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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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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함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로이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로이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제국의 황혼과 신흥 강권의 충돌은 언제나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최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중 정상회담의 현장은 그 정점이었다. 한때 '관세 폭탄'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중국 경제의 숨통을 죄겠다던 도널드 트럼프는 예상외의 행보를 보였다. 날 선 비수 대신 '아첨'에 가까운 찬사를 쏟아냈고, 시진핑의 '위대함'과 중국의 '성취'를 치켜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언뜻 보면 화해의 제스처 같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서늘하고 냉혹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트럼프식 압박의 한계와, 그 압박이 잉태한 새로운 강자의 등장 즉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경고이다.

트럼프가 정치 무대에 등장하며 내세운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관세였다. 그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자 '일자리 도둑'으로 규정하고, 천문학적인 관세 폭탄을 투하하면 중국이 곧 무릎을 꿇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목도한 트럼프의 태도는 과거의 그 기세등등하던 ‘응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시진핑 앞에서 중국이 그동안 얼마나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는지를 강조하며, 사실상 중국의 체급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휘둘렀던 관세라는 칼날이 무뎌졌음을 시인하는 고백에 가깝다. 관세 폭탄은 중국을 파괴하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이탈해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게 만드는 명분을 제공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말로써 위협했지만, 그 수사가 거칠어질수록 미국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약화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역사는 때로 비극이 아닌 희극의 모습으로 본질을 드러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관세 폭탄’의 위협과 ‘미국 우선주의’의 맹주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뜻밖의 아첨꾼으로 변모했다. 최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풍경은 우리가 알던 패권 전쟁의 문법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거칠게 몰아붙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던 중국은 오히려 더 견고해진 모습으로 좌중을 압도했고, 호기롭게 칼을 휘두르던 도널드 트럼프는 상대의 성취를 찬양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화려한 수사로 덮기에 급급했다. 이를 단순히 외교적 유연함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힘의 균형추가 너무나 급격히 기울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시진핑의 투키디데스’의 실체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자산은 늘 ‘강한 타격’에 있었다. 그는 중국을 향해 수백 퍼센트의 관세를 매기겠노라 공언하며 이를 패권 전쟁의 결정적 승부수로 띄웠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사실은 명확하다. 관세는 중국을 굴복시키는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미국 주도의 질서 밖에서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게 만드는 ‘축성(築城)의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정상회담 내내 트럼프가 보여준 뜻밖의 아첨은 그가 가진 패가 바닥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는 시진핑을 향해 “중국이 그동안 얼마나 놀라운 성장을 했는지 전 세계가 보고 있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는 과거의 압박과는 전혀 다른 결의 발언이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파괴하려던 지도자가, 이제는 상대의 ‘체급’을 인정하며 비위를 맞추는 식으로 대화의 문을 연 것이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이 아니라 ‘출구 전략’에 가깝다. 관세 폭탄이 미국 내 물가 상승과 공급망 교란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자, 트럼프는 실질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화려한 말잔치로 세공하여 가리고 있는 것이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후퇴하는 지도자, 그 허세의 틈을 타고 중국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전통적인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을 위협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충돌을 의미한다. 지금 전개되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시진핑은 미국이 파놓은 충돌의 함정에 빠지는 대신, 그 함정 위로 거대한 다리를 놓아 자신들만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시진핑의 자신감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다. 그는 미국의 기술 봉쇄 속에서도 화웨이를 비롯한 자국 기업들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의 금융 제재가 강화될수록 위안화의 영향력을 넓히며 ‘달러 없는 세상’을 준비해 왔다.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이 보여준 여유로운 미소는, 트럼프의 아첨이 없어도 이미 중국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찬사를 묵묵히 받아내며,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의 진로를 결정할 수 없음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휘두르는 동안,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제조업 기지를 넘어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전환의 표준을 장악해 나갔다. 이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중국을 가두는 덫이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는 미국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트럼프의 정치는 늘 ‘말’이 ‘실체’보다 앞서왔다. 그는 미국 국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포효했지만, 실제 결과는 패권의 공동화였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포기하고 ‘돈 안 되는 동맹’을 걷어차는 사이,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중국의 실리 외교였다.이번 회담에서 트럼프가 보여준 예상 밖의 유화적 태도는 미국 패권의 내실이 얼마나 허약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는 중국이 많이 컸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자신의 업적 혹은 불가피한 현실로 포장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의 팽창을 막을 실질적인 수단이 없음을 자인한 꼴이다.

강대국 간의 대결에서 아첨은 패배의 변주곡이다. 트럼프가 시진핑의 권위를 세워주며 대화를 구걸하는 모습은, 과거 워싱턴이 베이징을 향해 호령하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큰 목소리는 이제 국제 사회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흩어지고 있으며, 그 소음 뒤에서 시진핑은 조용히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설계도를 완성해가고 있다.이제 패권 전쟁의 주도권은 베이징으로 넘어간 듯 보인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력과 달러를 쥐고 있지만, 이를 운용하는 지도자의 철학은 실종되었고 전략은 파편화되었다. 트럼프가 개인적인 친분과 수사적 미사여구에 집착하는 동안, 시진핑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여 ‘중국식 현대화’라는 거대한 함선을 전진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제 미국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이 중국의 시장과 자본 없이 생존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트럼프가 관세 폭탄이라는 녹슨 칼을 만지작거릴 때, 시진핑은 이미 그 칼이 닿지 않는 갈라파고스적 요새 안에서 자신들만의 문명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 요새의 문을 열고 나와 미국 대통령의 찬사를 받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진핑이 설계한 투키디데스의 결말이다. 기존 패권국과 정면충돌하여 공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패권국을 무대 위에서 아첨이나 떠는 조연으로 전락시키고 자신은 역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것. 트럼프는 자신이 주연이라 믿고 대사를 읊었으나, 그 대본은 이미 베이징에서 쓰인 것이었다. 미중 정상회담은 패권의 이동을 알리는 장엄한 장례식이었다. 트럼프의 아첨은 쇠락해가는 제국이 품위 있게 퇴장하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었으며, 시진핑의 자신감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선언문이었다. 트럼프는 말로써 세상을 구원하려 했으나, 정작 그 말이 겨냥했던 상대는 그 말들을 비료 삼아 더 거대하게 자라났다. 중국이 그동안 많이 컸다는 트럼프의 고백은, 미국이 그만큼 작아졌다는 자조적인 진실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호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시진핑의 투키디데스는 이제 시작이다. 충돌 없는 패권 교체, 혹은 미국의 무력화를 통한 독자 생태계의 완성.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목도한 것은 거대한 성벽 안에 안주하며 승리를 확신하는 시진핑과, 그 성벽 밖에서 허무한 찬사를 보내며 길을 잃은 트럼프의 뒷모습이다. 패권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는 듯 보이지만, 그 연료는 이미 베이징의 아궁이로 옮겨졌음을 이번 회담은 똑똑히 보여주었다. 인류는 이제 트럼프의 허세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설 시진핑의 거대한 그림자를 마주해야 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