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SK이노베이션 3000억원 투자로 세계 600조원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국기연 특파원)
미국의 차세대 원전 업체로 소형모듈원자로(SMR) 분야 글로벌 선도 업체인 테라파워(TeraPower)는 그 무엇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만든 회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구상에 인터넷 혁명을 몰고 왔던 핵심 주역 중 한 사람인 게이츠가 2008년에 미래의 인류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테라파워를 설립했다. 게이츠는 현재 테라파워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미국·영국·프랑스·중국·일본 등 전 세계에서 70여 종의 SMR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SMR은 원자로 부품을 공장에서 모듈로 생산해 현장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전기 출력 300MW(메가와트) 이하의 원자로를 말한다. 대형 원전의 건설비는 5조~10조원이나 SMR은 1조~3조원이 든다. 세계경제포럼(WEF)은 SMR 시장이 매년 22%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NNL)은 오는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400조~600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미국 SMR 설계기업 테라파워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8월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했다. 테라파워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에 345MW급 실증 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핵심 인재들이 집결한 ‘테라파워 에버렛 연구소’(Everett Lab)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서부의 관문 시애틀에는 보잉사와 스타벅스, 코스트코 등 굴지의 대기업 본사가 포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SMR 개발 경쟁 탓인지 에버렛 연구소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등에 진하게 배어있는 조금은 어둡고 음습한 시애틀의 분위기가 이 연구소를 휘감고 있었다.
한국 기자단을 태운 전세 버스가 시애틀 도심에서 벗어나 에버렛 연구소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버스 운전기사는 GPS를 보면서도 목적지인 이 연구소 출입문을 찾지 못한 채 지나쳤다가 한참을 후진해 간신히 연구소 단지 안으로 찾아 들어갔다. 이 연구소 건물 밖 어디에도 테라파워라는 간판이 없어 시애틀 주민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도대체 알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테라파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좁은 출입문으로 들어서자 리셉션 데스크 뒤에 있는 ‘테라파워’라는 회사 이름이 마침내 눈에 들어왔다.
에버렛 연구소의 선임 엔지니어들은 반갑게 한국 기자들을 맞이하고, SMR 개발 공정을 단계별로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보안을 이유로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일절 불허했다.
에버렛 연구소는 약 2000평 규모로 격납 창고식 건물 내에 나트륨 실험 장비,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실험 설비, 염소염 용융염(상온에서 고체인 염에 열을 가해 녹인 물질) 원자로(MCFR) 실험 장비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게이츠가 15년 전에 테라파워를 만든 배경부터 설명했다. 그는 “게이츠가 전 세계적으로 금세기에 전기에 대한 수요 증가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약 10억 명이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다”고 전했다. 르베크 CEO는 “풍력과 태양력을 적극 활용해도 현재의 에너지원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어 원자력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SMR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 대형 원전은 경수로가 대부분이다. SMR은 가압경수로형인 3.5세대와 비경수로형이 주축인 4세대로 나뉜다. 가압경수로형 3.5세대 SMR은 냉각재·감속재로 물을 사용한다. 4세대 SMR은 냉각재·감속재로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을 사용한다. 테라파워는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미래형 SMR로 꼽히는 염소염 용융염 원자로를 개발하는 혁신 기업이다.
르베크 CEO는 “오는 2050년쯤 되면 전 세계에 나트륨 원자로가 수백 개, 용융염 원자로 수백 개가 만들어져서 청정에너지 공급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런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해 SK와 같은 한국 기업들과 대대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베크 CEO는 “우리가 늘 함께 사업을 확대해나갈 파트너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건설과 안전한 원전 제공에 있어 풍부한 경험을 가진 뛰어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원자력 산업의 역량을 강화해 원자력 규모를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오는 2030년까지 나트륨 원자로를 확대하고, 그 뒤에는 MCFR를 선보이려고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원자력 발전 산업에도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함에 따라 SMR 건설 붐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형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세액 공제 형식으로 수십억 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을 계기로 소형모듈원전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한국 기업이 여기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빌 게이츠와 함께 테라파워 공동 선도 투자자 지위를 확보했다. 지난 4월에는 SK㈜, SK이노베이션, 한국수력원자력, 테라파워가 4자 간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상호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한국 원전 업계가 앞으로 미국 SMR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르베크 CEO는 “사실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만큼 안전한 것이 없다”면서 “화석연료보다도, 재생에너지보다도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자력을 이용해 대량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금세기에 커다란 혜택이 아닐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