼"…사라진 'SD카드 슬롯'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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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메모리값 감당 안 돼"…사라진 'SD카드 슬롯'의 귀환

AI발 품귀에 낸드 가격 2배 폭등…2026년 폰 가격 30% 인상 압박에 '고육지책'
제조사들 "방수 유지하며 유심 통합 슬롯 검토"…소비자에겐 '용량 장사' 탈출 기회
2010년대 후반, 방수 방진과 디자인 두께 등을 이유로 자취를 감췄던 외장 메모리 슬롯이 2026년 스마트폰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AI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자, 제조사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과거의 유산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2010년대 후반, 방수 방진과 디자인 두께 등을 이유로 자취를 감췄던 외장 메모리 슬롯이 2026년 스마트폰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AI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자, 제조사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과거의 유산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최신 스마트폰을 샀는데 측면에 조그마한 외장 메모리 카드 슬롯이 달려 있다면? 아마도 시계를 2017년쯤으로 되돌린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 '과거의 유물'이 2026년, 최첨단 기술 전쟁의 한복판에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는 레트로(복고) 감성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냉혹한 '돈' 문제 때문이다.

7일(현지 시각) IT전문 매체 기자차이나 등에 따르면,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내년도 모델에 마이크로SD(microSD) 카드 슬롯을 재도입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 중이다. 수년간 프리미엄 폰에서 퇴출당했던 확장 슬롯이 부활 조짐을 보이는 것은 전례 없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폭등 탓이다.

AI가 쏘아 올린 '메모리 인플레이션'


업계 유력 팁스터(정보 유출자) '@Jukan05'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심각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버 구축 열풍으로 인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칩 수요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새 메모리 가격은 50%에서 최대 100%까지 치솟았다. 칩 가격의 급등은 곧 완제품 가격의 인상으로 직결된다. 삼성전자와 샤오미 등 주요 제조사들은 2026년 스마트폰 가격을 최대 30% 인상해야 하는 재무적 압박을 받고 있다. 512GB(기가바이트)나 1TB(테라바이트) 용량을 탑재한 고사양 모델의 경우, 소비자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가격이 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조사의 '항복'…소비자엔 기회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들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SD카드 슬롯의 부활'이다. 고용량 내장 메모리를 탑재해 가격을 올리는 대신, 기본 용량 모델을 저렴하게 내놓고 소비자가 필요에 따라 외장 카드를 사서 끼우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일종의 우회로이자, 고비용 구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만약 이 루머가 현실화된다면 소비자에게는 분명한 이득이다.

첫째, 현금 절약이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고용량 모델을 살 필요가 없어진다. 저렴한 기본 모델을 산 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고용량 마이크로SD 카드를 구매하면 된다.

둘째, 저장 공간의 통제권 회복이다. 제조사가 정해준 용량에 갇히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쉽고 저렴하게 용량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이는 그동안 고용량 모델 강매를 통해 높은 마진을 남겨온 제조사들의 '용량 장사' 관행이 깨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술적 난제, '통합 트레이'로 푼다


그동안 제조사들이 SD카드 슬롯을 없앤 명분은 명확했다. 폰을 더 얇게 만들고, 방수·방진 기능을 강화하며, 속도가 느린 외장 메모리 대신 빠른 내장 메모리(UFS)를 쓰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돌아오는 슬롯은 어떤 형태일까. 외신은 제조사들이 '유심/SD 통합 트레이(The SIM/SD Combo)' 방식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는 과거 보급형 모델에서 흔히 보던 방식으로, 하나의 트레이에 통신용 유심 칩과 메모리 카드를 나란히 얹는 구조다.

이 방식을 택하면 스마트폰 외관 디자인을 뜯어고치거나 구멍을 하나 더 뚫을 필요가 없다. 즉, 현재의 방수·방진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직은 루머 단계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AI라는 최첨단 트렌드가 역설적으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하드웨어의 귀환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2026년 스마트폰 시장이 '혁신' 대신 '실용'을 택할지, 메모리 원가 부담이 불러온 나비효과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ditor's Note]


스마트폰에서 SD카드 슬롯이 사라진 것은 애플이 주도한 '폐쇄적 생태계' 전략을 안드로이드 진영이 따라간 결과였습니다. 내장 메모리 용량을 미끼로 상위 모델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제조사의 핵심 수익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발 메모리 품귀 현상이 제조사들의 이런 고마진 전략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칩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완제품 가격을 올리자니 판매량 급감이 우려되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SD카드 슬롯의 부활 검토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급등한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으려는 제조사들의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결과로 해석해야 합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