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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나도 그랬지"…청소년은 '괴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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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나도 그랬지"…청소년은 '괴물'이 아니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9회)]

10대는 더 이상 어린이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시기


'난 누구인가?' 고민 속 부모로부터 '심리적 家出'을 하는 때


독립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부른다…어른들도 그러했듯이


부모가 여유있게 대하면 자녀들도 편하게 위기를 극복한다

지독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괴물'에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최근 청소년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애가 사춘기가 되더니 갑자기 천사에서 괴물로 변한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괴물’로까지 변하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청소년이 된 자녀들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고 그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오늘 날의 청소년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청소년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거나 ‘이유 없는 반항(反抗)의 시기’라고 부른 것을 보면 청소년기는 언제 어디서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어른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일정한 나이에 이르러, 또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그 나이 또래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것은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이유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찾을 수 있다.

▲최근인천시남구문화체육센터에서열린2014년청소년생활체육토요프로그램오리엔테이션에참가한청소년들이사전기초체력검사를받고있다.
▲최근인천시남구문화체육센터에서열린2014년청소년생활체육토요프로그램오리엔테이션에참가한청소년들이사전기초체력검사를받고있다.
‘청소년(靑少年)’이라는 명칭의 의미부터 살펴보면 왜 이 시기에 속해 있는 10대들이 천사에서 괴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 알 수 있다. ‘청소년’에서 앞의 ‘청’자를 빼면 ‘소년(少年)’이 된다. ‘소년’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 즉 어린이라는 의미이다. ‘청소년’에서 가운데 있는 ‘소’를 빼면 ‘청년’이 된다. ‘청년(靑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참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즉 어른이라는 의미다.

‘청소년’이라는 말, 또는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10대는 한 마디로 말하면 더 이상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시기 또는 그런 어정쩡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어린이란 다 그런 것이다, 라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수용한다. 또 어른들은 어른답게 사고하고 행동하면 된다.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다 어른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헛 먹었다”라는 말도 있듯이 생물학적인 나이와 심리적인 나이가 차이가 나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른은 어른답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청소년기는 어린이의 특징과 어른의 특징이 부딪치는 불안정한 시기다. 마치 지구에서 두 개의 거대한 지판이 부딪히면 지진이 일어나고 큰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부딪치는 청소년기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지진이 일어나면 그동안 안정적이던 땅이 갈라지고 꺼지며 큰 혼란이 일어나듯이 어린이라는 안정적인 심리적 기반(基盤)이 갈라지고 꺼지면서 큰 혼란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소년들이 괴물처럼 보이는 이유다.

▲겨울방학을맞은청소년들이용산역아이파크몰아이스링크에서스케이팅을즐기고있다.
▲겨울방학을맞은청소년들이용산역아이파크몰아이스링크에서스케이팅을즐기고있다.
청소년기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화하는 시기다. 생물학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기준은 ‘생식(生殖)’이 가능한지의 여부다. 즉, 이세(二世)를 생산할 수 있는지 즉, 부모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물론 어린이는 생식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청소년기 때 여아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몸으로 변화한다. 소위 ‘제2차 성징(性徵)’이라고 불리는 변화가 일어난다. 남아도 여아만큼 눈에 띠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변화를 겪는다. 이때의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주위의 사람들도 놀라지만 당사자 스스로도 자신의 변화에 낯설어하고 당황한다.

심리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독립성(獨立性)’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독립성이다. 어린이는 아직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생활한다. 어린이는 비록 자신의 이름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ㅇㅇㅇ의 자녀’ 혹은 ‘ㅇㅇㅇ의 학생’으로 살아간다. 미성년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대신 처벌을 받는다. 그 이유는 어린이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양육의 의무가 있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학생이 잘못 했을 때 담임교사가 대신 비난을 받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 대신 법으로 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을 가질 수 없고 부모의 동의가 없다면 결혼할 수 없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는 논리는 어린이는 스스로 독자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다는 즉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명실상부하게 ‘ㅇㅇㅇ’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더 이상 ‘ㅇㅇㅇ의 자녀나 학생’으로 살면서 중요한 결정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 힘든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어른으로서의 삶은 이 질문에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대답하느냐에 크게 달려있다.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제일 의존했던 대상, 즉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랑으로 감싸주며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던 대상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 어린이들은 심리적으로 집과 부모를 떠나야 한다. 즉, 실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출(家出)을 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 읽는 동화(童話) 중에 유독 집을 떠나는 내용이 많은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아기돼지 삼형제’나 ‘헨젤과 그레텔’ 등 집을 떠나는 동화는 대개 유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어린이는 부모, 특히 어머니를 떠난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서 많은 고생을 하고 위험에 처한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늑대를 만나고, ‘헨젤과 그레텔’은 할머니로 가장한 마녀를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 다시 부모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비록 동화이지만 그 내용을 읽어가는 동안에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면 어려움을 만나게 되지만, 그 어려움을 현명하게 대처하면 결국 좋은 결말을 얻는다는 것을 배우면서 안도하게 된다.

▲하이브리드오페라로재탄생한'헨젤과그레텔'.어린이가부모를떠나역경을극복하는과정은어른이되는과정이기도하다.
▲하이브리드오페라로재탄생한'헨젤과그레텔'.어린이가부모를떠나역경을극복하는과정은어른이되는과정이기도하다.
독립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부모와 갈등을 빚게 된다.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독립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부모들을 멀리 하기 시작하고 자신은 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바쁜 부모를 따라다니며 귀찮은 정도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보고하던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 방과 후 대화는커녕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고 심지어는 방문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마치 부모의 존재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독립은 필연적으로 저항과 함께 온다.

걱정이 되어 부모가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짜증을 내며 이야기할 것이 없다면서 “엄마는 이야기해도 몰라”, “엄마가 언제 나에게 관심이나 있었어?”, 또는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면서 대들기도 한다. 부모들은 이런 자녀들의 변화가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는 반면 배신감도 느끼고 화도 나서 자녀와 감정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드디어 “천사가 괴물로 변한 것”같은 느낌이 든다.

부모에게 저항하고 대들고 가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자녀는 사실 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 없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중인 것이다. 오히려 “난 앞으로도 계속 부모와 함께 살 꺼야” 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자녀가 있다면 이 자녀는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워 계속 어린이로 살아가겠다는, 즉 발달을 멈추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제2차 성징’이 나타날 때 어른이 되는 과정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즐거워한다. 오히려 그런 변화가 일어나자 않으면 걱정한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저항하고 부모를 떠나려 할 때, 심리적으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부모가 안심하고 여유를 가지면 자녀들은 마음 편하게 어른이 될 수 있다. 청소년기는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시기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