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봉쇄로 석유 시장 신질서 재편…美·中·러 ‘엇갈린 명암’

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봉쇄로 석유 시장 신질서 재편…美·中·러 ‘엇갈린 명암’

호르무즈 충격에 세계 에너지 지도 변화…“부유국은 전환, 빈국은 생존 모드”
글로벌 석유시장의 새로운 질서.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석유시장의 새로운 질서. 사진=챗GPT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세계 에너지 질서가 재편되면서 미국·중국·러시아·걸프 산유국 등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6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SIPA)의 제이슨 보도프 교수는 전날 WSJ에 낸 기고문에서 “이번 위기는 단순한 유가 급등이 아니라 각국이 에너지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게 만드는 계기”라고 진단했다.

◇ “현대사 최대 원유 공급 충격”


보도프 교수는 이번 이란 전쟁이 “현대사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차질”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세계 원유 공급의 약 15%가 시장에서 사라졌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약 14만1000원)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재고가 고갈되면 유가가 추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아시아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아시아는 수입 원유의 약 60%를 중동에 의존했으며 디젤과 항공유 가격은 올해 1월 이후 두 배 수준으로 뛰었다.

저소득 수입국에서는 실제 연료 부족 사태도 나타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냉방 온도를 제한했고, 라오스는 주 5일 수업을 주 3일로 줄였으며, 스리랑카는 연료 절약을 위해 매주 수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 미국·중국·러시아 ‘각자 다른 계산’


미국은 셰일 혁명 덕분에 과거보다 충격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순수출국이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도 크게 낮아졌다.

다만 휘발유 가격은 전쟁 전 갤런당 3달러 미만에서 현재 4.5달러(약 6300원)를 넘어섰다. WSJ는 “미국 가계의 월 연료비 부담이 평균 150달러(약 21만원)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비싼 원유 가격 부담을 안게 됐지만, 전략 비축유와 전기차·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덕분에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은 원유 재고를 활용해 수입을 줄이는 동시에 기존 계약 물량 일부를 다른 국가에 되팔아 차익을 거두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러시아는 가장 큰 수혜국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침체됐던 원유 수출 수익이 국제유가 급등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WSJ는 러시아가 지난달 원유 세수 수입을 두 배 수준으로 늘렸다고 전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과 기술·투자 제약으로 장기 생산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 유럽·일본은 “에너지 체질 개선”


유럽은 아시아보다 호르무즈 의존도는 낮지만 항공유 등 정제유 수급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유럽의 항공유 재고가 약 6주 분량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항공편 축소와 항공권 가격 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 각국은 전기차·재생에너지·원자력 확대를 통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더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원유 수입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일본은 국제에너지기구 비축유 방출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원전 재가동과 해상풍력 확대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 “에너지 안보 기준 자체 달라질 것”


보도프 교수는 이번 위기가 세계 에너지 전략의 기준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유한 국가는 공급선 다변화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겠지만, 가난한 국가는 가장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라 가장 싼 에너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도프는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조차 글로벌 시장 충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이번 위기의 가장 큰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