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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약세 엔화'로 더 가난해진 일본, 증시는 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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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약세 엔화'로 더 가난해진 일본, 증시는 견조

일본은 초약세 엔화로 더 가난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증시는 견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초약세 엔화로 더 가난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증시는 견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는 공포에 떨지만 일본 증시는 견조하다. 엔화 가치 하락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7월 14일, 마침내 달러 대비 139.00엔 선을 돌파했다.

다만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높은 물가에 가계가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일본 증시의 움직임은 그리 나쁘지 않다.
토픽스(TOPIX·도쿄 증권거래소 주가지수)는 연초(7월 18일 기준) 이후 약 5% 하락했다. 하락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미국 S&P지수와 MSCI 세계지수에 나타난 세계 주식시장은 20% 정도 크게 조정받았으며, 가상화폐 등 다른 자산도 한꺼번에 폭락하였다. 그러나 일본 주식시장은 매우 강하다.

상장사 중 약 3분의 1이 2022년 3월 회계연도 결산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수출 기업들의 주식은 일률적으로 매수세는 아니다. 니콘, 캐논, 스바루, 마쓰다 등은 시장을 앞섰지만 도요타는 연초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고, 소니와 샤프는 시장보다 실적이 저조하다.

'초약세 엔화'보다는 '높은 원자재 가격'과 '고금리·인플레이션'이 시장 이슈로 부각되었고 도쿄전력과 미쓰비시중공업, 도키오해운, 미쓰비시부동산 등의 종목이 급등했다.

엔화가 달러당 139엔으로 이렇게 약세인데도 수출 기업주가 매수 우위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은 엔화가 고평가되었던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환율 민감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시적으로 달러당 76엔까지 상승했던 '엔화 초절상'으로 수출기업이 고사하던 때를 떠올린다. 당시 엔화 대비 달러 가치가 80% 정도였던 점을 비교하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2년 3월 회계연도 결산에서는 수출기업들이 잇따라 하향조정했고 기술기업 중에서는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이 모두 수천억 엔의 큰 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문제는 아시아 경쟁국가들에 대한 가격 경쟁력의 상실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 공장에서 1000엔을 들여 만든 제품이 있다면 100엔대 1달러 환율이면 제조원가가 10달러이고, 12달러에 팔리면 20%의 이익을 남긴다.

그러나 엔화가 달러당 80엔까지 절상되면 원가는 12.5달러까지 올라가고 12달러는 적자가 된다. 이 기간 한국 원화는 달러 대비 절상되고 원화는 평가절하되어, 일본 메이커들에게는 더블 펀치였다.

이후 많은 일본 기업들은 현지 생산과 현지 조달로 전환하는 등 환율에 대한 민감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일본 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에는 엔화 10% 절하, 일본 수출 3% 증가에 민감도가 있었으나, 2018년에는 민감도가 '제로'로 떨어졌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자동차 제조업체 등이 엔화 단위로 가격을 책정하고,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현지 통화로 가격을 낮춰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식이었다. 다만 지금은 원화로 가격이 책정돼 있어 엔화 가치가 하락해도 판매량은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격차가 더 벌어지다


엔화 강세 시대에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삭감된 것이 국내 투자와 인건비였다. '구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감원과 공장 폐쇄 소식을 몇 번이나 들어봤을까.

이런 식으로 세계에서 살아남는 강한 일본 기업들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많은 우량 다국적 기업의 주요 격전지는 더 이상 일본이 아니다.

상장기업의 '일본 주식'과 개별 가계를 포함한 '일본 경제' 사이에는 첨예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주식"은 더 이상 "일본"과 동일시 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율은 20%를 조금 밑돌지만 일본 주식을 움직이는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들 가운데 도요타, 소니 등 제조업체들이 줄지어 있다.

또한 일본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에 불과하지만, 대형 다국적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이 70%를 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일본 주식을 사는 외국 투자자들은 '일본'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강한 일본 기업'을 사는 것이다."

물론 일본 대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 일본 직원의 보수도 높아지고 일본 내 투자와 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 중간재 등 GDP에 반영되지 않는 공급망 효과, 하청업체 수혜 등 경제 전반에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상장 회사와 그들의 수혜자 그리고 나머지 "일본"들 사이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일본 노동자들

2021년 3월말 회계연도 결산, 일본 기업의 이사 보수가 1억 엔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인 6억3500만엔(도쿄 쇼코 리서치)에 도달했다. 상장사 중에서는 소프트뱅크의 보수체계가 유럽과 미국에 근접해 있는데, 소프트뱅크의 보수 규모는 19억 엔에 약간 못 미치며,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소니·도쿄전자·신에쓰화학 등 기업의 최고 보수가 7억~12억 엔에 달한다.

반면, 일본의 평균 임금은 거의 30년 동안 변동이 없었다. OECD 주요 국가 중 임금이 이렇게 많이 오르지 않은 나라는 또 없다.

198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임원 보수 급등의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최대 5000배!) 사장과 직원 간의 '보수의 격차'('보수의 격차'는 막을 수 없다)에 관한 언론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에서 이런 추세가 진행된다면 일반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공정하다는 정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달러 대비 현재의 엔화 가치 하락과 함께, 일본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점점 더 가난해 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계 평균 임금 비교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4만850달러로 36개국 중 24위를 기록했다. 그것은 OECD 평균보다 낮으며 2015년에 한국에 추월당했다.

