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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과 춤의 의사소통 기능이 맞닿은 '바디랭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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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과 춤의 의사소통 기능이 맞닿은 '바디랭귀지'

[나의 신작 연대기(47)] 백연(발레안무가,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대표) 안무의 현대발레 'LANGUAGE'
Origin-바디랭귀지ⓒ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Origin-바디랭귀지ⓒHanfilm
지난해 12월 22일(일) 저녁 7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의 더블빌 'LANGUAGE'는 춤과 언어가 맞닿은 지점을 탐구,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할 언어와 춤의 가치를 주창한다. 안무가 백연은 'LANGUAGE'를 제목으로 삼고 'ORIGIN-바디랭귀지'를 통해 탐구한 결과를 근거로 '발레로-HUNMINJEONGEUM'을 전개한다. 언어는 세계를 연결하는 가변적 도구이다. 현대발레, 현대무용, 컨템포러리 댄스의 차이점과 개념 정립을 가능하게 하는 백연의 발레는 한글의 기표(記表, 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signifié 시니피에)를 몸으로 드러내며 관객과 소통하고, 해석을 위임한다.

'ORIGIN-바디랭귀지'는 기술의 발달로 미래 언어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예측에서 동인하여 언어의 기원을 신의 노여움으로 분화된 언어를 모티브로 한다. 이 작품의 모태가 된 'ORIGIN'을 성찰한 작품은 진전을 이루어 상징의 틀을 제공한다. 춤 철학자 백연은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의 기원이 춤의 의사소통 기능과 맞닿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현시대까지 인류가 소통하는 유일한 바디랭귀지를 표현한다. 이 작품은 언어와 춤의 기원적 탐색을 통해 태초의 바디랭귀지를 표현하고, 인류사에 존재한 수천 개의 생존 언어들의 소리를 춤으로 풀어냄으로써, 언어와 춤의 상관성을 재고하고 언어적 의미로서 춤의 위상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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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바디랭귀지ⓒHan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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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바디랭귀지ⓒHanfilm
발레로-HUNMINJEONG-EUMⓒ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발레로-HUNMINJEONG-EUMⓒHan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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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로-HUNMINJEONG-EUMⓒHanfilm

1장 : ‘언어의 분열과 연합’. 바벨탑 붕괴 이후 다양한 언어가 생긴다. 언어는 지식과 욕망을 향해가는 인간의 수단이 된다. 인간은 다시 바벨탑을 쌓는다. 무대 위에 삼각형으로 테이프를 붙인다. 다양한 움직임은 실시간 리어스크린에 송출되고, 인간은 탑을 향해 올라간다. 상수의 무용수가 테이프를 뜯어내고 무용수들이 하수로 굴러가면 영사막에는 인간들이 탑에서 떨어지는 이미지가 연출된다. 하수에서 얼굴을 가린 무용수 한 명이 모든 테이프를 몸에 감는다. 퇴장과 맞물려 몸의 형태를 드러내는 남자 무용수는 몸을 상징하듯 신체를 드러내고 동물의 소리를 거쳐 원시적 인간의 소리를 나타내면서 새로운 장면 전환의 매개 역할을 한다.

2장 : ‘바디랭귀지’. 원시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풀숲과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표현하듯 무언가를 전달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군무가 된다. 원시 춤의 다리 움직임에 모티브 되었다는 움직임은 발레 움직임의 선형을 원시적인 형태로 풀어낸다. 움직임은 다양한 형태의 구도를 연출하며 춤으로 이어지면서 “소통의 절실함으로 움직임은 더욱 확대되고, 복잡성은 하나의 그림이 된다. 각자에게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다가간 ‘몸의 언어’로 어떤 이는 치유 받고 어떤 이는 감동한다.”라는 시놉시스를 그대로 드러낸다. '희미한 족적을 따라'에서 춤의 의사소통 부분을 확장하여 새로운 창작물이 도출되는 과정이다.

3장 : ‘언어에서 춤으로 소통하는 카타르시스’. 남자 무용수(Emiliano Castillo)가 스페인, 영어,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저글링을 한다. 3개 국어를 수행하고 제어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이러한 연출과 영어, 중국어 등 현재까지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들의 소리를 무용수의 몸 언어로 표현함으로 살아남은 언어들의 소리는 춤이 되어, 경쟁이 아닌 즐김의 자세로 개별적이고 새로운 기의를 만든다. 무용수 김은정이 다양한 언어를 몸 언어로 표현할 때 무대 상부 바튼의 수많은 조명기가 드러나는 점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살아남아 미래로 향하는 언어들의 상징이다. 언어의 소리에 따른 ‘몸의 언어’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더불어 카타르시스로 나아간다.

발레로-HUNMINJEONG-EUMⓒ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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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로-HUNMINJEONGEUM'은 실시간으로 제약 없이 소통되며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이 시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과 글은 ‘위기를 맞이한 것인가, 기회를 얻은 것인가’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훈민정음이 우리 몸의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을 반영하여 몸 자체를 한글의 표현 소재로 삼아 ‘기표’와 ‘기의’로 나타냄으로 미래에도 우리 곁에 함께할 훈민정음의 가치와 의미를 조명해 보고자 한 작품이다. 한글의 우수성이 미래에도 계속 반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다. 훈민정음이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을 반영, 몸 자체를 한글의 표현 소재로 삼아 훈민정음의 ‘기표와 기의’를 나타낸다.

