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의사 단체행동 중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유사한 보건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은 의사의 보수, 인력증원 등 근무조건을 향상키셔달라는 이유에서 굉장히 많은 파업을 진행한 나라다. 이 중 지난 2000년 3월 임금 동결안에 반대해 217일간 계속된 의사들의 단체행동은 이스라엘의 공립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및 전공의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당시 파업을 진행한 이유는 재무부 장관의 의사 임금 동결 안에 반대하기 위함이었고, 당시 이스라엘 의사들은 응급실, 분만실, 종양내과 외래를 제외한 외래진료와 비응급 수술을 모두 거부했다. 이스라엘 의사협회는 정부에 병원근무 전공의 일당 2배 인상, 개업하다가 종합병원에 가서 일하는 시간 동안의 추가적인 재정적 지원, 평상시보다 밤 혹은 주말에 수입을 더 올리는 현재 의사수입체계의 변화, 종합병원 근무 의사들의 지역 의료행위 허용, 연구분야 근무 의사 급여 인상, 현재 건강보험 내 환자들의 의사 선택권 부여를 요구했다.
파업 결과 의료제도 개선위원회 구성 및 운영, 의사 봉급 13.2% 인상, 의사 총급여의 고정부분 35%에서 50% 인상, 연금보장 연장, 당직 24시간 이내 등이 이뤄졌으며, 재미있게도 ‘향후 10년 동안 파업할 수 없다’라는 조건도 있었다. 이 조항 때문에 이스라엘 의사들의 다음 파업은 정확히 10년 뒤인 2010년에 이뤄졌다.

영국은 지난 1975년 발생한 전문의 및 수련의 파업이 대표적이었다. 당시 영국 의사들은 1~4월, 11월에 나눠 두 차례에 걸쳐 파업을 진행했는데, 1~4월은 전문의가, 11월은 수련의들이 파업을 주도했다.
1~4월까지 진행된 전문의들의 파업은 새로 임명된 영국 보건부 장관이 기존 전문의가 NHS 업무 이외 개인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려고 시도해 이뤄졌다. 당시 영국 전문의들은 준법투쟁을 벌이며 근로시간 외의 근무와 의료 제공을 거절했고, 그해 12월에는 전문의가 오직 응급의료에 해당하는 진료업무만을 행했다.
전문의들의 파업은 개인병원을 운영할 권리를 계속해서 행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마무리됐다. 11월 이뤄진 수련의들의 파업은 과도한 업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급여로 고통 받고 있었던 수련의들에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조항이 포함된 새 근로계약이 제시됐기 때문이 발생했다. 12월 정부와 협상에 도달할 때까지 수련의들은 주당 40시간만을 근무해 오직 응급진료만을 제공했고, 파업 결과 기존의 근로조건으로 돌아왔다.
독일도 의사 파업 사례가 존재한다. 독일 의사들은 2006년 1월 26일, 3월 24일, 6~8월 동안 저임금 및 근무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독일 병원의사들이 병원의사 노조인 ‘마르부거 연맹’을 구성, 노조 위주로 파업이 진행됐고, 노조는 대학병원 경영진에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대학병원 경영진들은 병원의사의 급여를 8~18% 인상하기로 합의했으며, 의사의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48시간으로 했다. 이를 본 독일 시립병원에서 근무 중인 공공의사들이 병원의사와 동등한 조건을 제시하면 총 8주간의 파업을 강행했는데, 이들 역시 마르부거 연맹을 통해 시립병원과 협상 타결, 협상의 결과로 공의사 역시 병원의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항상 성공한 건 아니다. 실패할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 의사들은 지난 2011년 4~11월까지 8개월간 파업을 진행했지만 협상에 실패했다. 당시 이스라엘 의사협회는 병원수용력 확대 및 의사인력 1000명 충원, 급여 2배 인상, 의사 인력 부족 진료와 의사들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의사 진료시간 단축 등 공공의료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병행했다. 하지만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 역시 실패한 사례가 있었는데 지난 2012년 6월 21일 단 하루 동안 진행된 파업이 그 사례다. 당시 영국은 개원의가 은퇴할 경우 충분한 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정부가 지난 2015년 은퇴연령을 65세에서 68세로, 연금기여금을 8.5%에서 14.5%로 높이려고 했다. 이에 영국의사회는 응급진료를 제외한 총파업을 진행했다.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의사들의 파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의 62%가 의사파업에 반대, 국민의 92%가 의사의 소득이 높다고 응답하는 등, 의사들의 파업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연금기여율이 14.5%로 인상돼, 영국 의사파업은 실패한 것으로 정리됐다는 후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의사 파업 역시 실패한 사례로 꼽혔다 1985년 온타리오 주정부는 환자본인부담 추가 청구 폐지 정책 시행 계획을 발표했고, 이듬해 6월 12일 의사들이 진료비 중 환자본인 부담을 추가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지역 의사 1만7000명 중 절반 이상이 휴진하면서 집단행동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의사 직업군에 대한 이미지 손상만 남게 됐다는 평이다.
