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중 2인자' 리커창 전 총리, 심장마비로 사망…중 네티즌 추모의 물결

글로벌이코노믹

'중 2인자' 리커창 전 총리, 심장마비로 사망…중 네티즌 추모의 물결

중 정부 추모 열기 예의주시…댓글 차단 등 SNS 단속
외신들 "시진핑 아래서 힘 잃은 2인자" 리 총리 조명
한국과 남다른 인연…1995년 첫 방한 후 네 차례 방안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별세하자 서방 언론들은 긴급·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그의 생애를 조명했다. 합리적·실용적 경제정책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시 주석의 1인 권력 강화와 통제적인 정책으로 힘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별세하자 서방 언론들은 긴급·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그의 생애를 조명했다. 합리적·실용적 경제정책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시 주석의 1인 권력 강화와 통제적인 정책으로 힘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진=AP.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총리가 퇴임 직전인 올해 3월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리커창 중국 총리가 퇴임 직전인 올해 3월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리커창 전 총리가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 전역에서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TV(CCTV)가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각) 리 전 총리 사망 소식을 보도하자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선 그를 추모하는 글이 쏟아졌다.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에서도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주요 언론들은 리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긴급·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그의 생애를 조명했다.

합리적·실용적 경제정책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시진핑 주석의 1인 권력 강화와 통제적 정책으로 힘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리커창 동지 서거’ 웨이보 해시태그는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수십억회 넘게 조회됐다. 삭제된 관련 글도 수십만건에 달했다.

수많은 웨이보 네티즌은 추모 의미를 담은 붉은 촛불 이모지(그림문자)를 올렸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 등 추모의 글로 마음을 전했다.

리커창 총리가 퇴임하지 7개월이 지났지만 최근 경제 회복이 둔화한 가운데 그의 존재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리 전 총리가 추진했던 흔들림 없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며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는 글도 등장했다.

일부 네티즌은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만 68세로 비교적 나이가 많지 않은 데다가 올해 3월까지 총리로 활동했다는 점 때문이다.

1976년 저우언라이 전 총리와 1989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 이후 거대한 추모 열기는 각각 1·2차 톈안먼(天安門) 시위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실업률과 경제난에 직면한 현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의 사망과 관련한 민간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중국 정부 공식 웨이보 계정은 리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게시했으나 해당 트윗의 댓글은 막혀 있다. 환구시보나 중국일보 등 관영 매체들의 웨이보 계정은 사망 소식에 댓글은 달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쓴 댓글은 볼 수 없게 조치했다.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 위챗(微信)은 이날 오전 한때 '리커창'의 전송을 통제했으나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사망 소식을 보도한 뒤로는 제한을 풀었다.

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고,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이후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는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커창 전 총리는 한국과 인연이 남달랐다. 생전 한국을 네 차례나 방문했다.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때인 1995년이다.

이어 랴오닝성 당 서기 시절인 2005년 9월 한국을 방문,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와 삼성, 현대, LG, 포항제철 등 경제계 인사들을 만났다.

2011년 10월 부총리 시절에는 북한을 찾아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뒤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예방하는 등 남과 북을 잇달아 방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후 총리에 오른 그는 2015년 10월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네 번째 한국을 찾았다. 그는 방한 기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만나 북핵·한반도 통일문제 등에서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상인 글로벌이코노믹 선임기자 baunamu@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