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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조 캐나다 잠수함전 고배…한화오션, 지정학 벽에 막혀 막판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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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조 캐나다 잠수함전 고배…한화오션, 지정학 벽에 막혀 막판 탈락

카니 총리 오늘 핼리팩서 발표, 獨 TKMS 12척 전량 단독수주 충격
현대차·알고마 철강 총출동에도 고배, "유럽·나토 방산결속 우선" 명분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지난해 8월 26일 독일 킬의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스(TKMS) 조선소를 방문해 정비 중인 212A형 잠수함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캐나디안 프레스이미지 확대보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지난해 8월 26일 독일 킬의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스(TKMS) 조선소를 방문해 정비 중인 212A형 잠수함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캐나디안 프레스
캐나다가 노후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할 차세대 재래식 잠수함 12척의 사업자로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스(TKMS)를 최종 낙점했다. 한화오션이 야심차게 도전장을 던진 KSS-Ⅲ 배치-Ⅱ는 유럽·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결속이라는 지정학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캐나다 CBC뉴스와 글로브 앤 메일은 6일(현지 시각)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마크 카니 총리가 이날 오후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서 독일-노르웨이 컨소시엄이 제안한 212CD형(Type 212CD) 잠수함을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퍼(Stephen Fuhr) 방위조달 담당 국무장관도 같은 시각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이스퀴몰트 해군기지에서 태평양함대 장병들에게 이 결정을 공식 통보할 예정이다.

이번 발표는 카니 총리가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리는 NATO 정상회의로 출국하기 직전 이뤄지는 것으로,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이 회원국에 요구한 국방비 지출 확대와 실질적 군사 능력 확보라는 두 조건에 대한 캐나다의 '답안지' 성격을 띤다. 카니 총리는 이 자리에서 방산업계의 자본조달을 원활하게 할 'NATO 국방투자은행' 창설안도 함께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회귀와 北極 방어의 전략적 계산


이번 사업의 규모는 그야말로 세기의 수주전이라 부를 만하다. 잠수함 본체 획득비만 200억~300억 캐나다달러(약 30조~45조원), 여기에 향후 30년간의 운용·정비·성능 개량 비용을 합치면 최대 1000억 캐나다달러(약 1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12척이 도입되면 캐나다 해군 함정 전력의 3분의 1에서 최대 절반이 잠수함으로 재편되는, 이른바 '수중해군(Underwater Navy)'으로의 대전환이다.

카니 총리의 선택은 명료했다. 대서양 건너 유럽이었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8월 TKMS의 212CD형과 한화오션의 KSS-Ⅲ 배치-Ⅱ 두 기종 모두 해군의 요구 성능(ROC)을 충족한다고 판단, 최종 결정의 잣대를 산업협력(Industrial Benefit)과 지경학적 함의로 옮겨놓은 바 있다.

3대양 작전 능력 갖춘 4000t급 대양형 잠수함


캐나다 해군이 선택한 212CD형은 독일·노르웨이가 공동 개발한 차세대 재래식 잠수함으로, 수중 배수량 약 2500t의 기존 212A형을 4000t급 대양형으로 대형화한 모델이다. 리튬이온 전지 기반의 신형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탑재해 수중 잠항 기간이 3주 이상에 이르며, 은밀성(Stealth) 극대화를 위한 다이아몬드형 선체 단면과 저자기 신호 처리 기술이 적용됐다. 대서양·태평양·북극해 3대양을 아우르는 캐나다 해군의 작전 반경에 최적화된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고배를 든 한화오션 KSS-Ⅲ 배치-Ⅱ는 수중 배수량 3600t급에 6개의 수직발사관(VLS)을 갖춰 잠대지 순항미사일 운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무장 탑재량과 확장성에서는 KSS-Ⅲ가 앞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캐나다 해군의 최종 잣대는 '조용함'과 '북극 운용성'에 무게가 실렸다는 후문이다.

TKMS는 캐나다 국내총생산(GDP) 기여 규모로 1150억 캐나다달러(약 129조 원), 사업 전 기간에 걸쳐 65만 명을 창출하겠다고 제시했다. 초도함 4척은 2036년까지 독일 킬(Kiel) 조선소에서 건조해 인도하고, 이후 물량은 캐나다 현지에서 완전 국산화 방식으로 건조하겠다는 기술이전 로드맵도 내놨다. 캐나다 해군이 2030년대 초 빅토리아급을 전량 도태시키는 일정과 맞물려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표다.

