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분명한 상황서도 자기 속마음과 다른 결정
남에게 인정받고 배척당하지 않으려는 심리작동
집단원 만장일치 결정할 때 동조압력 제일 커져
우리처럼 '관계중심' 문화에선 동조율 더 높아져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따라하는 현상을 ‘동조(同調)’라고 부른다. 이 현상의 핵심적인 부분은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라한다는 점이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동조 현상은 유행(流行)이다.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등이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이 유행인데, 이렇게 하라고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행동 등을 따라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동조를 할까?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은 “필요한 정보가 없을 때” 다른 사람을 따라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나 지식이 없으면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숲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버섯들 중에서 어느 것이 독버섯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먹는지를 눈여겨보고, 먹으면 따라 먹고 먹지 않으면 안 먹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다. 처음 가보는 뷔페식당에서 어리둥절해서 우왕좌왕 하기보다는 익숙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따라서 하면 큰 실수를 면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동조는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확한 지식이나 정보가 있을 때는 동조를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동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철수는 이번 여름에 친한 친구 몇 명과 휴가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산으로 캠핑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갈 친구들과 휴가 장소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다른 친구들이 다 바다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마지막으로 철수에게 “어디로 가고 싶으냐?” 물었을 때 자신도 바다로 가고 싶다고 속마음과는 다르게 대답했다. 우리는 보통 살면서 이런 종류의 동조를 많이 한다.
사회심리학자 애쉬(Asch)가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조실험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5명의 대학생들을 탁자에 둘러앉게 하였다. 그리고 너무나 쉬운 문제를 내고 돌아가면서 크게 정답을 대도록 하였다. 너무 쉬운 문제였기 때문에 두 번을 반복해서 하는 동안 모든 학생들이 다 정답을 크게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세 번째에는 같은 종류의 쉬운 문제인데 처음 대답하는 학생이 틀린 답을 크게 이야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학생도 틀린 답을 크게 말하도록 했다. (물론 이 네 명의 대학생들은 실험하기 전에 틀린 답을 하도록 지시를 받은 학생들이다) 이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분명 정답을 알고 있는 다섯 번째 학생의 대답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과연 정답을 이야기할지 여부가 이 실험의 핵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대학생들은 약 35%가 틀린 답을 말했다. 즉 동조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론 동조를 안 한 학생도 있고, 처음부터 동조를 한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이런 테스트를 세 번 되풀이하는 동안 평균 한 번씩은 동조를 하였다. 실험이 끝난 후 동조를 한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답을 물어보면 다 정답을 이야기했다.
애쉬의 실험의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이 실험이 끝난 후에도 서로 만날 필요가 없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참가자들은 비록 동조를 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제재를 받거나 심리적인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동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혀 처벌과는 무관한 상황에서도 동조를 한다면, 만약 동조를 안 했을 경우 실질적인 제재나 처벌이 주어지거나 심한 비난과 따돌림을 받은 상황에서는 동조의 압력이 훨씬 커진다는 점이다.
동조현상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점은 ‘만장일치(滿場一致)효과’다. 애쉬의 실험에서 보듯이 자신보다 앞서 모든 집단원이 만장일치로 한 가지 답을 내놓은 경우 동조 압력이 제일 커진다. 하지만, 만약 집단원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다수와 다른 답을 내놓는 경우 동조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답을 내놓는 경우 동조율은 평상시보다 1/4로 떨어진다. 즉, 만장일치가 깨질 경우 동조 압력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여기서 흥미 있는 점은 그 이탈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어린이가 다른 답을 내놓은 경우에도 동조율은 떨어진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안데르센의 ‘임금님은 벌거숭이’라는 동화가 이 점을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진실을 말한 뒤에야 어른들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독재국가에서 왜 지극히 소수의 반대 목소리를 그토록 잔인하게 말살하려는지 그 이유도 바로 이 ‘만장일치효과’의 취약성 때문이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독재자에게 반대하는 것을 묵과할 경우 국민들의 독재자에 대한 동조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독재자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62년 북한에서 치러진 의원선거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100% 투표율에 100% 찬성률을 보였다. 지금도 북한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서 거의 100%의 찬성률을 보였다고 발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예는 독재국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2002년 사담 후세인의 독재가 절정에 달했을 때도 100%의 찬성이 있었다고 선전하였다.
우리나라처럼 ‘관계중심의 문화’에서 더욱 동조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보다 더 강하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각 사람이 자신의 개성을 발달시키고 자유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문화에서 애쉬의 실험에서 보듯이 제일 주체적인 대학생마저도 35%가 동조를 한다면 우리 문화에서는 더 많은 동조를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6월 4일 우리는 지방선거를 치른다. 각종 선거 때마다 지역에 따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정해져 있고, 그 정당의 후보는 월등히 높은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이는 인물을 보기보다는 속해 있는 정당을 보며 투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경향의 배후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인정을 받으려는 동조의 심리가 깔려있지나 않은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인정(人情)에 끌리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認定)을 받기 위해 동조하는 것보다 정말 국가와 지역을 위해 ‘선공사후(先公私後)’의 정신을 가진 정치가와 행정가를 뽑을 때 꽃피게 될 것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