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율 안무의 ‘스스로춤’, 하혜석 예술감독의 ‘서클댄스’로 구성

10월 4일(토) 다섯 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김기인춤문화재단(KIDaF, 이사장 김기선) 주최·주관, 하혜석 예술감독의 '너머의 시'가 ‘키다프(KIDaF) 춤사랑열린마당’이란 주제로 공연되었다. 무용가 김기인(1953~2010)을 기리는 공연은 1부 ‘스스로춤’(안무 박성율), 2부 ‘서클댄스’(안내자 김기선, 하혜석)로 구성되어 공연되었다. 몸으로 쓰는 시는 성찰과 대동의 모습, 경전에 대한 의례와 어울림의 가치를 보여주면서 교본이 된 김기인의 정신을 재현했다.
김기인은 작품에서 움직임의 에너지, 형태, 구성을 통해 춤의 정신을 담아낸 무용가였다. 안무자(박성율, ‘스스로춤 모임 대표)와 안내자(김기선 김기인춤문화재단 이사장, 하혜석 성신여대 대학원 외래교수 김기인춤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사유의 끝에 이르는 무의식에 의존해 추는 ‘스스로춤’의 전통성을 유지하면서 실증적 작품으로 몸의 가치를 연구하고, ‘몸의 존중’을 담아낸다. 서울무용센터의 ‘스스로춤’ 동아리 회원들이 이 춤의 근본정신과 움직임을 공유한다.
'너머의 시'는 공간적 경계를 넘어 내려놓기로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연희자들은 신성을 드높이며 마음의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 현상과 진리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스스로춤’ 세상이 되기를 간구한다. 인간은 경계를 두르고 있으나, ‘너머’는 구원과 부활의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너머의 시’는 삶의 언덕을 무력화한다. 움직임은 말의 부활이 된다.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생과 소멸의 이야기를 춤으로 지켜본다.







1부: ‘스스로춤’(안무 : 박성율, 출연 : 김석중 김효경 김소연 권 혁 이화진 장하람 박성율); 신의 말이 움직임으로 번역된다. 깔린 카펫들이 기도자의 오랜 기도를 상징한다. 몸 말을 짓는 무용수들은 다름의 어둠 속에서 별을 잉태하고, 움직임으로 자유를 찾아간다. 사제와 기도자들의 모습을 복사하며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비롯된 침묵의 언어가 전개된다. 움직임은 너머에 있는 시를 전달한다. 움직임은 리듬을 타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묘사해 나간다.
2부: ‘서클댄스’(안내자 : 김기선 하혜석, 학습자 다수); 안내자는 신과 인간 사이, 예언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들은 하나의 원 안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숨결을 나눈다. 경계는 사라지고, ‘너’와 ‘나’는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된다. 움직임을 통한 계시가 이루어지는 춤을 통해 초월적 실재를 엿본다. 집착을 버리고 둥글게 손잡고 본성의 빛이 인도하는 곳에서 생명의 숨결이 넘실대는 참가자들의 움직임은 신성을 옮긴다.
‘스스로춤’의 경건한 5분, 행위는 내게서 시작한다. '나는 보는 자, 동시에 행하는 자, 보이는 자이며, 반응하는 자이다. 움직임 속에서 숨을 쉬고, 응답 속에서 길을 찾는다. 하늘의 부름을 따라 위로 솟아오르다가, 땅의 품을 따라 천천히 내려온다. 흙을 가르고 다시 솟구쳐, 빛을 향해 손을 들고, 다시 흙으로 돌아온다. 몸은 땅으로... 그러나 정신은 하늘로. 그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기도한다.' 단서를 달지 않은 ‘홀춤들’이 각자의 사연을 이어간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과 땅에 작은 구멍을 낸다. 숨을 들이쉬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미세한 통로가 된다. 흙에서 빚어진 몸이 하늘의 숨을 받아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은 다시 땅을 밟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이 작은 구멍은 단순한 틈이 아니다. 하늘이 심어준 소통의 자리, 하늘과 땅 사이의 은밀한 통로이다. 우리의 영혼은 그 미세한 틈을 따라 하늘의 뜻을 더듬는다. 그 손끝에서 하늘과 땅은 서로의 숨결을 느낀다. 여러 구멍이 하나의 원을 만든다.
사랑·이해·은혜의 통로인 원이 커질수록, 인간은 서로의 숨결을 통해 하늘을 더 선명히 느낀다. 공동체는 그렇게 형성된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섬기며 하늘과 땅 사이에 더 큰 구멍과 빛으로 가득 찰 더 넓은 길을 만들어 간다. 그 구멍들은 큰 창이 되어, 하늘나라의 빛이 세상에 흘러들게 한다. 구멍을 낸다는 것은 사랑으로 하늘을 여는 일이다. 그 구멍이 작을지라도, 그 안에서 하늘은 들린다. 우리의 존재는 은총을 이 땅에 비추는 통로이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바닥에 누워 오랫동안 꼭 쥐었던 손을 편다. 주머니 속 어둠을 꺼내 온전히 바람을 맞는다. 고개를 숙이는 자는 다시 들게 하신다. 내 발 아래 비추인 한 줄기 빛을 본 자는 저 너머 영원의 빛을 바라볼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빛과 그림자가 포개진 그 경계선 위에 주님의 손길이 나를 세우실 때이다. 나는 숲속의 그 경계선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아마도, 빛이 나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짐은 강해진다. 그곳에 가면, 그곳에 있으면, 그곳을 향해 간다면 나는 다시 걸어, 저곳으로 걸어가고 싶다. 내가 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세상의 그림자, 허무와 두려움의 강을 건너야 한다. 나는, 죽음 너머 그분의 존재를 쫓아간다. 그분의 빛이 내 발걸음을 비추니 나는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걷는다. 내가 넘어야 할 것은, 허무함이다. 오직 그분 안에서 나로 존재할 수 있기 위해 모든 것을 벗어던진다. 그분의 품 안에서만 나는 참으로 살아 있음을 안다.