1장 : ‘그림 문자 같은... 한글’, 동굴벽화에 남은 고대 그림 문자 같이, 가상 공간에 떠도는 하나의 글자는 어느 민족의 문자인가? 암호를 해석하는 고대사학자처럼 알아듣기 어려워진 훈민정음을 주의 깊게 해석해 본다. 내용을 나타내기 위해 백연, 김유식, 김다운 무용수가 각각 현재·과거·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백연은 알아보기 어려워진 훈민정음을 해석하는 학자처럼 등장하고 과거와 미래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들을 수용하는 상징적 매개로 춤춘다. 레이저를 사용해 무대의 영역을 나누고 가운데 지점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무용수들이 만난다. 문자 탐색의 움직임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질 한글에 대한 고찰이 각각의 무용수를 통해 드러난다.

2장 : ‘훈민정음의 규범적 기표... 창조적 기의’, 낱자 소리에 따른 규범과 규칙들로 글자 조합과 움직임의 조형물을 만들어지고, 기표가 되어 기의를 만든다. 움직임은 훈민정음의 기표와 기의가 되어 계속 소통한다. 무용수들은 한글의 소리와 모양을 몸으로 표현한다. 훈민정음을 주제로 한 동시대적인 표현 양식은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한다. 스타킹을 뒤집어쓴 듯한 의상은 그리드 모양의 상징 표현이며, 웹의 이미지와 함께 한글은 웹상에 사용되는 컴퓨터 언어적인 느낌으로 변해감을 상징한다. 무용수들의 글자 해석과 소리는 하나의 새로운 조형물로 기능한다. 신체 언어는 새로운 의미의 기의를 생성하고 관객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산된다.

미래 상징의 무용수는 전통적인 리듬을 기반으로 몸의 근원적 리듬을 꺼내면서 계속될 한글의 흥겨운 신이나 멋을 노래하고 몸으로 한글의 기표를 표현하는 무용수들 곁에서 흥을 부른다. 단순히 소리와 글자인 기표 표현을 넘어 움직임 언어로 생성되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새로운 기의를 만든다. 예컨대 ‘더’를 기표로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더’라는 단어의 제스처를 복합 시킴으로 움직임은 단순한 한글 기표를 넘어선 이미지가 되어 새로운 몸 언어로 기능한다. 조명기기를 세트로 제작하여 ‘ㄱ, ㄴ, ㄷ, ㄹ, ㅁ, ㅂ’의 글자 표현을 나타내고 흰색 조명과 솔로의 흥겨운 움직임으로 우리 언어의 고된 한을 표현하고 미래에도 굳건하기를 염원한다.

3장 : ‘그때... 거기... 계속’, 훈민정음의 ‘여린히읗, 옛이응, 반치음, 아래아’의 네 글자가 사라졌다. 미래에도 우리 말과 글이 거기서 계속 꿋꿋하게 빛나는 글자로 존재하기를 기원한다. 과거와 미래 상징의 무용수들이 사라져간 네 글자의 아쉬움을 나타낸다. 바닥에 영상으로, 사라져 버린 네 글자가 다운스테이지를 향해 흐르고 네 가지 소리에 따라 움직임으로 글자들을 표현한다.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스타킹 망사로 제작된 한삼 느낌의 장갑과 고글을 쓴 무용수들의 군무가 시작된다. 안무가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와 음악을 사용하지만 움직임, 소품, 음악, 조명, 레이저 등의 매체는 미래적인 소재들로 앞으로 지속될 훈민정음을 조명하였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위해 마지막에는 2층 객석을 열지 않았고 그 방향으로 레이저를 비추었는데 이는 포그머신과 함께 입체적인 구름 막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연출을 통해 안무가는 미래에도 끝까지 뻗어나갈 우리의 말과 글을 표현해내었다. 이 공연에 백연, 김유식, 송진, 김다운, 이근희, 배민지, 고휘경, 김은정, 조현희, 이도연, 최영운, 안선향, 에밀리아노 카스틸로가 출연하였고, 예술감독·안무·연출에 백연, 무브먼트 어시스던트 고휘경, 음악감독 이승민, 무대감독·비주얼디렉터 정승재, 조명디자인 한희수, 영상디자인 송우람, 촬영감독 김정환(한필름)이 제작진으로 참여하여 걸작을 생산했다.

백연 안무의 'LANGUAGE'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지원 선정작으로서 'ORIGIN'(2022)의 의미를 명료히 하며 춤 수사학을 격상시켰다. 아울러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의 과정(공연예술), 사전 연구에 선정된 '발레로 훈민정음'의 안무 콘센트 정립을 위한 조사 및 연구에 기반하여 구성된 작품이다. 훈민정음의 소리와 모양을 컨템포러리 발레 움직임으로 구성하여 인류 문명의 발달과 변화 속에 살아남을 우리말의 의미와 가치를 춤으로 조명하였다. 안무가 백연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음악, 조명, 비주얼, 영상을 제어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며 하나의 티켓으로 두 작품을 보는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발레로-HUNMINJEONG-EUMⓒHanfilm이미지 확대보기
발레로-HUNMINJEONG-EUMⓒHanfilm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제공=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사진촬영=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