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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 청춘에 걸린 근대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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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 청춘에 걸린 근대에 관한 명상

[무용리뷰] 송한나 안무의 『모던타임』

보훈의 달을 맞아 국립극장 별오름에서 개최된 보훈전국무용경연대회 무담(舞談)의 제6회 국제신인작가전에 출품된 『모던타임』은 영화 ‘모던타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써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 한국무용이다. 근대화의 꽃망울이 피어나던 참혹한 암흑기의 경성시대, 그 개혁의 시대에 서구 문물을 앞서 받아들였던 단발, 신사복, 백구두로 치장한 모던보이와 양산에 양장을 한 모던 걸들은 시대의 브랜드 창출에 일조한다.

그들은 패션과 스타일을 선도하며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대담한 행보를 연출하였다. 정보에 빠른 그들은 자주독립을 위해서라면 초개과 같이 자신을 희생한다. 안무가는 가슴 한 구석, ‘평범한 청춘’으로 살고 싶었던 1930년대의 그들의 영혼에 보내는 위무(慰舞), 조국을 사랑한 청춘들의 희생정신과 그 아픔을 현대적 감각으로 버라이어티, 패키지, 예술성과 상업성의 혼재를 떠올리게 하며 폭풍처럼 시대의 간극을 훑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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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나 안무의 '모던타임'
4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장 ‘숨’, 2장 ‘어둠, 살아간다는 아픔’, 3장 ‘현실, 살아간다는 기쁨’, 4장 ‘청춘, 1930. 아프기도, 기쁘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성격, 주제, 배경이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은 춤 연기자 세 사람의 기교와 밀도감으로 안무가의 성숙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시대의 암울함을 교훈으로 삼아 모던 타임을 격상시키고, 춤을 전개시켜 나아가는 방법론에 있어서 ‘들뜸’과 ‘가라앉힘’을 잘 조절해내고 있다.

1장; ‘숨’,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기쁨과 축복 속에 태어나 성장한다. 대칭 구조의 두 명의 여자 무용수, 멜로디가 빠진 담담한 목소리에 맞춰, 단순과 임팩트 강한 동작을 반복한다. 이자람의 ‘숨’이라는 음악을 인트로에 사용, 초반 집중도를 유도한다. 머리가 긴 무용수는 경성시대의 구여성(민소매), 머리를 커트한 무용수는 신여성(긴 소매)을 상징하지만 의상은 겉모습과 다른 내면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들 모두의 참 모습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하는 열사들이었다.

2장; ‘어둠, 살아간다는 아픔’, 감옥 신이다. 정미조의 ‘개여울’의 초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해당되는 춤이다. 감옥에 갇혀 온갖 모진 고문을 받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열사가 있었는가 하면 고문을 견디지 못해 일제에 굴복하여 앞잡이가 된 상황에 처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만의 갈등을 두 무용수가 몰아치는 컨텍 동작으로 표현해낸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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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나 안무의 '모던타임'
3장; ‘현실, 살아간다는 기쁨’, 인형극 신이다. 정미조의 ‘개여울’의 후반,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에 해당되는 춤이다. 2장과 같이 두 무용수의 갈등을 표현하지만 움직임을 인형과 같이 움직이며 마치 한 편의 짧은 단막 인형극처럼 보인다. 남자 무용수의 카메오 출연으로 작품 중간에 모던타임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소재가 무거운 만큼 가볍게 웃음을 유도한 장면이다.

4장; ‘청춘, 1930. 아프기도, 기쁘기도…….’, 못다 핀 청춘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장이다. ‘개여울’ 노래에 맞춰 두 무용수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춤을 춘다. 구여성은 고문(감옥을 표현하는 영상을 사용. 영상의 움직임에 맞춰 무용수가 춤을 춘다.)을 받는 모습을 표현하는 반면, 신여성은 마치 바(bar)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발 뒤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춘다. 두 무용수가 천천히 만나 전혀 다른 느낌으로 컨텍 동작을 이어간다.

마지막에 들리는 총성 한 발, 두 무용수가 동시에 동상과 같이 멈춘다. 이 장면은 관객들이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일까, 누가 총을 맞은 걸까, 누군가 배신한 것인가’등을 추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결국 신여성이 쓰러지지만, 정답은 없다. 일제에 굴복한 신여성의 진정한 내면은 조국의 광복이었기에 희생을 한 것일지도 모르고, 구여성이 신여성을 향해 겨눈 총구였을지도 모른다. 결론을 관객 몫으로 남긴 채 춤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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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나 안무의 '모던타임'
송한나의 춤은 배려와 관용에 기인한다. 그녀의 안무작 『모던타임』은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청춘’을 반추하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녹녹치 않은 독립안무가의 작업이 관객이 선호하는 가변체(可變體)가 되어 정도와 품위를 갖춘 작품이 되길 희망한다. 특히 비극적 상황을 아이러니 형식으로 대체하고, 감상을 투쟁의 의식체로 만드는 작업들은 오만과 과오의 많은 실험작 작가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송한나는 서울기독대학교 무용학과를 거쳐,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 공연예술경영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재원이다. 충남예술고등학교 한국무용 실기강사로서 『모던타임』, 『하염없이』, 『부양가』, 『남. 여. 노. 소.』, 『쌍둥이자리』, 『품(稟)』, 『눈먼소리』 등의 안무작이 있다. 제6회 국제신인작가전 대상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 제48회 신인무용콩쿠르 한국창작무용 은상, 제14회 전국무용경연대회 고양무용제 대상을 거쳐 『모던타임』으로 제6회 보훈전국무용경연대회 전체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수상을 축하하고 열공 정진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