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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정제의 만남, 현재적 가치 예증한 舞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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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정제의 만남, 현재적 가치 예증한 舞演

김숙자·최원선 공동안무의 『춤의 여정 맥을 잇다』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춤비평가] 최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김숙자·최원선의 『춤의 여정 맥을 잇다』 공연(共演)은 신구세대 간의 춤의 기류와 전통 맥잇기의 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예술원 회원인 김숙자와 무용문화인류학 박사인 최원선의 춤판 어울림은 보기 드문 무가(舞家)의 무희(舞戱)의 정석, 창작무의 수사학, 연결(緣結)의 절정판이었다.

바다제비 해연(海燕)을 호로 갖고 있는 블루 벨벳의 여인 김숙자, 선홍의 열정을 간직한 최원선 두 여인이 만들어낸 봄날의 조형은 폐곡선의 묘, 운명의 굴레를 선유(仙遊)하는 느낌을 준다. 제비둥지와 같았던 ‘춤 울타리’, 아르코대극장에서의 열연은 잘 짜인 튼실한 춤들을 생산하였다. 춤 사랑이 곳곳에 묻어나는 오묘한 춤은 춤본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내림새여
▲내림새여
현실과 역사를 존중하며 ‘무서운 군형’으로 춤의 ‘길 위에서’ 외길을 택한 김숙자의 시작과 끝을 관조하게 하는 이번 공연은 가깝게는 삼대에 걸쳐있다. 원형, 상징, 제의에 걸친 환상, 놀이, 시적상상, 꿈은 김숙자 춤의 정체성과 연희적 속성을 간파케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김숙자 춤의 원리와 기법, 이론을 감상적 에세이로 적어내는 일은 모험이 따른 작업이다.

산조 가락에 걸린 『내 마음의 흐름』의 김진걸, “승무”와 “살풀이 춤”을 떠올리게 하는 한영숙, 두 선생을 기리며 김숙자의 춤은 구성된다. 춤 인생 육십년 동안 주목 받았던 작품들을 선정하면서 생전에 즐겨 추었던 스승의 춤들을 재연, 헌무(獻舞)한다. 거대한 뿌리에서 뻗은 가지 김숙자, 그 가지에서 맺은 열매 최원선의 공동작업은 봄밤의 일곱 춤을 휘감으며 기쁨을 선사한다.

▲살풀이춤
▲살풀이춤
▲살풀이춤
▲살풀이춤
『내림새여』(초연 1994, 안무 김숙자, 출연 최원선, 이승주외 15명): 나운영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2중주를 위한 산조’에다 “승무”와 “가사호접”의 미적 구성을 가미한 창작무이다. 이 작품의 분위기를 읽게 해주는 「오름새/훨훨 날아/창공으로 치솟는다/새김새/청고와라/흘러간 그 노랜데/봄, 여름/가을, 겨울로/외쳐 보는 내림새여」 , 남 경의 시는 여유롭다.

무리의 고깔, 백색의 물결이 인다. 긴 천의 움직임, 일곱, 아홉으로 나누어진 맨발의 연인들 승무를 추어 된다. 무리를 젖히고 등장하는 여인, 최원선의 독무가 이어진다. 얼럴럴한 피아노 음, 긴 장삼의 여섯 춤꾼, 한 명을 보태며 세븐 댄서가 된다. 음감을 살리며 조명은 서서히 딤 아웃된다. 다섯, 넷, 진법 전환, 열여섯으로 불림, 줄임으로 ‘내림새’에 생동감을 불러온다.

▲실심초
▲실심초
『내 마음의 흐름』(안무 김진걸, 출연 김숙자,1992년 명무 지정): 신무용계의 빛나는 한사람, 창작무에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김진걸이 가야금산조에 춤사위를 실어 산조춤의 골격을 창안한다. 그의 춤인생 철학이 녹아있는 산조춤, 『내 마음의 흐름』은 마음의 심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다양한 상징들이 숨어 있다. 전통무의 세기와 진솔함이 드러나는 춤이다.

여린 기억을 되살리는 김진걸의 인터뷰 영상, 그것을 회상시키며, 진청의 비로도가 정결의 이미지로 감싼 김숙자가 등장한다. 깊은 바다에 비친 판타지, 무대 바닥도 하늘빛을 응사한다.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는 고고한 지성의 경지, 김숙자의 춤은 바다 위를 노니는 제비가 된다. 연결위해(連結慰解)의 독무는 한성준 줄기의 시대성과 최승희 가지의 신명을 불러왔다.
『진도북춤』(박병천류, 최원선 홍정남, 김민영, 황아람, 이은정, 이이슬, 김유연 등): 어깨에 북을 메고 등장하는 이 춤은 늘 신명을 불어온다. 최원선의 『진도북춤』 연기는 기량을 구분하는 화려한 춤사위, 진법 수사, 인원 배치와 공간 설정, 색감으로 감정 불어넣기, 시각적 효과(비주얼)와 표정연기, 사운드와의 호흡은 과장과 미흡을 털고 적절하다.

이 춤의 시작되면 밝은 조명과 요란한 악기들의 울림, 눌림을 풀어내는 어울림의 미학을 생각하게 된다. 고석용, 강순탁, 김병성, 이재혁, 이호준으로 구성된 악사들과 호흡을 맞춘 춤꾼들은 독무와 군무로 편성된 자신들의 춤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최원선의 무대 장악력은 한 명이 여러 명의 효과를 구사할 수 있는 무대장악력을 보여준다. 춤이 끝난 뒤, 긴 여운이 남는다.

