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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극기적 삶 사유한 한국창작춤…유혜진·박지선 공동안무의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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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극기적 삶 사유한 한국창작춤…유혜진·박지선 공동안무의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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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박지선 공동안무의 '정글'
네 변과 같은 네 각 / 너와 나의 삶은 정글 / 짙은 하늘을 통째로 베낀 약병 / 일렁이는 사유의 미로를 관통한다 / 원시의 불가촉 붉은 숲을 스치거나 / 그랑 블루의 농밀한 해수욕장을 뒹굴어도 / 정글 깊은 산소샘 오아시스 / 비밀스런 정령의 지령 받는다/ 아침을 몰고 오는 빛의 수레가 / 삼봉을 힘차게 넘도록 / 기도에 기도의 힘을 보태라 / 찬찬히 얼굴 들어 바람을 맞이하라 / 맑고 푸른 찬란의 서(敍)/ 차가운 의지의 산물 / 삶의 예찬, 힘이 솟는다

3월 19일(토) 저녁 일곱 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유혜진 댄스프로젝트’·‘삼대 댄스컴퍼니’ 공동 주최·주관, 임학선댄스위 후원, 유혜진·박지선 공동 안무의 「정글」이 공연되었다. 전통과 한국창작춤을 두루 아우르면서 두 안무가는 코로나 대전염 상황이 몰고 온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열정의 춤을 감행했다. 의지, 감정, 이성의 세 축으로 독해 되는 「정글」은 춤의 창조적 정신, 미학적 움직임, 믿음의 성취물이라는 순수지성의 감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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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박지선 공동안무의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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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은 제1장 ‘생존’, 제2장 ‘회고’, 제3장 ‘다시’로 장(場)을 나누고, 전통에서 발아되어 동시대 춤의 거대 조류를 수용하는 전향적 모습을 보인다. 큰 틀에서 두 안무가의 동시대적 한국창작춤은 현대춤의 움직임을 보이며, 인간의 본성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시각화, 사운드가 주조하는 분위기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장식 구축을 지양하고, 「정글」의 상황을 설득한다. 「정글」의 수사(修辭)는 이미지의 적절성을 유지한다.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영상이 순환적 삶을 스쳐간다. 천지창조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린다. 정사진 컷과 동영상은 시각 훈련으로 태초의 ‘빛과 어둠, 하늘, 땅 바다 식물, 해달별, 새 물고기, 육지짐승, 인간’의 연계성과 순환의 천지창조의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에서 ‘아이에서 노인으로 변화, 노인의 눈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무용수(선은지)가 바쁘게 뛰면서 등장한다. 잇달아 여러 무용수들이 마구 뛰며 등장한다. 익명·무명 속에 관객이 동일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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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생존’; 인간은 생존을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한다. 정오(正誤), 정의와 불의를 가릴 틈도 없이 타인의 희생이 자행된다. 정체성이 사라지면 모든 질서는 파괴된다. 춤은 분주한 현대인으로 시작된다. 배려없는 삶, 오로지 자신의 길을 만들기에 바쁜 대립 구도가 연출된다. 빠른 템포의 음악과 움직임, 각자의 길을 상징하며 비추는 조명, 경쟁을 의미하는 대칭 구조의 조명이 사용된다. 원을 쌓아 노니는 모습은 휘청거리며 향락을 즐기는 무리의 표현이다. 두터운 빗소리는 향락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의 경쟁사회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제2장 ‘회고’;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져 간다. 방향감각과 초심을 잃어가고 외면이 들어선다. 상실에 이은 좌절은 분노에 이른다. 나와 우리라는 선택을 해야한다. 각자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초심은 ‘부닥칠 것은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인지하고 천천히 다시 나아간다. 힘과 권력에 대한 차등은 자연의 법칙이다. 잔잔하지만 웅장한 기운이 감도는 음악, 은은한 조명과 포그를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가 도출된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움직임으로 자신을 서서히 일깨우는 모습, 이 세상에서 ‘우리’는 작은 움직임으로 뭉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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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박지선 공동안무의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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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다시’; 춤 예술가로서의 바른 삶의 지향성을 견지하고,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한다. 관계의 소중함과 초심을 되새기며 변화의 물결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커지는 작은 움직임은 소리 없는 외침이다. 잔잔하던 음악은 박진감을 더해가고, 조명은 확산되며, 무용수들은 한 명씩 무대 밖으로 퇴장했다가, 다시 자켓을 가지고 나와 걸치며, 입으로 결의를 다진다. 이전의 대립구조와 다르게 작은 무리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주체적 현대인으로 똘똘 뭉쳐있다. 다시, 정글이라는 세상을 향해 패배하지 않고 힘차게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유혜진은 춤에 대한 열정적 시선으로 삶에 대한 이지적 관찰자의 모습을 보여 왔다.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 성숙해져 가는 나이테에 관한 상상, 가슴 깊은 곳에서 배양된 것 같은 느낌의 많은 안무작들은 조신의 그녀를 살펴보게 해준다. 좁은 길모퉁이에서 청어를 굽는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대하게 조율해갈 것 같은 그녀에게서 탐스런 모란이 독수리가 되어 날아 갈듯한 상상이 인다. 「정글」에서 그녀의 춤은 빛나는 여명의 눈동자 같았다.

박지선은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너와 나’의 경쟁적 구도에서 인물의 이미지 구축을 중시하는 안무가이다. 그녀는 춤 연기자로서 능수능란한 움직임과 등·퇴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시선을 장악하는 매력을 소지하고 있다. 전통과 창작 사이에 자신의 춤이 놓여있으면 거침없이 모든 세부적 디테일로 대안적 강약을 조절할 줄 안다. 그녀의 춤에는 늘 유희적 즐거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의 안무 출연작은 힘든 세상을 쉽게 풀어내는 삶의 지침이 들어 있다.

「정글」은 교육 환경과 안무 경력, 현재적 삶에 있어서의 유사성을 지닌 두 사람의 여성 춤 예술가가 비슷한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서 녹슬지 않은 자신의 안무력과 연출력을 보이면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상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면서, 촘촘하게 조밀하게 움직임과 극적 효과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들을 배치하면서 기교적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봄을 열면서 ‘젊은 청춘들에게 바치는 몸시’는 튼실한 시(詩)알들이 서정 속에 녹아든 튼실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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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무가 프로필

- 유혜진/ 계원예중 출강, 성균관대 무용학 박사,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 임학선댄스위 수석단원, 성균관대 겸임교수 역임, 대한무용협회 이사. 주요안무작) 「마흔블루스」, 「다스름, 조율의 시간」, 「오늘, 새다림」, 「위대한 하루」, 「뛰는 사람들」, 「지금 가고 있어요」, 「두 점 사이의 거리」, 「Bird’s Eye View」, 「관계자출입금지」, 「청어」, 「문득」, 「영자이야기」, 「버릴 心」, 「지금 여기」, 「사랑니」

- 박지선/ 안양예고 전임교사 역임, 성균관대 무용학 박사,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 임학선댄스위 수석단원, 성균관대 겸임교수 역임, 대한무용협회 이사. 주요안무작) 「침향무」, 「태평, 좋지 아니한가」, 「Evolution」, 「너와 나의 이야기」, 「있는 그대로의」, 「하루」, 「그들의 시선」, 「Secret Box」, 「Soul Touch」, 「a page of my life」, 「사람내음」, 「어머니」,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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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진/ 김주빈 선은지 이혜준 김현우 송윤주 양한비 윤선아 박혜리 정지수 황서영 성주현 유혜진 박지선


장석용 문화전문위원(Changpaul,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동이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