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강금주의 미술산책(8)]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 사진(Photograph)

글로벌이코노믹

[강금주의 미술산책(8)]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 사진(Photograph)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며칠 전 뉴스에서 미국 디즈니랜드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관람객들에게 셀카봉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어디를 가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어버렸다. SNS 상에서도 긴 설명대신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요즘, ‘사진’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미술 장르가 아닐까. 그야말로 누구나 찍고, 찍히고, 또 찍은 것을 보며 즐기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술은 시각 예술(Visual art)로서 시각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분야다. 회화, 조각, 판화, 미디어 아트, 그리고 사진 등이 이에 속한다. 하지만 사진이 예술로 인정되고 대중들도 그렇게 인식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는 다양한 전시나 매체들을 통해 미술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대중들이 사진을 예술장르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진은 특유의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속성 때문에 오랫동안 전통적인 회화와는 매우 다른 대우를 받아온 것이다. 사진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대혁명이 끝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로 새로운 19세기를 맞이했던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사진 발명자로 알려진 사람은 프랑스인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이지만, 그는 사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동업자였던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는 사진술의 발견을 ‘발명’으로 지칭하며 니엡스의 ‘니에보타입’과는 다른 ‘다게레오타입’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1839년 프랑스 정부는 사진이 민주적인 예술수단이며 자본주의적이고 기술 중심적인 새로운 산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다게르(Daguerre)를 사진의 발명가로 인정하고 종신 연금과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취하게 해주었다.

루이 다게르 작 '프랑스 파리', 1939년이미지 확대보기
루이 다게르 작 '프랑스 파리', 1939년
하지만 사진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미술은 여전히 귀족들이 향유하는 특권층의 예술이었고 당시 파리의 미술계는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진을 훌륭한 발명품으로 인정했을 뿐, 이후 수 십 년 간 주류 미술로 인정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과 같은 전시회였던 파리 살롱(Salon)전에서 사진은 전시될 수가 없었다. 사진협회의 노력 끝에 살롱전에 입성한 이후에도 평론가들의 독설은 이어졌으며 사진가끼리도 저작권 싸움이 붙는 등 문제가 많았다.
결국 1962년 사진은 파리 법정에 서게 된다.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가리기 위한 주류미술계와 사진협회의 싸움이었다. 1심은 사진이 기술적이고 도구적인 산업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사진의 참패였다. 이에 재심을 거쳐 사진은 엄연한 예술적 표현수단이며 창작품으로서 저작권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받는다. 이렇게 보수적인 미술계와 진보적인 사진계의 법정 싸움 끝에 사진은 법으로 그 예술성을 공인 받은 최초의 예술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진은 스스로 법으로 인정받은 예술로서 그 예술다움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의 시간을 거치고 낡은 시선들과 싸워가며 발전해 왔다.

루이 다게르이미지 확대보기
루이 다게르
언제부터인가 사진동호회가 많이 생기고 각종 ‘사진전’도 아주 인기가 좋은 것 같다. 혹자는 회화보다 시각적인 이해가 쉬워서, 또 혹자는 역사의 기록이자 누군가의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사진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 역시 주류 미술계에서 투쟁하면서도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진을, 사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좋아하고 존중한다. 산업으로서의 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 그 모든 가능성을 인정받은 19세기 사진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예술 장르가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연민을 함께 느낀다.

과학이 발전하는 한 앞으로도 사진은 여러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 것이고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것들을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이 가장 민주적인 예술매체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며, 묵묵히 자기만의 역사를 써나갈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탄생비화만큼이나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기대되는 사진 예술을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