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이 핵무기와 관련한 러시아의 행보에 허를 찔리면서 좌불안석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엔 산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O)에 가입하고 비준까지 했던 러시아가 CTBTO 비준을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전격적으로 밝히고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CTBTO 비준 철회 방침은 국제원자력기구(IEAE)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 주재 러시아 대표부의 미하일 울리야노프 대사의 입을 통해 발표됐다. 그는 크렘린궁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의 대외 핵 협상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8일(이하 현지시간) 알자지라에 따르면 울리야노프 대사는 지난 6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는 지난 2000년 했던 CTBTO에 대한 비준을 백지화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CTBTO 비준 카드를 꺼내 들면서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대외 핵 협상 책임자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비준 철회 계획”
이미지 확대보기러시아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미국은 불편한 입장을 즉각 나타냈다.
미 국무부는 울리야노프 대사의 발언이 나온 뒤 낸 성명에서 “울리야노프 대사의 발언에 대해 매우 불편한 입장이다”라며 “이같은 행위는 어떤 나라가 됐든 핵실험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규범을 불필요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은 미국의 허점 노린 카드
미 국무부의 비판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의 ‘내로남불식’ 핵무기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명분으로 내세워 러시아가 비준 철회 카드를 내민 것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허를 찔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는 모든 형태의 핵실험을 금지하기 위해 지난 1996년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만들어진 CTBTO가 현재까지 전 세계 187개국이 CTBTO에 서명했고, 178개국이 비준했음에도 여전히 발효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 미국이 자리 잡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CTBTO는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핵무기를 실제로 보유한 44개국이 모두 이 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해야만 발효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 때문에 44개국을 채워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어서다.
플로이드 CTBTO 사무총장에 따르면 CTBTO를 발효시키기 위해 비준을 완료해야 하는 나라는 미국을 위시해 중국, 북한,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 등 8개국이다.
이들 44개 나라 중에서도 미국, 중국,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은 조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는 않았고 북한, 인도, 파키스탄은 아직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울리야노프 대사도 이 대목을 놓치지 않고 러시아가 CTBTO 비준을 철회하는 것이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거론했다.
그는 “미국은 CTBTO에 서명만 하고 비준은 하지 않았는데 러시아만 비준까지 함으로써 무너진 형평성을 바로 잡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울리야노프 대사는 “CTBTO에 대한 비준을 철회하는 것이 러시아가 핵실험 재개에 나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꺼내 들 가능성이 있다는 국제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