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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토그램이 가진 기능성 넘어 감정의 상징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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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토그램이 가진 기능성 넘어 감정의 상징으로 표현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7)] 기호가 상징하는 현대인의 감정들

기본 요소인 점·선·면 이용

인간의 감정·감성 잘 드러내
기호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

심리적 상태 시각적 상징화

우리는 수많은 기호와 신호에 둘러싸여 있다. 아침에 나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신호등, 교통신호들, 지하철의 비상구 표시와 화장실 표지 등 거리에서 만나는 기호뿐 아니라 스마트폰의 여러 애플리케이션과 컴퓨터의 아이콘, 이모티콘들, 전자기기의 여러 가지 버튼 모양, 좀 더 폭넓게는 문자까지 우리가 생활하고 사용하는 모든 것이 기호와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젊은 층이 사용하는 말도 줄임말을 사용해 점점 짧아져 그들만의 기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함영훈, LOVE III. 718 dots composition, Acrylic on Canvas, 2013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LOVE III. 718 dots composition, Acrylic on Canvas, 2013
함영훈은 기호, 그중에서도 픽토그램(pictogram)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픽토그램은 그림(pi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로 언어를 초월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그림문자이다. 언어를 포함한 기호는 전달이 가능하고 지각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인 기표(記標)와 전달되는 내용과 개념적인 의미인 기의(記意)로 이루어진다. 언어학자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에 따르면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것이다. 장미꽃이 ‘장미’라고 불리게 된 것은 우연한 것이지 장미꽃은 얼마든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으며 그 향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픽토그램은 기표와 기의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일치하여 세대와 국가, 성별을 초월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 디자인 언어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함영훈이 픽토그램으로 디자인이 아닌 회화적 작업을 하는 것은 픽토그램이 가진 기능성을 넘어서 이를 감정을 지닌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함영훈, LOVE IV (transform) 900 dots composition, 2014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LOVE IV (transform) 900 dots composition, 2014


함영훈, LOVE IV 1000 dot composition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LOVE IV 1000 dot composition
함영훈의 작품은 여러 시각적 조형요소들 중에서도 픽토그램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점·선·면을 이용해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고 감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형태를 보여준다. 신호등의 초록색 불빛에 걷고 있는 사람 형상의 픽토그램은 이제 걸어서 신호를 건널 수 있다는 표시가 아닌 바쁘게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는 분주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심장 모양에서 온 하트 표시는 ‘사랑’을 표시하는 기호를 넘어서 사랑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함영훈의 점 시리즈 중 대표적인 ‘LOVE’ 시리즈에서 작가는 형태적으로, 기능적으로 사랑을 정보로만 나타내는 픽토그램에 사랑이 가진 감정을 실어 표현해내고 있다. 함영훈은 인종과 나이, 문화에 상관없이 누가 봐도 ‘사랑’임이 인지 가능한 하트 모양이 ‘사랑’이라는 것을 가장 쉽게 알려주긴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도파민, 바소프레신, 옥시토신, 아드레날린 등 여러 호르몬들이 작용해 이루어지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작용으로서의 사랑을 표현해주지 못한 것에 주목했다. 아크릴 물감으로 스탠실 및 마스킹 기법을 이용하여 두껍게 쌓아올려진 점들은 화면을 율동감 있게 채워 넣어 평면성을 넘어서 입체감을 부여한다. 빈 배경의 점으로 이루어진 하트는 풍성하게 꽉 차보이기도, 비어보이기도 한다. 정지해있는 회화 작업인 하트 작품들은 리듬감 있게 놓인 점들로 움직이는 듯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화면 위의 점들이 빈 공간 위에 떠다니다가 이제 막 하트 모양을 만들거나 혹은 하트 모양에서 분해되는 듯하여 가득 찬 사랑이 아닌 두근거리고 흥분되지만 무엇인가 결여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을 표현하는 기호는 하트로 분명하지만 사랑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수많은 점이 만들어내는 함영훈의 ‘사랑’은 밝음과 어두움, 따뜻함과 차가움, 안정감과 불안감, 흥분, 쾌락, 순수 등 사랑의 각기 다른 여러 속성을 멈추어, 움직이는 듯이 채워져 있지만 비어있는 듯이 나타내고 있다.
함영훈, TWINKLE FACE 256 dots composition, Mixed media, 2013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TWINKLE FACE 256 dots composition, Mixed media, 2013
함영훈, FACE (inside), 256 dots composition, Acrylic on Canvas, 2013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FACE (inside), 256 dots composition, Acrylic on Canvas, 2013