OECD의 각국 비교에서는 통상 환율이 아닌 2020년을 기준연도로 하는 달러 대비 구매력평가(PPP)지수를 사용한다. 구매력평가지수는 후술하겠지만 OECD가 발표한 2020년 엔화와 달러의 구매력평가는 달러 대비 101.24엔이다.

'평균' 임금보다 실제 현실에 가까운 일본의 '중간' 임금을 보면 약 440만 엔이다. 이 440만 엔을 14일 현재 구매력 평가 대신 달러당 139엔으로 환산하면 약 3만1650달러로 이탈리아·스페인뿐 아니라 폴란드·에스토니아보다 낮아진다.

구매력 관점에서 본 일본의 현실


엔화가 초약세라 하더라도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면서 국내 물가가 낮게 유지된다면 큰 고통은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화폐의 구매력, 예를 들어 1000엔에 얼마나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니클로 플리스 가격이 1000엔 올라 현실 생활에서 체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사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일본 물가는 오르지 않았다.

이전 기사 '일본 인플레이션'이 그 분노의 '물가 상승 러시'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 나라 경제의 미래'에서 지적했듯이 수입물가 급등세가 국내 판매가격에 충분히 전가되지 않아 국가간 비교해 볼 때 '디플레이션'이 오히려 진전되고 있다. 월급이 오르지 않고 소비자의 구매력과 소비 성향이 오르지 않아 기업이 판매 가격을 올릴 수 없다.

각국의 물가와 환율을 비교할 때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빅맥 지수'가 유명하다.

이 지수는 전 세계 맥도날드 '빅맥'의 가격을 이용해 통화 가치의 강세를 비교하는 것으로, 환율은 한 나라 통화로 표시된 자금의 구매력이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한 수준으로 결정된다는 '구매력 평가(PPP)' 아이디어에서 온 것이다.

동일한 상품이라면 자국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싸다면 다른 나라에서의 상품 수요가 자국보다 더 높아지고, 자국의 화폐를 팔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사려고 한다. 그래서 그 화폐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차익거래'(피복)가 결국 왜곡된 환율 효과를 제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올해 2월에 발표된 빅맥 지수 최신판에 따르면, 빅맥 재팬은 390엔이다. 반면 미국은 5.81달러다. 빅맥은 일본 390엔이든 미국 달러화 5.81달러든 같아야 하기 때문에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달러 대비 67엔 정도가 적정 환율이다.

빅맥 지수를 이용하면 현재 달러당 139엔의 환율이 실제 가치의 절반으로 저평가되어 터무니없이 과도한 엔화 가치 하락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교환 가치"이라기보다는 햄버거 가격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미국 빅맥을 달러당 139엔의 환율로 사용한다면 일본 오리지널 빅맥은 390엔이 아닌 807엔이어야 한다.

가능성 측면에서는 '해외 버거 애호가들이 값싼 일본 빅맥을 먹기 위해 외화를 엔화로 바꿔 결과적으로 엔화 가치 하락세를 바로잡는다'는 구매력 평가 시나리오를 옮기기보다 일본 빅맥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 현실적이라 보인다.

일본이 엔화 약세로 재도약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일본 노동력이 이렇게 싼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투자를 다시 국내로 돌리거나 일본에서 고용을 늘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안되나? 우선, 일본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약하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는 노동조합 결성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소득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 스타벅스, 아마존 등 현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에서도 노조가 결성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인구 고령화로 비정규직 고용이 늘면서 근로자 조직 구성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일본 노동력의 생산성이 세계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일본생산성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노동생산성 국제비교'에 따르면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9.5달러(5086엔)로 OECD 38개 회원국 중 23위였다. 이는 미국과 체코(49.5달러)와 에스토니아(48.6달러) 등 동유럽 국가들의 노동생산성의 약 60%에 해당한다.

이 데이터 역시 달러 대비 약 103엔의 '구매력 평가'를 사용하기 때문에 달러 대비 139엔을 사용하면 순위가 더 떨어진다. 노동생산성이 낮으면 저임금이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

일본의 생산성 향상이 부족한 이유는 높은 임금으로 신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혁신이 미흡하거나, IT 투자가 늦어지고 효율성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부진한 물가 상승이다. 노동생산성은 국내총생산(GDP)을 노동 투입량(노동시간 곱하기)으로 나눠 산출하기 때문에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서비스의 단가가 오르고 GDP가 높아지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악순환이다.

가격 인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고 '생산성이 상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급여가 오르지 않고 투자 발생 가능성도 적다. 다만 급여가 오르지 않거나 일자리가 없으면 소비자의 구매 의지와 능력이 높아지지 않아 가격을 더 올릴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미국과 중국의 대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여파로 최근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는 일본 기업들이 그 위험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을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기회로 삼는 기업이 늘어나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끊어지는 시나리오는 없는 것일까.


이진충 글로벌이코노믹 명예기자 jin2000kr@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