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으로 보는 미술사(7)-적포도주빛 양기가 넘치는 마티스
과도한 양기로 관절염 앓아 말년에 그림 대신 콜라주 작업시대의 주류흐름에서 벗어나 밝고 힘찬 화면 이끌어
▲ 앙리 마티스의 ‘분홍작업실’
[글로벌이코노믹=한오 서양화가]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에너지가 가장 넘쳐나는 그림을 꼽으라면 야수파(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으로, 아카데미즘에 대항하며 인상파 이후의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추진하기 위해 순색(純色)을 구사하고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굵은 필촉을 사용하여 병렬적으로 화면에 펼쳐 대담한 개성의 해방을 시도하였다.)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선택한 원색의 물감을 빠르고 거친 붓질로 순식간에 화면에 토해내는 것이 바로 야수파 회화의 대표적인 표현기법이다. 그래서 담아내고자 하는 주제의 구체적인 형태보다 자유분방한 원색과 붓 터치로 화면을 채워내는 데 주력한다.
이 같은 야수파의 표현방식은 동양 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운생동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동양화에서는 기운생동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화면에 나타나는 색상의 가짓수는 오히려 줄이고, 오로지 먹의 농담만을 이용하는 붓자국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야수파들은 거칠면서도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붓자국에 더해 강렬한 원색과 보색이라는 극적인 대비까지 사용한다.
동양학에서는 야수파처럼 거칠고 즉흥적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를 가리켜 양기를 발현시킨다고 한다. 반면 그림에 있어서의 음기를 드러내는 방식은 천천히 심사숙고한 연후에 색깔을 고르고 아주 느리면서도 신중한 붓질을 통하여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 앙리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양기가 많은 사람은 지긋하고 느릿하게 행동할 수 없다. 피의 흐름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면 어떤 움직임도 내적으로 감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해도 더 드러나고 어떤 표현을 해도 더 눈에 뜨일 수밖에 없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다혈질적이다.
현대가 아무리 페미니즘을 주장한다고 해도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성적 관념에서 남성이 여성에 비해 그 기질이 양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성의 상징이라는 몸의 표현으로서도 그렇고, 대상인 여성을 향해 드러나는 성적 표출로서도 남성은 그런 양기를 더 발현하는 모습으로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사람의 몸에는 음과 양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있어서 여성보다 더욱 적절한 양기해소의 방식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남성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제대로 된 표현으로 해소하지 못한 양기는 성적 호기심에 대한 표현으로서나, 술기운 등을 빌어서 우회적으로라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양기라는 단순한 측면만을 놓고 본다면, 여성이 음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몸속의 양적인 기운보다 원래 가지고 있는 남성의 양적 기질이 훨씬 더 양적이며, 양이 지나침으로써 갖는 문제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사상으로 남성의 공격적 양기를 다스리는데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공을 들여왔다.
숨을 들이쉬는 저장에서부터 아랫배에서 김의 형태의 기(氣)로 끌어 올려진 인류만의 마음의 존재는, 지구상의 무수한 다른 동식물들이 깨우치지 못한 여러 가지 형태의 문화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다스려왔다. 그렇게 인류가 가꿔온 문화행위 가운데서도 미술과 음악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적 표현으로서 인간에게 있어서 여전히 동물적이고도 즉흥적이며 공격적인 양기를 뱉어내는 아주 긴요한 창구였다.
▲ 앙리 마티스의 'harmany in red'미술에 나타나는 양기의 표현은 화면으로 드러나는 붓자국을 통하여 그 과함이나 부족한 상태를 구별할 수 있고, 그 표현된 색채로서의 구별도 가능하다. 빠르고 강한 힘이 느껴지는 붓질은 연약하고 느린 붓질보다는 양기가 많고 원색은 무채색보다, 밝은 색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색과 비교하여 당연히 양기가 많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의 그림에서의 양기 표현은 그가 즐겨 사용했던 붉은 색(불 또는 심장)에 의해서 많이 드러난다. 그의 그림은 경우에 따라서는 지극히 활달한 붓놀림이나 야수파다운 현란한 원색의 보색대비로도 많이 드러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적인 화면 속에서도 다른 색에 비해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붉은색의 표현으로 존재한다.
