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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중국, 대미 무역협상 새 전략…'실리' 챙기며 '대화' 제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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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중국, 대미 무역협상 새 전략…'실리' 챙기며 '대화' 제스처

워싱턴에 실무대표단 파견해 기존 주장만 반복, 고위급 접촉은 회피
자국 경제난 속 추가 관세 저지…'책임 있는 강대국' 모습 연출
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중 무역 협상이 교착에 빠진 가운데 중국이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실질적 양보는 없다'는 새로운 전략으로 돌아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중국 협상팀 실무진은 기존 주장만 되풀이하며 고위급 접촉을 피하는 등, 경제난 속 추가 관세를 막으면서도 '책임 있는 강대국'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양측의 관세 유예 휴전이 11월까지 연장됐지만 조만간 무역 합의가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며, 양측의 미묘한 긴장 완화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중국의 새 협상 전략은 허리펑 부총리가 이끄는 협상단의 핵심 인사인 리청강 상무부 부국장의 최근 워싱턴 방문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방문은 미국의 공식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나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고위급 협상 책임자 대신 재무부, 상무부, USTR의 차관급 인사들만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20~30%대 관세 철회, 미국 기술 수출 통제 완화 등 기존의 요구사항을 반복했을 뿐 실질적인 양보안은 거의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생산적인 회담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리청강의 행보는 시진핑 주석의 새로운 대미 협상 지침을 반영한다. 강대국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양보 없이 대화에 임해 책임감 있는 국가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 몇 주간 러시아, 인도, 북한 등 각국 정상을 융숭하게 맞이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대비되는 다자 세계 질서의 지도자로서 중국의 위상을 과시했다.

◇ 펜타닐·농산물 갈등 여전…협상 난항 지속
현재 양측의 협상은 구체적인 현안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펜타닐 원료 화학물질의 중국발 유입 단속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중국은 펜타닐 관련 품목에 부과된 20%의 추가 관세가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는 '선 인하, 후 조치'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 역시 중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중국이 지난 18개월간 의도적으로 육류 가공 시설 인증을 취소하고, 다른 나라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등 미국 농산물 수입을 줄여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24년에서 2025년 들어 중국의 미국산 대두와 육류 수입은 급감했으며, 러시아와 브라질 등에서 대체 수입을 늘리는 추세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 8월 22일 미국 대두 산업 행사에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양국 농업 협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며 워싱턴을 비판하기도 했다.

백악관의 쿠시 데사이 대변인은 성명에서 "행정부는 미국 산업과 노동자들을 위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자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 경제의 힘을 이용해 교역 상대국들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제난 속 '실리 외교'…장기전 돌입하나

중국이 대화에 나서는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붕괴와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관세 인상이나 수출 통제 강화 등 추가적인 경제 충격을 피하려는 목적이다. 중국 상무부는 리청강의 방미 목적이 "이견을 관리하고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기 대화를 잘 활용하자는 것"이었으며, 미국의 요구 사항 전반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 주석은 2020년 초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맺었던 일방적 합의를 피하려 한다. 당시 합의는 중국에 미국산 상품 및 서비스 구매 대폭 확대를 요구한 반면, 미국의 의무는 거의 없었다.

한편 미국은 중국과 긴장을 완화하면서도 베트남 등 환적국을 통한 중국의 관세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한 조항을 담은 무역 협정을 다른 나라들과 추진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이 역설적으로 중국을 협상 테이블에 계속 머물게 하는 요인이 된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지난달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현재의 관세 수준을 언급하며 "지금의 현상 유지가 꽤 잘 작동하고 있으며, 상황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양측의 긴장 완화가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또한 구체적인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워싱턴 스팀슨 센터의 윈쑨 중국 프로그램 국장은 "양측 모두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아직 있다고 생각하며, 올해 정상회담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 분석했다. 다만 지정학, 공급망, 기술 통제 등 핵심 쟁점이 남아있어 단기 타결은 어려울 전망이다. 양국 관계가 장기적으로 '정상화된 갈등관리' 체제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