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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에르도안의 새 승부수는 첫 여성 중앙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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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에르도안의 새 승부수는 첫 여성 중앙은행 총재

튀르키예 리라화 약세 지속…중앙은행 총재, 통화 정책 싹 바꿀까?


튀르키예 리라화 사상 최대 약세 지속, 중앙은행 총재, 통화 정책 싹 바꿀까?

튀르키예 리라화 사상 최대 약세 지속, 중앙은행 총재, 통화 정책 싹 바꿀까?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경제 정책 수정에 나섰다.이미지 확대보기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경제 정책 수정에 나섰다.

역주행으로 폭주하던 기관차가 멈춰 섰다. 정통 경제 이론을 무시하고 나 홀로 빗나간 정책으로 나라 곳간을 텅 비게 만든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뒤늦게 노선 수정에 나섰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경제 및 통화 정책 팀을 개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관보를 통해 미국 금융 회사의 임원 인 에르칸을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앞서 정통 경제학자인 심섹 재무 장관을 경제 정책의 컨트롤 타워에 재기용했다. 이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거꾸로 가는 경제 행보와는 상반되는 조치여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튀르키예는 극심한 물가고에도 불구하고 저금리 정책으로 일관해 리라화가 폭락하고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런 상황에서도 결선투표 끝에 정권 방어에 성공했다.

그는 이제 선거를 위해 소진 된 외환 보유고를 축적하여 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및 통화 정책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 재무장관 심섹은 취임식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원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는 전임 네베르티 장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신임 심섹 장관은 메릴린치를 포함하여 유럽과 미국의 투자 은행에서 경제학자로 일했으며 2009년-2018년 에르도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 및 경제 담당 부총리로 주요 경제 정책 직책을 역임한 국제주의자다.

터키 은행의 첫 여성 중앙은행 총재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를 낮추면 물가가 낮아진다"는 정통 경제학과는 전혀 상반된 정책으로 통화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을 용인해 왔다. 결국 심섹은 에르도안과 갈등을 빚었고 거의 5년 동안 자리를 비운 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정통 경제학자의 복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동안 역주행해온 경제 및 통화 정책 궤도를 바꿀 것임을 의미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어서 또 다른 정통 경제학자 에르칸을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에르칸이 여성인 점도 눈길을 끈다. 그녀는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의 첫 여성 중앙은행 총재다. 에르칸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금융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금융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2021년 12월 사임할 때까지 파산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공동 CEO를 역임했다.

에르도안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이들을 기용한 이면에는 끝도 모르게 떨어지는 리라화에 대한 압력 때문으로 보인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2021년 9월 이후 정책금리를 19%에서 8.5%로 인하했다. 리라화는 이 기간 동안 달러 대비 절반 이상 폭락했다.

5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국은 환율에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민간 기업의 달러 조달을 연기함으로써 리라화의 급격한 하락을 막았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의 순 외환보유고는 5월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영역까지 떨어졌다. 각 수출입 회사들은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외화가 필요했다.

이는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정책금리 인상, ‘외환 보호 예금(KKM)’ 축소 또는 폐지 등 정통 통화정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21년 말에 도입된 KKM은 리라 정기예금이 만기가 되면 외화환산에서 마이너스가 될 때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차액을 보상하는 제도로 리라화 환율을 지원하지만 재정에는 막대한 부담을 주었다.

경제 정상화의 지속 가능성에 초점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및 통화 정책을 네베르티에게 맡겨왔으나 결국 그를 내보내고 정통 경제학의 길로 되돌렸다. 2019년-2021년 사이 중앙은행 총재직에서 세 번이나 축출되었던 아바르 총재가 2021년 다시 해임되자 리라화는 하루 만에 21%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에르도안의 변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대선 직후 승리 연설에서 금리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섹의 재등장은 시장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인터치 캐피털의 표트르 마티스는 심색을 "희망의 등대"라고 부르며 "시장 참가자들은 그동안 일어난 일을 잊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시험대는 중앙은행이 오는 2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얼마나 인상할 것인가이다. 리라화의 가치 하락 추세는 변하지 않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달러에 20리라인 현재 가치는 1년 후 28리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도 "튀르키예가 기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경우 리라화는 29%까지 추가 폭락할 위험이 있다"며 “당초 예상보다 빨리 달러당 26리라까지 환율이 오르고 연말까지 28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튀르키예의 경제 상황과 관련해 “경상적자와 리라화 급락을 막기 위한 당국의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는 게 특히 우려되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하락하는 리라화의 가치를 지지하고 기록적 수준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팔아 치우면서 지난해 말 750억 달러였던 튀르키예의 외환보유액은 최근 밑 바닥이 보일 만큼 줄어들었다.

2021년 특별계좌 도입 이후 정부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만 953억 리라(약 6조 1100억 원)에 달한다. 결국 21세기 술탄은 현실의 무게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지도자의 오기와 만용으로 인해 튀르키예 국민들은 그동안 고물가와 경기 침체라는 이중고를 감내해야 했다. 튀르키예라는 폭주 기관차는 정상 궤도를 되찾은 걸까?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