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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위기 장기화...재계'비상태세'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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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위기 장기화...재계'비상태세'돌입

유로존·경기위축·이란사태...재계 '삼중고'
주요그룹 총수들, 철저한 준비태세 주문

유로존 위기로 세계 실물경기가 위축되는데다 이란 제재로 인한 한국산 제품 불매 움직임이 번지자 기업들이 비상경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미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이번 사태가 장기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위기 대처를 주문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나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에서도 위기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상 초유'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미 위기는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것이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들 역시 엎친 데 덮친 격인 글로벌 위기 상황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 태세를 주문하고 나섰다. 현 상황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것에 대비한 비상 대책 등도 언급한 상황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5일 해외 법인장 회의를 한 달가량 앞당겨 긴급 소집한 자리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전이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해외 시장별 상황변화를 감안한 차별화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미리 막고 시장별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비상회의 열고, 재무구조 개선하고‥긴박한 재계

같은 날 삼성전자도 경기 기흥 나노시티에서 사흘간의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었다. 삼성전자를 이끌게 된 권오현 부회장 주재의 회의에는 이재용 사장은 물론 국내 경영진 및 해외법인장 등 100여명의 수뇌부가 모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권 부회장은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기업들의 신용 하락에 따른 경기 둔화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어 하반기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어려운 환경이지만 진정한 글로벌 톱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쉼 없는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우리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위기 상황이 올 것"이라며 유럽발 금융위기 확산에 대비한 위기관리 경영에 나섰다. 이달 초부터는 매주 그룹 재무구조 개선방향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또 SK경영경제연구소에서 분석한 전 세계 경기 동향에 관한 보고서도 매주 챙겨 보고 있다. 유럽 금융위기로 세계 경기의 불황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임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이달 한 달간 전략보고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계열사 사장들과 위기 대응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관계자는 "중장기 전략을 논하는 자리지만 현재의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진지하고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기업들조차 비상경영을 입에 올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타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7월 전망치가 89.7로 올해 2월(91.0)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지수가 100 미만이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이는 유럽발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이 타격을 입고, 부동산 침체와 과도한 가계부채 등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 코스피 지수가 유로존 위기감에 1,920선을 버티지 못하고 전 거래일보다 27.80포인트(-1.43%) 내린 1,917.13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11일 오후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경제단체 설문에서도 위기감 드러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위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같은 날 전경련이 유럽진출 기업 90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7.6%가 '유럽발 재정위기로 경영활동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응답기업의 65.6%는 올 하반기 경영목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매출 감소였다. 응답기업의 82.8%는 매출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고 환리스크 관리(63%), 현지 공급망·판매망 관리(61.9%), 매출채권 회수(61%) 부문에서도 재정위기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으로는 26.4%의 기업이 비상경영체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나머지 67.8%는 사태추이를 관망하면서 현 경영활동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79.8%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위기는 중소기업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같은 날 전국 36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32.5%가 심각한 경영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글로벌 위기가 촉발됐던 지난해 보다 17.7%p나 증가한 수치다.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은 '적자 상태'라는 응답이 25.6%를 기록했다. '흑자지만 수입이 감소하는 중'이라는 답변도 25.3%나 차지했다. '흑자 상태'라고 밝힌 기업은 5.3%로 지난해 9.3%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유럽연합(EU)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7월1일부터 금지하기로 한 것도 경영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수출길이 막히는 것은 물론 국내기업의 이란시장 장악력이 급격히 하락해 제재조치 완화 이후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이란은 석유수입 중단조치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란의 보복 조치로 인한 한국산 제품 수입 중단과 원유 공급 차질에 따른 유가 상승 등 여러 가지 피해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장기화할 경우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가전, 정유,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피해가 불가피하다. 특히 원화결제시스템을 활용해 이란과 거래해온 국내 중소기업 2700여 곳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국내기업들의 대이란 수출은 60억 달러에 달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초만 해도 상반기 저점을 찍고 하반기에 들어서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보는 기업들이 많았는데, 유로존 위기에 이란사태, 경기 위축까지 맞물리면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며 "각 그룹별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가동하는 등 당초 내놨던 경영 방침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