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미지 확대보기불과 며칠 전인 지난 14일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은 반도체와 AI, 희토류와 공급망, 항만과 해상 물류까지 뒤엉킨 패권 경쟁의 현장이었다. 세계는 지금 '누가 더 많이 생산하는가'의 시대를 넘어 '누가 흐름을 통제하는가'의 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혈관은 여전히 해상 물류다. 원유와 LNG, 암모니아와 메탄올, 미래의 청정수소까지 모두 선박과 바다를 통해 움직인다. 미국이 중국산 선박·물류 산업 견제를 강화하고, 중국 역시 핵심 광물과 물류망 통제력을 확대하는 모습은 해운과 항만이 더 이상 단순한 운송 인프라가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는 에너지 안보는 흐름, 경로, 통제의 함수 [Energy Security=f(Flow, Route, Control)]라고 주장한다. 에너지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으로 흐르는가(Flow),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가(Route), 그 흐름을 누가 쥐고 있는가(Control)의 문제라는 뜻이다. 지금 미·중 경쟁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선박 연료는 중유 중심에서 LNG·메탄올·암모니아·수소 기반으로 전환이 가속되고, 세계 주요 항만들은 청정연료 공급 거점 선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 항로 대비 거리와 시간, 비용을 약 30% 줄일 가능성이 있어 동북아 해상 질서를 뒤흔들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극항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 상하이와 요코하마는 이미 차세대 연료 벙커링과 친환경 항만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같은 세계적 조선 역량과 울산·부산·광양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항만 시스템은 분명 강력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아직 이 자산들을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으로 엮어내지 못하고 있다. 울산·부산·포항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최대 산업벨트는 청정 해운 회랑 구축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파편화된 개별 사업 접근에 머물고 있다.
특히 울산은 이 거대한 전환의 핵심 거점이 될 자격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세계 톱티어 조선사들이 밀집한 메가 클러스터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에너지 항만, 6.2GW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과 연계될 청정수소 생산 인프라, 190km에 달하는 수소 전용 배관망과 400여 대의 고압 튜브 트레일러까지. 여기에 지난 4월 23일 롯데정밀화학과 HD현대중공업이 울산 본항에서 달성한 세계 최초의 암모니아 벙커링 실증 성공까지 더해졌다. 울산은 이미 청정 해운 시대의 ‘하드웨어 허브’이자 가장 앞서나가는 리빙 랩으로서 압도적인 기반을 증명해 내고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녹색 금융과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 데이터 플랫폼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되어야 한다. 울산이 청정연료의 생산·제조·벙커링을 담당하고, 홍콩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 허브들이 녹색 금융과 국제 투자 플랫폼을 지원하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동북아 청정해운 생태계 구축은 훨씬 빨라질 수 있다. 울산의 하드웨어와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될 때 비로소 글로벌 해운 탈탄소 생태계를 선점하는 완결된 회랑이 만들어진다.
지금 세계는 미래의 흐름과 항로, 공급망 통제권을 둘러싼 질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울산을 축으로 한 동북아시아 청정 해운 회랑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안정적인 인도-태평양 공급망 질서 속에서 미래 해양·에너지 패권 경쟁에 대응하고,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산업·안보·통상 전략이다. 미래의 바다를 설계하는 국가가 다음 시대의 산업 질서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