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푸틴의 충견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세계 군사력 2위 러시아는 왜 그렇게 쉽게 자신의 영토를 내줬을까. 벨라루스의 중재를 받아들인 프리고진은 안전할까.
월스트리트저널은 바그너의 반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권의 예상치 못한 취약성을 보여준 다음 날 모스크바가 뜻밖에도 잠잠한데 놀랐다고 보도했다. 반란 드라마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까?
하나의 의문이 추가된다. 차르 권력의 심장부인 모스크바를 향한 바그너 그룹의 빠른 진격을 막지 못한 러시아 군사 지도부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양측의 자세한 합의 조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벨라루스로 넘어가기로 합의한 프리고진의 행방은 25일(이하 현지 시간) 현재 오리무중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와 바그너 그룹 병사들은 러시아 국기를 휘날리며 모스크바-로스토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히로세 요코 교수는 “프리고진이 모스크바 남쪽으로 진격한 것은 처음부터 중재를 바라고 한 행동이었다. 벨라루스로 간다고 해도 그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프리고진과 루카셴코는 알려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프리고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고 예측했다. 프리고진의 예봉을 꺾기 위해 일단 그의 조건을 수락했지만, 푸틴이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번 사건으로 크게 체면을 구긴 푸틴 대통령 역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반란을 끝내며 받아들인 조건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프리고진의 핵심 요구 사항이었던 러시아 국방장관과 러시아군의 수장은 빠르면 26일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전 푸틴의 고문이자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러시아의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직접 목격했다. 반란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들이 아직 남아있다면, 다시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다음번에는 아마 성공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란의 불꽃은 프리고진과 러시아 군사 지도부와의 오랜 불화에서 튀어 올랐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10일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을 러시아 군의 통제 하에 두도록 명령했다. 프리고진은 당장 자신의 권력 기반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차르가 아닌 차르
프리고진은 즉각 반발했다. 프리고진은 24일 남부 도시 로스토프를 점령했다. 푸틴은 자신의 보안군에게 반란을 분쇄할 것을 명령했다. 반란은 길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푸틴은 루카셴코가 체면을 구기는 타협안을 내밀자 슬그머니 프리고진과 그의 부하들을 사면했다.
별다른 저항 없이 모스크바를 향해 3분의 2가량 진격하며 바그너의 힘을 보여준 프리고진은 결국 반란을 중단하고 현재로서는 망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 군대와 보안군은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24일 모스크바에 머물렀던 카네기 기금의 선임 연구원인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한 프리고진의 반란으로 전체 시스템이 흔들렸다. 푸틴은 이제 진정한 차르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국가의 권위와 이미지는 큰 손상을 입었고, 프리고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향후 푸틴에 대한 도전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양측 모두 사상자가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동부와 남부에서 러시아를 축출하기 위해 반격에 한창이지만, 러시아 공군과 포병의 우세에 막혀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공습 사이렌이 울렸고,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촉구했다.

프리고진의 미래
러시아 군사 분석가들에 따르면 바그너군은 24일 러시아 헬리콥터 6대와 IL-22 공중 지휘 센터 비행기를 격추시켜 13명의 공군 병사를 숨지게 했다.
러시아 항공기들은 반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스토프 고속도로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일부 민간인들과 바그너 군대도 사망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 반란에 참여하지 않은 바그너 군인들은 국방부와 계약을 맺을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의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자 전 국방부 차관인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는 25일 보다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하는 모든 바그너 구성원들은 전체 부대로서 국방부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24일 로스토프의 남부 군관구 사령부를 점령한 바그너 군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의회는 이들 민간인 신분의 용병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 중이다. 카르타폴로프는 "그들을 무장해제하는 것이 나토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규군이 연이어 패배함에 따라 지난 여름부터 바흐무트 마을을 점령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진격한 유일한 러시아군이었다.
프리고진은 24일 밤 로스토프의 남부 군관구 사령부를 출발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던 중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러시아 현지인들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푸틴에게는 당황스럽게도 많은 현지인들은 바그너의 군대를 응원했다. 하루 동안 숨어 있다가 로스토프 거리에 다시 나타난 정규 경찰에게는 야유를 보냈다.
프리고진에 대한 모스크바 시민들의 감정은 묘했다. 한 시민은 "우리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틴은 그를 두려워하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소련 감옥의 수감자였던 프리고진은 많은 러시아인, 특히 모스크바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대상은 분명 아니다. 바그너 용병들 사이에는 러시아 수용소에서 모집된 수천 명의 강력 범죄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러시아 분석가들은 24일 로스토프나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대통령을 위한 자발적인 집회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푸틴의 23년 통치 이후 변화에 대한 억눌린 갈망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언론 보도에 따르면 25일 아침 현재,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남부의 밀레로보 군 비행장을 점령하고 있다. 프리고진이 언제 어떻게 벨라루스로 떠날지, 그리고 그의 부하들 중 몇 명이 그 뒤를 따를지는 확실하지 않다.
프리고진과 충돌을 빚어온 쇼이구 국방장관은 반란 이전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 장군도 마찬가지다. 쇼이구는 러시아 소셜 미디어가 며칠 내로 그의 교체 가능성이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내보내는 동안에도 내내 침묵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5일 ABC에 출연해 러시아의 현재 혼란에 대해 "우리는 매우 심각한 균열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지금의 모습이 사태의 끝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로선 혼란이 더 장기화되길 바라는 게 당연하다. 푸틴에게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