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선진국 핀란드와 스웨덴이 서방권의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문제가 국제적인 현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나라여서가 아니다.
오랜 기간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 온 두 나라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만도 아니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 문제가 지구촌의 현안으로 부상한 더 큰 이유는 향후 국제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사안이라서다.
미국을 비롯해 나토를 구성하는 서방 주요국 사이에서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개막한 나토 정상회의가 가까워지면서 초조함이 고조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문제에 열쇠를 쥐고 있었던 튀르키예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비준을 해줘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나, 스웨덴에 대해서는 비토(Veto, 반대) 입장을 고수하자 마땅한 대책 없이 골머리를 앓아왔다.
나토에 새로 가입하려면 나토 회원국 30개국이 모두 비준을 해줘야 하는데 튀르키예와 헝가리가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해 오다 헝가리는 최근 비준에 동의했고, 튀르키예가 마지막 장애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모두 지난해 5월 나토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기본적으로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찬성한다면서도 스웨덴에서 활동 중인 쿠르드족 분리주의 테러 세력에 대해 스웨덴 정부가 단호히 대처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들을 튀르키예로 넘겨야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협조할 뜻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 분산돼 거주하고 있는 이란계 산악 민족으로 튀르키예에서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자당이 결성돼 튀르키예 정부와 사실상 전쟁을 치르고 있고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노동자당을 테러 단체로 지정한 상태다.
그러던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가입에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튀르키예가 스웨덴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배경은 무엇일까.
◇F-16 전투기 제공 약속에 스웨덴 나토 비준으로 선회한 듯

알자지라에 따르면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비준한 이유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응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에서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가입을 지지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백악관이 미 의회와 협의를 거쳐 튀르키예에 대한 F-16 전투기 수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F-16 전투기는 그동안 튀르키예가 미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 온 무기였다.
미국 정부가 F-16 전투기를 제공해 줄 것을 조건으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튀르키예가 비준해 줬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승인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그 대가로 튀르키예가 요구해 온 F-16 전투기 판매를 허용할 수 있다는 관측을 부인하면서도 그와 관련된 논의가 미 의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미국뿐 아니라 스웨덴으로부터도 튀르키예가 그동안 요구해온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다짐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쉥겐 비자 면제 문제

쉥겐 비자 문제도 튀르키예의 비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
쉥겐 비자는 지난 1990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쉥겐 협약에 따른 세계 최대 규모의 비자 제도로 조약에 참여한 유로존 26개국 사이에서는 비자 없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 반면, 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외국에 대해서는 쉥겐 비자가 있는 경우에만 입국이 가능하도록 한 비자 제도다.
그러나 튀르키예 국민은 튀르키예가 쉥겐 협약 가입 조건을 아직 충족하지 못해 쉥겐 비자를 받아야만 유로존의 쉥겐 협약 가입국을 오가는 것이 가능한데 비자를 거절당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에 큰 불만을 제기해 왔고, 자국 국민들이 쉥겐 비자 없이도 유로존 국가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터키는 인권 보호와 기본적 자유권 보장 등에서 여전히 미흡한 평가를 받아 유럽연합(EU) 회원국 지위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온 발표에는 스웨덴의 튀르키예의 이같은 요구를 적극 경청하고 적극 협력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튀르키예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현안에 속하는 이 요구 사항을 유로존 국가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스웨덴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입장을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밝힌 것이 튀르키예의 비준 거부를 철회하도록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