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의 미술 속 키워드로 읽는 삶(8)]쓰레기 더미 속 인생의 그림자
구겨진 휴지와 쓰레기 속에서 인생의 참 모습을 찾는 그들의 작업은
빛과 어둠?聖과 俗 힘든 일상서 발견한 씁쓸한 진실이자 자화상이다
■ 영국의 아티스트 '듀오' 팀 노블&수 웹스터
‘그대 구겨진 휴지 속에서 시구(詩句)를 발견한 걸 아신다면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 다니엘 A. 그라닌
[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평론가] 학창시절 읽었던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구절은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내는데 큰 위안이 되었다. 끔찍한 이 시기도 언젠가는 끝나리라, 입시 지옥이라는 휴지통 속에도 우정이라는 시구가 있다. 필자는 저 구절을 되뇌며, 내게는 암흑기 같았던 그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 힘든 삶에서도 기쁨은 한 조각 있으며, 휴지 속에서도 시구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삶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는 마약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진실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거울 같은 것이다.
영국의 아티스트 듀오 팀 노블과 수 웹스터(Tim Noble & Sue Webster)는 문자 그대로 구겨진 휴지 속에서 인생의 참 모습을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이들은 쓰레기 같은 일상적인 물건들을 모아 빛을 비추어 자화상과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사물을 투사하는 이들의 예술은 일상적 사물, 아니 전혀 예술과 대척점에 있는 듯 여겨지는 쓰레기가 빛을 통하여 예술적 그림자로 변모하는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버려진 쓰레기, 그러모은 금속 조각, 박제된 동물들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자 이미지로 변모하는 과정은 추상적인 이미지를 의미로 규정하는 우리 인간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리라. 이들이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추상적인 쓰레기 더미는 형상적인 예술로 변모하는 마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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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버려진 깡통과 담뱃갑이 놓인 테이블 위에 빛을 비추면 벽에는 근사한 맨해튼의 석양이 드리워진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가득한 쓰레기 더미 뒤에는 격렬한 밤의 향연을 벌인 듯 보이는 남녀가 한 곳을 보며 다정히 누워있다. 사냥의 전통이 강한 영국 숲에서 잡아들인 여우와 각종 새들이 뒤엉킨 박제에서는 등을 맞대고 고개를 들어 탄식하듯 입을 벌린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괴물처럼 마구잡이로 붙어있는 쓰레기는 이별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헤어진 연인이 되고, 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콕콕 쪼아대는 새는 사실은 끔찍하게 잘려나간 머리를 먹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쓰레기 더미인가, 아니면 그림자인가. 보기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이는 심리학 서적의 흥미진진한 그림들처럼, 이들의 작품은 신경정신과 환자들에게 이미지를 사용해서 사람의 심리를 읽는 ‘인지 심리학(perceptual psychology)’의 아이디어를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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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우리가 보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현상이며, ‘제 눈에 안경’이듯이, 이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보편타당하게 실생활에서 나오는 인간 삶의 찌꺼기인 반면, 그림자 속 멋져 보이는 남성과 여성은 작가 자신들이다. 플라톤(Plato)에 따르면, 동굴에서 동굴 벽면을 향하도록 쇠사슬에 묶여, 등 뒤에서 빛이 들어와 벽에 투영된 그림자만 평생 봐온 죄수들은 그 그림자가 세상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한다. 즉 실제 모습이 아닌 우상화된 모습이나 비친 모습이 진실이라고 믿는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의미한다. 플라톤이 진리라고 설명하는 ‘이데아(Idea)’를 깨닫기 위해서는 (시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감옥을 떠나 눈부신 빛이 주는 고통을 인내하고, 지성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가 아름답고 훌륭하며 선한 이데아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팀 노블과 수 웹스터의 작품에서는 무엇이 우상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버려진 한갓 쓰레기 더미가 진실일 수도 있고, 오히려 빛을 비추어야만 극적으로 등장하는 그림자들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그들의 작품은 “구겨진 휴지 속의 시구”이다. 구겨진 휴지도 그 휴지에서 찾은 시구도 결코 아름답기만 하지 않은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인생은 한 번 쓰면 버리는 쓰레기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빛을 비추면 쓰레기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드러나는 그림자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으나, 인생의 그림자가 비춰주는 또 다른 모습들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현재의 쓰레기 같은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담담함을 주는 것이다.
인생은 그러하리라. 이들이 보여주는 뒤섞인 쓰레기와 그림자처럼 사랑과 미움이 섞이고, 고상한 것과 저급한 것이 공존하며, 남과 여, 빛과 어둠, 속됨과 성스러운 것이 뒤엉켜 있으리라. 네온 작품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반짝임은 한 때의 찬란함과 그 이후의 초라함, 그러면서도 유쾌한 재기발랄함과 버릇없고 대담한 메시지를 거침없이 쏘아댄다. 독성적인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은 붉고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내 심장을 찔러대며, 화려한 전기 분수는 어둠 속에서만 빛을 발한다. 멋지다는 것은 순간의 반짝임일 뿐이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도 동전의 양면, 하나가 빛나면 다른 하나는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젊음과 술과 섹스는 부정할 수 없는 세트여서 잠깐 뿐이란 걸 알지만 명멸하기 전까지 환한 빛을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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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 작가 팀 노블 & 수 웹스터는 누구?
팀 노블은 첼튼햄 예술대학(Cheltenham Art College)과 노팅엄 폴리테크닉(Nottingham Polytechnic), 로얄 칼리지(Royal College of Art) 등에서, 수 웹스터는 레이세스터 폴리테크닉(Leicester Polytechnic) 및 노팅엄 폴리테크닉(Nottingham Polytechnic) 등에서 수학했으며, 2009년 노팅엄 트렌트 대학에서 영국 현대미술 및 젊은 세대 예술가들에게 급진적인 영향을 미친 공로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런던에서의 ‘영국 쓰레기 British Rubbish’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펑크와 팝, 반예술(anti-art)에서 예술을 끌어내는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