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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재편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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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재편 '급물살'

미·영 등 러산 원유금수 이어 EU는 수입 줄이기로
印·中, 서방의 에너지 제재 최대 수혜국으로 떠올라
엑손모빌·BP·셰브론 등 유가 상승 덕분 수익 급증

미국내 원유 비축기지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내 원유 비축기지 모습. 사진=로이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처를 단행한 데 이어 유럽연합(EU)은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90%가량을 줄이기로 했다. 러시아는 이에 맞서 중국과 인도에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 유가를 낮추기 위해 대표적인 산유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원유 수출 제한 조처를 완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민간 원유 및 석유 제품 트레이딩 회사인 비톨(VITOL) 그룹은 지난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합의가 부활하기 이전에라도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 제한을 풀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이탈리아의 에니(Enni)와 스페인의 에너지 기업 렙솔(Repsol)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수입해 유럽 시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EU 27개 회원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25% 가량을 러시아산에 의존해왔다. EU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체할 수입원을 찾아 나섬에 따라 글로벌 원유 시장이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인도와 중국은 서방의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에 따른 최대 수혜국으로 떠올랐다. 두 나라는 정상 거래보다 낮은 가격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대규모로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에 배럴당 약 35달러 가량 할인한 가격으로 원유를 판매하고 있다. 인도는 러시아산 석유와 디젤을 수입해 이를 정제하거나 가공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재편의 또 다른 수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UAE와 같은 산유국이다. 이들 국가는 국제 유가 폭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

엑손모빌, BP, 셰브론 등 글로벌 정유회사도 유가 상승에 따라 수익이 급증하고 있다. 미 의회는 이들 정유사의 폭리를 막기 위해 미국 대통령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할지 미지수로 남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이었다. 러시아 당국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 상승에 따라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수익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은 타격을 입을 것이고, 러시아가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가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수출하고 있어 수출 규모가 늘어나도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의 원유 수출 규모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외신이 전했다. 인도는 지난 4월에 하루 평균 27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했으나 5월에는 그 규모가 66만 배럴로 늘어났다.

미국은 세계 1위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글로벌 원유 수출 시장의 12%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원유와 가스를 국내에서 주로 소비한다.

미국 공화당은 미국 내에서 원유 증산이 이뤄져야 한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알래스카와 걸프만의 유전 지대에 있는 연방 정부 소유 토지와 인근 해상에서 원유 탐사와 채굴 허가를 확대하라는 게 공화당의 요구이다. 또한 바이든 정부는 캐나다산 천연 가스를 미국으로 들여올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 규제를 완화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며 미국 내 원유 증산이나 캐나다산 가스 도입 확대 등에 반대하고 있다.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가 에너지 가격 폭등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민주당 측 주장이다.

바이든 정부는 엑손모빌 등 대형 정유사에 원유 생산 확대를 종용하고 있으나 정유사들이 이를 묵살하고 있다. 원유 증산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손해라는 게 이들 정유사의 판단이다.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국제 원유 시장에 재등장시키는 협상 전망도 밝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는 이란과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대선 결과로 집권한 베네수엘라와 타협했다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