점 시리즈 중 얼굴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메이크업을 통해 아름답고자 하는 욕망과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영상작품은 하나의 점에서 10단계의 색채변화가 이루어지고 256개의 점이 서로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색의 빛의 변화를 줌으로써 시시각각 변화하는 얼굴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얼굴을 쉽게 얼굴 형태로 인지하지만 이목구비가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으로 외계에서 온 이질적인 낯섦을 경험하기도 한다. 자신을 그린 자화상도, 타인을 그린 초상화도 아닌 이 얼굴의 모습은 기본적인 얼굴 형태를 대표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자 미지의 낯선 초상화이며, 이는 익숙하지만 낯선 거울 속 내 모습이기도 하다. 눈, 코, 입이 없어 표정을 알 수 없고 그 빛과 색만 볼 수 있는 이 얼굴은 보는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기쁘게도, 슬프게도, 우울하게도 볼 수 있고, 아름답게도 기이하거나 끔찍하게도 볼 수 있다.

함영훈, PEOPLE YOU MAY KNOW I Bradley Pitt,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PEOPLE YOU MAY KNOW I Bradley Pitt, 2015
함영훈, PEOPLE YOU MAY KNOW I Kate Moss,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PEOPLE YOU MAY KNOW I Kate Moss, 2015
함영훈, PEOPLE YOU MAY KNOW II 2,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PEOPLE YOU MAY KNOW II 2, 2015
유명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 인물들의 모습을 세로선으로 구성된 면으로 표현한 ‘알 수도 있는 사람(people you may know)’은 가상공간 속의 친밀성과 익명성을 탐구한다. 서명(signature)의 약자 사인(sign)과 기호(sign)의 영어철자가 같다는 데에서 착안해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개인의 정체성과 관계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작가는 SNS 상에서 자신의 서명처럼 사용하고 있는 이미지 사진을 선으로 재구성해 작품을 창작한다. ‘알 수도 있는 사람’은 ‘모를 수도 있는 사람’이다. 작품들의 인물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인과 알지 못하는 사람, 어딘가에서 본 듯한 사람들이다. 함영훈의 인물 이미지는 친밀성과 익명성 중간에 있으며 회색으로 이루어져 검은 색과 흰 색의 중간에 있다. 또한 선으로 이루어진 사진 이미지에서 선과 선 사이가 비어있는 결여의 빈틈을 보게 된다. 과거의 이미지를 찍는 사진은 현재를 거쳐 다른 사람들이 미래에 보게 하도록 SNS에 올리기 때문에 작품의 선과 선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은 앎과 모름, 과거와 현재, 미래,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의 간극을 암시하고 있다.

함영훈, DANCING III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DANCING III
함영훈, UNTITLE (five people)이미지 확대보기
함영훈, UNTITLE (five people)
“인간이 정의한 기호 안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에 대한 심리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상징화(symbolization)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설명처럼 기호로 둘러싸인 우리의 삶에서 함영훈의 기호들은 알리고, 지시하고,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점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뛰게 하고, 선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면들은 우리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감정을 드러낸 함영훈의 기호들. 거기에 우리의 감정도 함께 투사되며 녹아든다. 기호가 우리에게 표정을 건넨다.

● 작가 함영훈은 누구?

홍익대학교에서 광고 멀티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한 함영훈은 2008 서울디자인올림피아드를 계기로 작가로서의 작업을 시작했다. 6회의 개인전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호림아트센터, 가나아트, 서울미술관 등의 그룹전과 홍콩, 상하이에서의 전시에 참여했고,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 ‘픽토그램’(예술로 승화되는 정보 디자인)』(도서출판 길벗, 2013)을 출간했다. 현재 그래픽디자인 중 픽토그램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픽토그래퍼(pictographer)로서의 작업과 순수미술작가로서의 작업을 활발히 병행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고 매일경제 TV <아름다운TV갤러리>에 미술평론가로 출연 중이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