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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우크라 여객기 격추 은폐시도에 분노한 국민…이란지도부 정통성 균열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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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우크라 여객기 격추 은폐시도에 분노한 국민…이란지도부 정통성 균열조짐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아미르카비르 대학 앞에서 11일(현지시간) 혁명수비대의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격추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여성이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아미르카비르 대학 앞에서 11일(현지시간) 혁명수비대의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격추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여성이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이란정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미사일 격추에 대한 그릇된 대응에 대한 국내에서의 분노가 확산되면서 이란의 이슬람정권이 정통성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추락은 이란이 미사일을 오인 발사한 것이 원인이었으나 군이 격추를 인정하기까지 사흘이나 걸렸다.

가장 영향력이 있던 이란혁명수비대의 사령관이 미군에게 살해된 이후 이란에서는 국내에 일체감이 퍼지고 있었지만 격추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비판이 강해지는 가운데 그러한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테헤란 발 키예프 행 여객기에 탑승한 무고한 176명이 모두 사망한 까닭이다.

지난 8일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둘러싸고 미국과 캐나다가 빠른 단계에서 이란에 의한 미사일이 원인이라고 지적하자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이란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지금의 정세는 오는 2월 치러지는 이란의 국회의원 선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선거 결과가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란지도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높은 투표율을 목표로 하기 일쑤다.

여기에다 지난해 11월 반정부시위로 수백 명이 사망한 이후 지도부는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란정부의 전 고관은 익명으로 “지도부에게 매우 민감한 시기다. 심각한 신뢰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로이터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사태에 대한 대응을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의 정권은 스스로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물리쳐 왔다. 그러나 11월의 반정부시위로 태어난 정권과 국민의 골은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다니엘 바이먼 선임연구원은 “정 지도부에 단기적인 상처가 될 것이다. 미국과의 긴장이 높아지기 전부터 안고 있던 정치·경제적 문제에 대한 부담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시위대 “독재자에게 죽음을”

트위터에 투고된 동영상에는 시위참가자가 테헤란에서 11일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최고지도자 하메이니를 지칭한 것이다. 로이터는 동영상이 전하는 항의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의 국영통신사는 항의시위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있다.

한 강경파 정권관계자는 이번 오발을 지도부와 혁명수비대에 대한 정치적 공격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피하자. 섬세한 시기라 다들 신경질적으로 굴어 있다. 혁명 이후 수비대가 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해 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높은 투표율이 이슬람지배의 정통성을 증명한다고 밝혀온 하메이니는 국민이 정권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테헤란의 대학생 하샴 간바리(27)는 “왜 이 정권에 투표해야 하는가? 그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비행기 추락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하며 “저편이 국민을 신뢰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데 이쪽이 그들을 믿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2018년에 미국이 핵 합의에서 빠진 이후 이란은 어려움을 더하는 제재 아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중요한 수입원인 석유 수출도 줄어들고 있다.

■ 지지층마저 정부에 등 돌려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수석연구원은 “(격추의) 비극이 잊혀지지 않으면서 국외의 제재뿐만 아니라 국내의 압력까지 받는 국민이 이 비극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건은 통치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8년간에 걸친 이라크와의 전쟁 등 이란의 이슬람정권은 과거에 더 심각한 상황을 극복해 왔다. 그러나 기름 값 인상을 계기로 발생한 11월의 시위에서 맨 먼저 거리에 나온 것은 지금까지 정부의 선량한 원조를 누려온 빈곤층, 하류층이라는 반석 같은 정권의 지지자들이었다. 항의의 목소리는 곧 정치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했으며 당국은 더욱 엄격하게 이를 단속했다.

■ “국민을 두 번 죽였다” 항의

사고였는지 여부를 떠나 군부가 여객기를 격추한 것이 밝혀진 것은 이란정권에 있어서 새로운 타격이다. 승객 대부분은 이란국적도 보유하고 있었다. 소셜 미디어는 이란 사람들의 분노의 소리로 넘쳤다. 이란정부가 유족을 위로하기보다 추락의 책임을 부정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는 내용의 댓글이 빗발쳤다.

미국 외교문제 평의회의 시니어 펠로, 레이 타케이는 “국민에게는 충격이었다. 정권은 또다시 거칠게 국민을 죽였다”고 말하고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가 국민을 단결시켰다고 하는 원래 거짓이었던 이야기가 깨졌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2월21일은 의회선거와 병행해 전문가회의의 멤버도 뽑는다. 이슬람 법학자로 구성된 이 기관은 80세가 되는 하메이니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메이니에게 임기는 없고 이란·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호메이니가 1989년에 사망한 이후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있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