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반가사유상 미소 속 '마음 치유' 소통•힐링의 몸짓

공유
0

반가사유상 미소 속 '마음 치유' 소통•힐링의 몸짓

[나의 신작연대기(29)] 차수정 안무, 이영일 연출의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명징한 소리 안고 대나무 조응한다/ 긴 구도의 강 넘어/ 마음 착한 사람들 춤추던/ 그 시절은 끝없이 푸르고 투명했다/ 경건한 아침 마주하는 사유의 붓다/ 어디선가 남모르게 지내시다/ 은근한 으뜸 미소로 오신 분이여/ 나른한 봄날 평온함으로/ 황소걸음으로 상생의 평화를 길어 오시니/ 존귀의 찬미 받으소서/ 반가부좌 틀고 앉아/ 뜬 돌과 대화하시고/ 바닷속 신비 논하시고/ 욕망의 문 열고 사바세계 살피시니/ 현(絃)은 노래하고 자비의 무게 무량(無量)이다/ 푸른 강이 일깨우는 흐름의 이치/ 싱잉볼 희망 피워 올린다

3월 1일, 2일, 3일 사흘간 오후 3시·7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순헌무용단(예술감독 차수정 숙명여대 무용과 교수) 주관, 차수정 안무·이영일 연출의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공연이 있었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은 명성을 거듭하며 걸작 이미지를 견고히 구축했다. 차수정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사유지 풍경은 불교 숭상 시대의 국보급 미소로 현대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현대인들이 휴식과 쉼을 바탕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는 통일신라 이전에 제작된 두 불상이 모셔져 있다. 고대 불교 문화재인 불상은 국보 제78호, 국보 제83호로 차이를 나눌 수 없는 걸작 반가사유상이며, 청동 조각으로서의 가치와 명상의 대상으로서의 존귀함이 두드러진다. 화려함은 제78호가 앞서지만, 옷 주름과 손가락 등의 세밀한 표현 기법과 사실성·입체성은 83호가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틀고(半跏) 현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상념에 잠긴(思惟) 불상이다.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 무릎에 얹고 있다.

'사유의 시간' 잃어버린 현대인, 지식적 갈증•내면의 번뇌 해소


안무가는 “넘쳐나는 이미지와 과도한 속도 탓에 ‘사유의 시간’을 잃어버린 지금, '반가(半跏)'의 자세로 부처의 사유 행위에 집중, 동참하게 한다. 관객과 무용수가 함께 만들어 가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은 모든 이들의 시각적·청각적인 예술 욕구 해소뿐만 아니라 지식적 갈증과 내면의 번뇌에서 자유롭게 한다.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제시하는 반가의 포스처(posture)는 지역, 세대, 계층을 초월해 인류에게 바치는 '만인(萬人)의 사유지'로 순헌무용단이 춤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힐링의 시간이다”라고 창작 의도를 밝힌다.

반원 세 개를 이어 붙인 삼산관(三山冠)은 신라 반가사유상에서만 발견된다. 현대는 이전 세대의 경험과 관습을 추억의 장(場)으로 넘겨 버린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세포 족속들은 신세대로부터 차가운 무관심의 대상이다. 세대 간의 몰이해와 갈등은 문제점을 도출시키고 있고, 서로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세상을 마주한다. 안무가는 ​자신의 주변에 와닿는 불경의 세태와 인습을 반가사유상의 미소로 다스린다. 반가사유상이 미륵보살이라면 미륵불을 통해 화평의 세상을 꿈꾸었던 그날과 오늘은 닮은꼴이다.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이 작품은 '금동미륵반가사유상' 특유의 모습을 동인(動因)으로 '생각하는 몸'을 제안한다. 관객의 이동과 몰입을 콘셉트로 한 작품은 현대적 존재 방식에 대한 성찰과 반가사유상의 미적·사상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아울러 현대인의 ‘생각의 탄생’, 그 시작의 문을 무대로 옮겨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반가(半跏), 새로운 희망을 예감하는 만인의 사유지로의 탐방은 혜초가 걸어간 그 길에서의 느낌을 불러온다. 영화 '유리'에서의 번뇌, '화엄경'에서의 유혹, '만다라'의 구도를 떠올린다.

소주제 따른 관객 시각에 변화…사유의 깊이 통한 깨달음 전달


'반가: 만인의 사유지'는 소주제에 따른 관객의 공연 시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방식이 있음을 인지시킨다. 이 작품의 기본 공간은 극장 밖 로비, 극장 안(A), 극장 안(B)의 세 공간으로 구분된다. 의미적 공간 구분은 1) 신심이 가득한 시절 2) 반가의 미소를 마주함 3) ‘불멸의 침상: 존중 Space’, ‘유리알 욕조: 바람 Space’, ‘무한의 요람: Space’, ‘눈먼 이들의 만찬 Space’, ‘N개의 반가(사유지대): 물 Space’에 이르는 세상의 방을 거침 4) 세상을 밝히는 구원의 도구가 우리의 사유(생각)를 통한 깨달음임을 밝힌다.

여명이 터온다. 세파에 시달리며 험한 세상을 거쳐 물때가 빠진 세상은 잠잠해진다. 싱잉볼이 느리고 길게 울려 퍼지고, 일상은 차츰 분주해진다. 뱃사공이 세상의 강을 건너는 듯 장대에 관한 서사가 시작된다. 외부와의 투(鬪)는 없다.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연출은 구도와 움직임, 색감과 사운드까지 디렉팅 기교를 투입한다. 움직임은 진공(眞空)의 표정으로 구도적 철학성을 지향한다. 차가운 무대에서 물의 사용만으로도 현실적 감동을 준다. 사유지의 공간은 경계가 없고, 시간은 영속이며, 이야기는 끊임없다.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이미지 확대보기
차수정 안무 '반가: 만인의 사유지'

세상살이란 물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안무가는 미장센을 고려하며 소용돌이 같은 움직임을 가로축으로, 전진을 세로축으로 놓고자 한다. 무리는 오인무, 삼인무의 조합으로 기도의 깊이를 가져간다. 일렁이는 마음으로 고깔을 쓴 여승이 번뇌를 던진다. 지속적 싱잉볼의 울림은 마음의 평정을 촉구한다. 불보살은 반가사유상의 붓다가 되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다. 총체 무용 '반가: 만인의 사유지'는 프로듀서 준초이(사진작가), 조일경(무대디자이너), 영상 최석영(XR영상감독)의 이름을 부각시켰다.

공연의 엔딩 장면에서 와불(臥佛)의 여인은 마침내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부처의 깨달음의 사유공간 속에 내가 흡입되어 들어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몽환적이다. 정적의 고요 속 육체의 관능미와 죽음과 삶의 공존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까지 심도를 가져가는 무용은 잊을 수 없는 걸작이 되었다. 차수정, 이영일 조합은 언제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믿음을 준다. 이런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게 배려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고마움을 표한다. 열정의 출연진에게도 존중의 마음을 전한다. 출연(차수정, 최희정, 장윤나, 윤하영, 윤예령, 최세아, 이재영, 강체연, 권은지, 김가영, 김수정, 윤 은, 최예근 외)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