▲조우
▲조우
▲조우
▲조우
『살풀이춤』(한영숙류, 출연 김숙자) : 살풀이의 핵심 사위를 춤으로 승화시킨 ‘살풀이춤’의 현대화는 1935년 춤꾼 한성준으로 기인된다. 그의 제1회 춤 발표회에서 손녀 한영숙은 ‘살풀이 춤’이라는 명칭으로 춤을 추게 된다. 한국무용의 기본으로 잡게 된 이 춤은 춤추는 이의 신장, 의상, 분위기, 연기, 소품, 지역에 따라 각기 오묘한 개성의 춤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인의 기품, 깊은 심도로 한국 한의 정서를 소지한 춤은 김숙자에 의해 차별화된 춤으로 탄생된다. 슬픔을 침화시키는 다양한 장치들, 디딤, 불림, 오름에 걸친 세기(細技), 춤 강도의 조절, 천을 다루는 솜씨, 악사들의 리듬에 맞추는 테크닉은 ‘살풀이춤’의 정형을 구사한다. 무사(武士)의 칼에 해당되는 천은 무사(舞師) 김숙자에 의해 처연하게 연기된다. 울음을 부를 것 같은 ‘살풀이블랑’의 모든 것은 천을 부리는 도입부의 한영숙 영상과 대비된다.

▲조우
▲조우
『화란춘성』(안무 김숙자, 초연: 1993, 출연 이승주 외 14명): 배경 막에 퍼지는 꽃들의 만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시조 한 수, 화창한 봄날, 천렵을 가는 여인들, 앉아 있고, 반쯤 서있다. 복식미로 시선을 잡으며 다양하게 전개되는 춤들, 가야금 리듬을 탄 여인들은 흥에 겨워 무릉도원의 선계를 춤으로 표현한다. 일상의 즐거움과는 사뭇 다른 감정 절정의 풍경이다.

개인의 기량과 조합이 돋보이는 모임과 흩어짐, 한국 특유의 선과 유연함으로 만들어 내는 연희적 희극성이 가미된 춤은 부동의 매력을 소지하고 있다. 매력을 불러오는 숨바꼭질 같은 다양한 장치, 뒤틀림과 소품를 이용한 경쾌한 춤으로 구성된 봄날의 풍경은 색, 향, 미의 기본을 가지고, 빛을 첨가시키고, 흥을 부르며, 소리를 뿌리며 시각적 기쁨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진도북춤
▲진도북춤
『실심초』(失心秒, 초연: 2001, 안무 및 출연 김숙자): 먼 산, 심연의 아픔을 끌어내기라도 하듯 산조춤 『실심초』는 인간 내면에 흐르는 갈등의 골짜기에서 자신을 탈출시키고자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준다. 떠오른 달, 가벼운 징소리, 집중과 심도있는 연기 속에 성금연의 가야금, 안숙선의 구음, 시나위 가락은 아름다움 속 갈등의 일렁임을 일체화 시킨다.

분위기에 심취해 있다보면, 운명의 굴레, 그 ‘틀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재가불자의 해탈, 자신에 대한 불신과 도피심리, 한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극기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창작된 창무 『실심초』는 개인기로 최대한 감정을 끌어올려 그 화려한 춤 수사가 새로운 문화원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우』(遭遇,안무 최원선, 출연 김숙자, 최원선, 신동엽, 홍정남, 유승관, 정준용, 김민영, 황아람, 이은정, 이이슬, 김유연): 춤맥 잇기를 상징하는 두 개의 거대한 조형, 스승이 되어도 좋고, 모녀가 되어도 좋다. 현대식으로 전개된 무제(舞祭), 무당들의 부채 움직임에서 포착된 움직임이 현대기법과 조우한다. 고인이 된 스승들과 후학들이 춤으로 조우한다.

▲화란춘성
▲화란춘성
세월을 이끄는 느린 저음의 현(弦), 이분법적으로 구성된 이질감, 갈등을 나타내는 바이올린의 파열음, 모녀를 뺀 여성 6인무와 남성 3인무의 군무, 만남을 상징하는 다양한 몸짓, 맺고 이어지고, 느리고 길게 이어지는 영혼의 흐름 속에 김숙자와 최원선 모녀가 같이 춤을 춘다. 투박한 거문고, 정(情)을 일깨운다.

깊은 동굴같은 느낌으로 만나는 조형, 회상은 붉은 열정으로 핀다. 측면 좌우측에서 등장하는 여인들, 정면에서 앞으로 진전하는 세 사내들,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다가 다양한 무늬의 영상 디자인 쇼, 의미심장한 구음, 앞으로의 각오를 밝히는 열정은 온통 붉은색으로 나타난다. 무수한 꽃이 눈처럼 내리는 가운데 조우는 현대로 가는 춤을 각오하며 해피엔딩 한다. 전통무 계승과 창작무의 예술화, 신무용의 추억과 시대를 앞서간 춤꾼들의 작품 재조명은 ‘비주얼 테크닉의 발달과 가변적 다양성’의 도움으로 문화 콘텐츠 창출의 소중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굿’의 상징성 재해석은 전통미와 현대 비주얼의 교감으로 신비적 단자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전통음악과 사운드에 맞춘 춤에 모녀가 동시에 춤추는 광경은 경이롭다.

김숙자 · 최원선 공동안무의 『춤의 여정 맥을 잇다』 는 현 시대의 대표 무용예술인 김숙자를 통해 스승들의 춤의 흔적을 찾고, 김숙자의 대표작들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음은 물론 그 맥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예술정신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중 최원선을 후학의 한 본보기로 삼고 있다. 이번 공연은 진정성 있는 춤 공연의 대표적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장석용 춤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