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일의 한국문화이야기] 담배,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1901년 그리스인이 인천에 우리나라 첫 담배공장 설립국민건강 명분 담뱃값 올렸지만 금연 못하는 서민 고통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 민족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들은 담배를 '타바코'와 비슷한 발음으로 했다고 하는데, 유럽인들이 'tabaco'로 명기하여 세상에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6세기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몇몇 국가들과 교역을 하면서 담배를 가장 먼저 접합니다.
당시 일본은 타바코를 '단바고' 또는 '단바기'로 불렀으며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에도 자연스럽게 소개됩니다. 처음 보급 당시에는 일본 발음과 유사하게 담바고, 담바귀로 불렀다가 훗날 '담배'라는 용어로 굳어지지요. 그리고 한자로 표기할 때는 남초(南草) 또는 왜초(倭草), 그리고 연기를 피운다 하여 연초(煙草)라고도 명시했습니다.
1630년쯤 당시 문장가로 알려진 '장유'란 사람이 담배에 대해서 "맛이 쓰고 독성분이 조금 있어 먹지는 못한다. 그러나 입으로 빨아 연기를 뿜어내는데 처음에는 어지러우나 자꾸 피면 '인'이 박혀 어지럽지 않다. 요즘 피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라고 그의 저서 '계곡만필'에 적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은 피우면 배가 부르고, 배부름을 줄여주며, 추울 때는 몸을 따뜻이, 더울 때는 시원케 한다"며 애연가다운 예찬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담배 수요는 폭증하고, 담배 농사가 돈이 된다 하여 농가에서 앞다퉈 재배하다보니 정작 먹거리 작물인 보리, 콩 등의 식량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급기야 조정에서는 '비옥한 땅에서는 담배를 재배치 말라'고 엄명을 내려 이후 기존 밭이 아닌 화전이나 산악지대에서 담배를 생산했지만 여전히 인기는 날로 더해 17세기 중엽에 한양의 시전거리에서는 쌀, 면포, 어물 다음으로 담배 거래가 활발했다고 합니다.

수백 년간 이어온 잎담배(권련) 형태의 담배가 오늘날 흔히 피우는 필터담배로 바뀐 것은 1800년대 중엽 영국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개항(1883년) 이후 필터담배가 밀려옵니다. 이때 주로 수입된 담배로는 미국 산 올드골드, 히어로, 스타가 있었고 영국제 스리캣슬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1901년 그리스인 벤들리스가 인천에 동양연초회사를 설립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담배공장을 만듭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수입담배에 밀려 곧 문을 닫고 1903년 미국인 헤밀튼이 맥을 이어 다시 그 자리에 ‘제물포 연초회사’를 세웁니다. 주 제품은 ‘홍도패’ ‘산호’ ‘뽀삐’였으며 1921년 조선총독부가 연초전매법을 실시할 때까지 영업했다고 합니다.
나라는 점점 일본인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는데 담배는 불티나게 팔려 나가자 당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던 서상돈 선생이 대국민참여 호소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습니다. “수년 동안 우리 정부가 일본에서 얻은 빚은 약 1300만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빚을 갖지 못하면 장차 우리 국토가 일본의 담보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궁리 끝에 전국 2000만 동포가 일제히 담배를 끊는다면 한사람의 한 달 담뱃값을 20전으로 추산하여 3개월이면 국채 액에 도달하리라 봅니다. 부녀자들의 금가락지나 비녀도 크게 도움이 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우리 백성이 석 달만 담배를 끊으면 우리의 국토가 보전될 수 있습니다.”
나라 빚 갚는데 금연하자고 역설한 내용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담배를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58년에 발매된 ‘아리랑’은 우리나라가 생산한 최초의 필터 담배입니다. 발매 초기의 아리랑은 종이와 천을 말아서 필터로 사용되어 흡연감이 자연스럽지 않아 애연가에게 많은 불평을 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터를 곧 수입하여 사용하고 국산 필터까지 개발되면서 무려 30년간 사랑을 듬뿍 받다가 1988년 12월에 품절됩니다. 1965년 7월 7일에 발매된 ‘신탄진’도 우리 많은 사랑을 받은 담배였는데 이 인기는 ‘청자’의 등장으로 가라앉습니다.

이렇듯 애연가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담배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급기야 국민건강의 이유로 절반에 가까운 가격인상이 단행되어 급히 끊지 못하는 서민에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데야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영세한 서민을 위해서 저가 담배를 고려해야 한다는 정가의 소리를 듣노라니 괜히 부아가 돋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담배가 사라질 수 있을까요?
홍남일 한·외국인 문화친선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