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근대화 시절의 약(藥)
러·일 전쟁의 역사 속 숨겨진 '정로환' 오늘날에도 인기고소한 맛의 건강 보조제 '원기소' 군것질 삼아 먹기도
1904년 2월 8일 일본 해군이 러시아군의 여순 항을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됩니다. 이 전쟁을 위해 일본은 이미 2년 전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온 터라 큰 저항 없이 여순 항을 빼앗고 여세를 몰아 만주까지 진격해 들어갑니다. 한편 전쟁 선포도 없이 쳐들어오는 일본군에 크게 당황한 러시아는 후퇴를 거듭하다가 만주에서 전열을 정비합니다.
러시아군이 만주에서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러시아의 주력부대가 합류했기 때문이었지만 일본군 스스로도 공격의 고삐를 늦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주의 나쁜 수질로 인해 병에 걸려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일본 천황은 기쁜 나머지 다이코 신약의 제품이 러시아를 정벌하는 데 기여한 약이라며 ‘정(정벌할 征) 로(러시아 露) 환(약 丸)’이라는 제품명을 지어 줍니다. 이런 연유로 정로환은 유명해졌고 다이코 신약은 최고의 제약회사로 우뚝 서게 됩니다. 이후 한국에서도 수입 일본산 征露丸은 비상 상비약으로 인기를 누렸고, 1972년 한국의 동성제약이 다이코 신약에서 기술을 전수해 이름을 ‘바를 正’으로 바꾼 正露丸을 국내에 시판하며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이미지 확대보기몇 년 전 TV 드라마 ‘제중원’에서 자주 소개되던 금계랍(또는 키니네)이 그것인데, 이 금계랍은 1884년 독일(세창양행)에서 수입된 약으로 말라리아(학질) 치료제였습니다.
그 당시는 여름철 모기 극성에 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이 학질에 쉽게 걸렸고, 그럴 때마다 한방이나 전래되는 민속처방에나 의존하여 꽤나 고생을 했는데 금계랍의 출현은 당시로서는 혁명과도 같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학질에 걸리면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사정없이 춥고 떨렸는데 이럴 때 금계랍의 노란 알약은 최고의 구세주(?)였던 거지요. 그런데 이 금계랍은 그 맛이 너무 써서 다 큰 아이가 여전히 엄마 젖을 보채면, 어머니들은 이 금계랍을 빻아서 젖꼭지에 살짝 묻혀 놓아 아이로 하여금 젖을 멀리하게 하는 데에 효과를 보았고, 자기의 손가락을 입으로 빨고 다니는 아이에게도 금계랍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금계랍이 보급되던 당시 지금의 동화약품 창업자 민병호는 1897년 달콤하고 약간 톡 쏘는 물약 소화제 ‘활명수’를 개발합니다. 활명수는 지금도 한국사회의 불후의 명 소화제로 그 명성을 구가하고 있고 이를 처음 개발한 민병호는 당시 제중원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 의학에 한방을 접목하여 소화제 ‘활명수’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해방 직후 미군은 '다이아 찡'이라는 약을 그들의 상비약으로 가져왔는데 이 약은 폐렴, 임질, 이질, 설사, 곪은 곳에 특효약이었습니다.
변변한 약이 없던 그 당시, 이 약은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습니다. 웬만한 병이면 다이아 찡을 먹었고 그 인기가 하늘을 찔러 길에서도, 시장에서도 다이아 찡을 팔았으며 사탕 사 먹듯이 다이아 찡을 사 먹었습니다. 다이아 찡은 사실 감염 질환에 사용되는 살균제였는데 여러 증상에 신통 맞게 잘 나은 이유는 당시의 사람들은 비교적 항생제에 내성이 없던 때라 웬만큼 효과를 본 것도 사실입니다.
6·25 전쟁 이후 다이아 찡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내성 환자가 점점 늘어났는데 놀랍게도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약이 ‘페니실린’입니다. 페니실린은 항생제로 그동안 만병통치약 다이아 찡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여러 감염증을 단숨에 치료하며 사람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상처가 나면 당연히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고 감기로 열이 나도 항생제 주사 한방을 원했습니다. 이처럼 페니실린 항생제를 즐겨 찾는 동안 페니실린에 대항하는 내성 세균도 점점 증가하여 스트렙토마이신, 카나마이신이 페니실린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미지 확대보기전쟁 후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몸에는 회충과 이가 참 많았습니다. 인분을 준 채소를 먹던 시절이라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뱃속에 기다란 회충을 몇 마리씩 넣고 살았지요. 학교 교실에는 회충, 촌충, 십이지장충 등의 사진과 설명 판이 걸려있었고 양호실에는 실린더 병에 포르마린 속 실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보건소나 학교에서는 수시로 누런 회충약 수 십정씩 먹으라 하고 다음날 대변 후 받아오라고도 했습니다. 회충이 많은 아이는 영양 결핍까지 있어서 얼굴은 누르스름하고 허옇게 각질이 생기는 ‘버짐’은 입 주위와 까까머리에 비듬덩이 흔적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가을로 접어들면 목덜미나 팔소매로 ‘이’들이 들락날락거리는데 이럴 때면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하얀 분말가루인 일명 DDT를 뒤집어쓰게 했습니다.
두통이나 몸살이 날 때 ‘명랑’이나 ‘뇌신’을 찾은 것은 1960년대 초반입니다. 그다지 쓰지 않는 가루약이었는데 지금의 두통, 치통, 생리통약과 같은 효능으로 인식됩니다. 이 약들은 국내에서 개발 되었으며 치료제 보다는 보조제였습니다.
이미지 확대보기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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