하혜석 예술감독의 ‘서클댄스’는 ‘스스로춤’의 형이상학을 낮은 단계의 대중적 친밀성으로 환치시킨다. 음악에 따라 다섯 개로 이루어진 춤은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무대를 열고, 이웃을 불러내어 흥겹게 놀면서 자유를 만끽하다가 중심으로 회귀하는 춤으로 구성된다. 시간과 공간을 잇는 영적 언어로서의 춤은 ‘삼위일체의 조화와 순환’, 창조의 리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영적 몰입과 초월감을 불러오는 춤은 집단적 황홀에서 영원성을 추구한다.
‘서클댄스’는 ‘무대를 여는 춤’으로 시작된다. ‘무대를 여는 춤’(음악: Calm the Soul); 음악과 리듬, 몸짓으로 ‘공간의 기운’을 정화한다. 안내자는 기도한다. “혼란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주여, 평안을 주소서. 당신의 고요 안에서 내 영혼은 안식을 얻습니다.” 온갖 어지러운 상념이며 불안을 비워낸 가슴들에 고요히 깃들이는 신성을 모시는 가운데 춤의 장이 열린다. 군무는 긴 천을 내려뜨린 가운데 원형으로 돌며 움직임을 가져간다.
‘이웃들을 불러내는 춤’(음악: 코스모스, 조관우); 코스모스와 함께 연상되는 저마다 고유한 기억을 떠올리며 가을의 정취에 자신을 맡기고 바람 속에서 함께 흔들린다. 기다림, 초조함, 쓸쓸함과 그리움이 섞인 정서로 저만치서 보고 있는 이웃들을 초대하여 자유로운 춤사위로 함께 흥겨운 춤마당을 펼친다. 1967년 하중희 작사, 김강섭 작곡으로 김상희가 불렀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이 원곡이다.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한 조관우의 리메이크곡이 춤과 어울린다.
‘흥을 증폭시키는 춤’(음악: Xote das Meninas, 쇼치 다스 메니나스): 브라질의 전통 리듬 Xote에 맞추어 루이스 곤자가(Luiz Gonzaga)가 부른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이다. 브라질 북동부(노르데스치)의 서정적이고 흥겨운 4/4박자 리듬감을 담은 짝 춤 형태로 느리고 낭만적이다. 눈빛, 손의 움직임, 사랑의 설렘을 표현한다. 원래 브라질 소녀들이 추는 춤이지만, 참여자들은 흥을 더 끌어 올려 함께 삼바 춤 같은 생기발랄하며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방으로 초대하는 춤’(음악: 자유, 하덕규); 하덕규의 노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반복되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절박함을 강조한다. 드디어 나를 옥죄며 외롭고 아프고 슬프게 했던 껍질이 벗겨져 떨어져 나가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비상한다. 그를 만남으로써 인간 존재의 진정성과 자유를 찾는다. 인간 존재의 진정성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해방을 만끽하는 자유로운 춤마당이 펼쳐진다.
‘중심으로 회귀하는 춤’(음악: Turning to Peace); 마음과 행동을 다듬어 죄와 혼란에서 벗어난다.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공동체 속의 화해, 분노와 갈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평화와 내적 평안을 향해 마음과 삶을 돌이키는 영적 여정에 접어든다. 중심에 깃든 신성을 내면화하면서 그 힘으로 모두 하나 되어 온 우주와 함께한 생명으로 숨 쉬는 평화 가운데 머문다. 영혼의 회복과 공동체 속 화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설정된다.
'너머의 시'는 박성율 안무의 ‘스스로춤’, 하혜석 예술감독의 ‘서클댄스’로 구성되었다. ‘스스로춤’이라는 경전은 해설집으로 ‘서클댄스’를 갖추었다. ‘서클댄스’는 ‘스스로춤’의 정신을 쉽게 풀어내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산림 같은 초록 열정 위에 있는 경건의 사원에는 성직자와 구원자가 하나가 되고, 안내자가 절대자에게 평화로운 분위기를 알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너머의 시'는 뜨거운 상상과 빛나는 구성으로 가을날에 의미 있는 여름의 미토스를 보여주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