이외에 우리나라에 시사할 만한 의사 파업 사례를 소개했는데, 대표적으로 프랑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2014년 12월, 2015년 3월과 11월에 걸쳐 프랑스 의사들은 영국 NHS 시스템을 모델로 한 새 건강보험 개혁(제3차 지불의무제도) 반대 및 기본 진찰료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진행했다. 당시 프랑스 보건부 장관 마리졸 투렌느는 영국의 NHS 시스템을 모델로 한 새 건강보험 개혁안을 제시했는데, 국가 보건 예산을 절감하는 광범위한 법안의 일부로 2017년부터 제3자 지불의무제도(환자가 의료진찰비를 선불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자가 직접 지급하는 방식)를 일반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3자 지불제도가 시행될 경우, 환자의 첫 방문은 무료이며, 의사는 보험자로부터 진료비 전액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해, 지불지연 및 행정업무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프랑스 의사들은 집단행동에 나섰고, 2017년 10월 30일 제3자 지불의무제도를 폐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해외의사들의 집단행동 사례를 살펴본 의료정책연구소는 “해외 의사들은 응급의료, 산부인과, 종양내과 등 국민의 건강권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의료는 계속 제공하면서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의사들은 단체행동을 함에 있어 필수진료는 하면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 수용 거부를 천명하면서 1주일 수술연기를 예고하자 생명을 돌보는 의료인이 파업을 한다는 것은 환자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냐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일부에서는 환자 목숨을 담보로 파업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의사들 도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해외서도 의료인 파업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스라엘, 인도, 영국, 슬로바키아, 포루투갈 등 각국 의사들은 의료정책 반대, 예산 및 연금 삭감 철회, 급여 수준 보장, 정부와 의협 간 밀약 타파 등 다양한 이유로 파업을 벌였다.
2012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에서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윤리적 측면에 관한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이 문제는 세계적 이슈임에 틀림없다. WMA는 근무환경이 열악한 의사들의 파업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정당화 되기는 어렵지만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았다.
WMA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체계가 접근성과 질 확보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보건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단 집단행동을 할 때 의사 개개인의 윤리적 직업적 의무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국민에게 미칠 해악을 최소화하고, 필수적이고 응급한 의료서비스는 보장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파업은 사실상 불법이다. 공정거래법 제26조에 '구성사업자의 사업내용 및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과 5억원 범위 과징금 부과,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 등 행정처벌이 부과된다. 또 의료법 59조에 '지도와 명령' 조항이 있어 복지부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고, 휴업이나 폐업을 했을 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때 공정거래법으로 당시 휴진을 주도했던 김재정 의협 회장과 의쟁투 의사 13인은 2005년 집행유예 및 벌금 200만원 등의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의료법은 실제 파업에 나선 병원들만 법의 저촉을 받지만 공정거래법의 독점규제법은 파업 결의를 한 후 의사 회원들에게 파업 조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개원의는 "2000년에는 공정위법이 존재했다면 그 이후 2008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파업을 원천 봉쇄했다고 봐야 한다"며 "법률상 정부의 지도명령이 떨어지면 폐업을 하기 전에는 강제로 진료를 해야 한다. 아쉬운 일은 의협이 정치적 역량이 너무 부족해 늘 당하기만 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에 맞서는 의사들이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국민의 지지, 지역주민과 의료인들과의 연대가 절대적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있었던 의사 파업이 성공한 것은 백개가 넘는 지역조직과 간호사 등의 의료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 의사들의 승리도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오랫동안 불편을 겪으면서도 공공의료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는 데 동의했다. 결국 파업은 이끌어 가면서도 비상진료위원회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면서 응급을 요하는 환자들의 진료는 차질이 없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