특히 유럽연합(EU)이 2400억 유로(약 360조 원) 규모로 추진하는 '유럽안보행동(SAFE)' 방산 공동조달 프로그램에 캐나다가 유일한 非EU 참여국으로 이름을 올린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NATO에서 발을 빼는 흐름 속에 캐나다가 '탈미국·친유럽' 방산 벨트에 편승하겠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토르벤 벨만(Tjorven Bellmann) 주캐나다 독일대사는 낙점 직전 "캐나다·독일·노르웨이 세 NATO 동맹국이자 두 북극 국가가 함께 세계 최대·최신·최저 위험의 재래식 잠수함 함대를 구축·훈련·정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극 항로와 자원을 둘러싼 러시아·중국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극동맹'을 결성하겠다는 지정학적 함의가 명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캐나다국제문제연구소(CGAI)의 데이비드 페리(David Perry) 소장은 "TKMS 낙점은 캐나다가 세대에 걸쳐 처음으로 적정 규모의 현대식 잠수함 전력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며 "이번 사업 규모를 감안할 때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韓 방산수출 최대 시련…印太 전략 재점검 불가피


반면 한화오션과 한국 정부에는 뼈아픈 패배다. 한화오션은 700억 캐나다달러(약 105조 원) 이상의 무역·투자와 2026년부터 2044년까지 연간 2만5000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한국 방산업계 추정으로는 총 940억 캐나다달러(약 141조 원)에 이르는 파격적인 산업협력 패키지를 제시했다.

승부수도 대담했다. 지난 1월 한화오션은 경영난에 시달리는 온타리오주 알고마 철강(Algoma Steel)에 2억 달러(약 3000억 원)를 투자해 형강(H형강) 생산라인을 신설하고, 5000만 달러(약 750억 원) 상당의 강재를 잠수함 건조에 되사주겠다는 이례적 제안까지 내놨다. 지난 5월에는 실물 KSS-Ⅲ 잠수함을 이스퀴몰트 기지에 파견해 성능을 직접 시연하는 '무력 시위' 성격의 세일즈도 펼쳤다.

한국은 여기에 더해 '프로젝트 비버(Project Beaver)'라는 이름으로 현대자동차의 캐나다 내 수소 화물트럭 생산과 충전 인프라 구축(2030년 착수), 캐나다자동차부품제조업협회(APMA)·알고마 철강과 손잡은 군용 차량·산업 시스템 합작 생산 계획까지 얹었다. 한국 방산·완성차·소재 산업이 총출동한 '올코트 프레스(all-court press)'였다.

그러나 이 모든 승부수도 지정학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 캐나다 칼턴대 필리프 라가세(Philippe Lagassé) 교수는 "한국의 공개 캠페인은 통상적인 캐나다 방산 조달에서 볼 수 없었을 정도로 가시적이고 공격적이었다"며 "그만큼 캐나다 시장, 그것도 주요 NATO 동맹국의 잠수함 사업을 뚫는다는 것이 한국에는 어마어마한 의미였다"고 지적했다.

TKMS가 지금까지 20개국 해군에 잠수함을 수출해 온 '검증된 강자'인 반면, 한화오션의 잠수함 수출 실적은 인도네시아 한 곳에 그친다는 점도 최종 심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집계에서 2020~2024년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에 진입한 한국은 2027년까지 세계 4위 방산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왔다. 이번 캐나다 수주 실패는 이 로드맵에 상당한 차질을 안길 전망이다. 특히 캐나다가 인도·태평양 대신 대서양을 선택했다는 신호는, 향후 한·미·일 안보협력 축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서방 방산시장의 '유럽 회귀' 흐름을 재확인시켰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K-방산 로드맵 정면 흔들…폴란드·필리핀 후속 수주에 불똥 우려


이번 결과는 한국 방산업계에는 단순한 한 건의 수주 실패를 넘어선 충격파다. 한화오션이 KSS-Ⅲ 캐나다 사업을 위해 투입한 마케팅·기술 실사·산업협력 협약 비용만 1000억 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위사업청은 이번 결정 직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후속 수출 사업에 미칠 파장을 점검할 예정이다. 특히 필리핀 잠수함 도입 사업 등 아직 진행 중인 수주전에서 "TKMS가 캐나다마저 이겼다"는 프리미엄이 되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재래식 잠수함 국제시장에서 TKMS의 아성을 뚫으려면 성능·가격을 넘어 유럽 방산 네트워크와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라는 벽을 어떻게 넘을지, 국가 차원의 전략 재점검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캐나다 조달 관행상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본계약 체결 사이에는 통상 수년의 협상 기간이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차순위 사업자와 재협상하는 것도 관례다. 라가세 교수도 "캐나다 측이 더 나은 조건을 뽑아내려 할 경우, 독일-한국의 경쟁 구도가 재점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한화오션과 정부로서는 남은 협상 기간을 최대한 활용해 '역전 시나리오'를 노려볼 카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셈이다.

카니의 승부수, 對美 자립·對中 압박 이중 포석


카니 총리의 이번 선택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밀어붙여 온 '탈미국 자립 노선'의 상징적 결정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총선에서 자유당이 내세운 '전방위 재무장(Rearming Canada)' 공약이 국방비 GDP 대비 5%(2035년까지) 목표와 맞물려 구체적 성과물로 도출된 첫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압박 속에 미국산 F-35 도입 계약마저 원점 재검토에 부친 캐나다가, 잠수함이라는 최고 수준의 전략자산을 유럽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한 것은 향후 미·캐 관계는 물론 인도·태평양의 對中 견제 전선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벌써부터 "캐나다가 유럽에 발을 담글수록 인도·태평양 미·일·호주·캐나다 4각 협력 구도에서는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