마티스의 그림은 말년으로 갈수록 관절염으로 불편해진 손의 표현을 대신하여 원색이 더 강해진 화면과 단순해진 선, 움직임이 커진 인물의 동세로 나타난다. 마티스 당시에 유행했던 어둡고 정적인 그림에 대비되는 밝고 역동적인 그림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루던 바탕을 벗어나 밝고 힘찬 화면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마티스는 몸에 양기가 아주 많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람의 몸이 은근한 따뜻함으로 지펴있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면 차갑고 어두운 음기만 가라앉아 혈관 속에서도 피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차가운 상태로 있게 되면 그런 부위에서 암과 같은 차가운 병에 걸린다. 이것은 역으로 항상 뜨겁고 혈액의 움직임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심장에는 암이 생기지 않는다는 원리로 미루어 보아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앙리 마티스의 '댄스'그래서 몸에 차가운 병이 들면 강력한 양기의 상징인 산삼을 들여 치유를 도모하기도 하고 몸이 뜨거워지는 열 감기가 암에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으며, 방사선 요법이라는 열치료로 암을 치료하는 원리와도 상통한다.
몸에 숨을 들이는 일은 체열의 저장성과도 관련이 있다. 즉 양기가 많은 사람은 내쉬고 더 뿜어내어서 체열을 조절하고, 음기가 성한 사람은 들이마셔서 그 열을 더 저장해야 한다. 그런 자연스런 조절이 아닌 방사선 요법과 같이 강제적이고 집중적인 열치료는 갑자기 쬐인 열로 인해서 체내의 차가운 덩어리가 녹아 생긴 가스와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인체의 위쪽으로 급상승하여 두통과 탈모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선천적으로 몸이 뜨겁고 양기가 많은 사람은 암과 같은 차가워서 생기는 병에 걸릴 확률은 적다. 대신 양기가 많은 사람은 늘 몸에 쌓여있는 더운 기운 때문에 고혈압과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에 노출되기 쉬우므로 평소 적절한 양기의 배출은 필수적이다.
▲ 앙리 마티스의 ‘달팽이’그런 양기가 적절한 표현과 표출로 외부로 배출되지 않고 남아있는 형태의 대표적인 병이 관절염이다. 뱉어내지 못하고 몸속을 떠돌던 뜨거운 기운이 손가락 등과 같은 신체의 말단으로 몰리면서 생기는 질병이 관절염이다. 원래 더운 체질은 계속해서 혈액 속의 혈당량을 증가시켜 그로 말미암아 체내의 염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생물은 당분 속에서만 증식한다. 더욱이 더운 기운은 수증기처럼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으므로 당뇨 등 성인병 환자의 대부분이 상체보다 하체가 더 차가워지는 체질로 변하게 되고, 그로 인한 하지 혈행 순환장애라는 또 다른 질병도 낳게 된다.
양기가 과도하게 끓던 화가 마티스는 지병으로 관절염을 앓았다. 표출되지 못한 양기가 자신을 공격한 모습이다. 강력한 붓놀림과 색채의 과감한 도입으로 대표되는 야수파 화가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화가였지만, 관절염에 걸린 것으로 보아 자신의 양기를 모두 표현으로 뿜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말년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대신 색종이 오려 붙이기와 같은 콜라주 작업을 하게 되었으며, 그나마 붓의 표현으로 할 수 없던 부분을 원색의 강렬함과 인물 등에 움직임의 동세를 크게 주어 표현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그것이 마티스의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아쉬움을 읽는다.
마티스 내부의 그 같은 뜨거운 기질이 특히 양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어있는 현대인의 정서와도 잘 맞물려 마티스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대표적인 시각예술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