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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시 美 연준 의장, 신트라서 중앙은행권 안도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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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시 美 연준 의장, 신트라서 중앙은행권 안도감 얻었다

트럼프 우려 속 해외 총재들과 비공개 접촉
라가르드·베일리·맥클렘과 공조 확인…‘말 줄이는 통화정책’ 공감대도 부각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중앙은행 포럼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중앙은행 포럼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중앙은행 포럼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이 국제 중앙은행 무대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신뢰를 확보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새 연준 의장이 백악관 압박에 흔들리거나 국제 공조에서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서는 정반대의 신호가 감지됐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2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주요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신트라 포럼에서 워시 의장을 새 협력 상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보도했다.

워시 의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열린 행사에서 유럽과 다른 지역의 중앙은행 수장들을 잇따라 만났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와는 회의장인 옛 수도원 안뜰에서 긴 점심을 함께했다.

◇비공개 접촉으로 초기 우려 완화

로이터가 인용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워시 의장과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의 대화는 구체적인 통화정책 조율보다 큰 방향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인플레이션 흐름, 그림자금융 위험, 국제 정책 공조 같은 세부 쟁점을 깊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참석자들은 워시가 국제 무대와 계속 접촉하려 한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분명하다.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 안전판 역할을 한다. 일부 국가에는 금 보유의 중요한 수탁자이기도 하다. 미국 통화정책과 금융규제 논의에서 연준의 목소리는 세계 시장에 직접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은 워시 체제에서도 제롬 파월 전 의장 시절 구축된 협력 관계가 유지될지 확인하려 했다. 신트라 포럼은 새 연준 의장을 가까이에서 평가하는 첫 국제 무대였다.

◇파월 지지했던 중앙은행권의 변화

워시 의장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더 눈에 띈다.

지난해 신트라 포럼 참석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던 파월 전 의장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키려는 파월에게 공개적인 지지를 보낸 셈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워시 의장의 첫 등장은 자칫 어색할 수 있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고 취임 전부터 백악관과의 거리 설정이 국제 금융계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비교적 부드러웠다. 라가르드 총재는 개막 만찬에서 늦게 도착한 워시를 반갑게 맞았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워시는 프랑스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프랑스 참석자들과 프랑스어로 대화했다.

중앙은행 세계에서는 이런 개인적 접촉도 중요하다. 금융 불안이 닥쳤을 때 통화스와프, 유동성 공급, 규제 공조는 결국 서로를 잘 아는 당국자들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말 줄이는 연준’에 공감대

정책 소통에서도 접점이 나타났다.

워시 의장은 시장에 향후 금리 경로를 지나치게 안내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에 회의적이다. 그는 연준이 더 단순한 메시지를 내고 시장이 중앙은행 발언보다 실제 경제지표를 보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번 포럼의 큰 흐름도 비슷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ECB가 더 이상 복잡한 형태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도 포워드 가이던스는 도입보다 철회가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사용해 온 위기 대응식 소통이 조정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초저금리와 대규모 자산매입, 장기간의 금리 경로 안내가 예외적 상황의 도구였다면 이제는 정상적인 통화정책 운용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워시 의장의 ‘단순한 메시지’ 기조는 이런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참석자들은 각국 상황은 다르지만 통화정책이 지나치게 복잡한 설명에 의존해온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라가르드와는 미묘한 차이

다만 차이도 있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줄이더라도 중앙은행이 들어오는 경제정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설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를 ‘프레임워크 가이던스’로 표현했다.

이는 구체적인 금리 경로를 미리 약속하지는 않되, 어떤 지표와 판단틀을 보고 정책을 결정하는지는 시장에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티프 맥클렘 캐나다은행 총재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했다.

워시 의장은 이 지점에서 더 말을 아꼈다. 그는 연준의 정책 대응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향후 금리 결정도 사전에 안내하기보다 회의 안에서 토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 차이는 앞으로 시장과 연준의 관계를 가르는 중요한 대목이 될 수 있다. ECB와 캐나다은행이 ‘덜 구체적인 안내’를 택한다면 워시의 연준은 ‘더 적은 안내’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국제 공조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신호

신트라 포럼에서 각국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워시 의장의 태도였다.

일부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연준 의장이 미국 국내 정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국제 협의체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서는 그런 걱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워시는 공개 패널에서 라가르드 총재, 베일리 총재, 맥클렘 총재와 나란히 앉아 “세 동료와 함께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표현은 의례적이지만, 새 연준 의장이 다른 중앙은행 수장들을 동등한 협력 상대로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중앙은행들은 각자 다른 경제 여건에 놓여 있다. 미국은 전쟁 이후 물가 압력과 백악관의 금리 압박을 동시에 안고 있고 유럽과 영국·캐나다도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잔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라는 공통 과제는 여전하다.

워시 의장의 신트라 행보는 연준이 이 공통 과제에서 빠지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위기 시대 도구에서 벗어나는 중앙은행들

이번 포럼에서는 위기 이후 중앙은행 운영방식을 정상화하려는 흐름도 함께 부각됐다.

포워드 가이던스뿐 아니라 대차대조표, 은행 지급준비금, 실시간 데이터 활용 같은 의제들이 논의됐다. 워시 의장은 이미 연준 내부에 커뮤니케이션, 대차대조표, 데이터 활용, 생산성과 고용, 인플레이션 체계를 점검하는 태스크포스를 만들겠다고 밝힌 상태다.

유럽에서도 은행 지급준비금 제도를 정상화하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초저금리로 대표되는 금융위기·팬데믹 대응 체제에서 점차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워시가 이런 논의와 보조를 맞춘 것은 해외 중앙은행 관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파월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중앙은행의 기본 역할을 중시하고 국제 대화 채널을 유지하려는 인물로 비쳤다.

◇아직 판단은 이르다

신트라에서의 우호적 분위기가 워시 체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막 취임한 의장이다. 백악관의 금리 인하 압박, 미국 물가 불안, 시장의 금리 전망, 연준 내부의 의견 차이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그의 독립성과 국제 공조 의지가 어떻게 드러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일부 참석자들도 워시가 과거 연준 이사와 주요 중앙은행 네트워크에서 보여준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의장으로서의 시험은 이제 시작이라고 봤다.

그럼에도 첫 국제 무대의 의미는 작지 않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연준 의장의 말뿐 아니라 태도와 관계 설정을 본다. 워시가 신트라에서 보여준 접촉과 메시지는 연준이 미국 안으로만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워시 체제의 연준은 파월 시대보다 말을 줄이고 시장에 덜 친절한 중앙은행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신트라 포럼에서 확인된 것은 그 변화가 국제 공조의 단절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중앙은행권은 새 연준 의장에게 일단 신중한 신뢰를 보냈다. 앞으로의 관건은 워시가 그 신뢰를 실제 금리 결정과 위기 대응 과정에서도 유지할 수 있느냐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