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시아가 중동에서 영향력 확대할 것으로 우려…리비아 측 설득 나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리비아국민군(LNA)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과 지난 9월 모스크바에서 만나 양측 간 군사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리비아 동부에 군사 기지를 구축하면 유럽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역할을 확대하려 할 것으로 미국 측이 분석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지중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전략적인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의 리비아 진출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는 북아프리카 산유국에서 바그너 용병 그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리비아의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 2011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의 작전으로 축출된 뒤 리비아가 내전과 권력 공백 상태에 빠지자 바그너 그룹이 이곳에서 활약해 왔다.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리비아는 정치적으로 동·서의 두 정부로 나뉘어 있다. 두 개의 정부는 각각 이를 지지하는 무장 세력과 민병대 등을 거느리고 내전을 계속해 왔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끌던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은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하는 레바논 민병대 헤즈볼라에 방공 무기 체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WSJ가 보도했다. 이 매체는 바그너 그룹이 헤즈볼라에 러시아산 SA-22 방공체계를 보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전쟁이 발발한 뒤 이스라엘 북부 접경지에서 지속해서 포격 및 침투 시도를 하고 있다.
한때 러시아에 무장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 그룹은 약 5만 명의 전투원을 보유한 민간 용병 기업이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푸틴의 더러운 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최측근 인물이었으나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에 푸틴에 반기를 들었고, 지난 8월 23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군부의 통제를 받는 바그너 그룹은 중동 지역에 러시아의 군사 자원을 배치하기 위한 토대를 다져 놓았다. 러시아군은 홍해 수단에 해군 기지를 구축해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 아라비아반도에 교두보를 구축하려고 한다.
러시아 해군 전함은 리비아 북부 항구에 항구적인 정박 권한을 확보하려고 한다. WSJ에 따르면 유누스베크 옙쿠로프 러시아 국방부 차관이 지난 9월 말부터 리비아국민군(LNA)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과 접촉해 러시아 군함이 북동부 벵가지나 투브루크 항에 장기간 정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두 항구는 모두 그리스와 이탈리아로부터 650㎞ 이내 거리에 있다. 러시아군은 이미 다른 지중해 연안국인 시리아 서부의 타르투스 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의 외교·국방 합동 사절단은 최근 리비아를 방문해 하프타르 장군에게 바그너 용병 그룹을 추방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관 마이클 랭리는 하프타르 장군을, 리처드 놀런드 리비아 특사는 서부에서 집권 중인 리비아 통합정부(GNU)의 압둘 하미드 드베이바 총리를 각각 접촉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리비아 동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리비아 하원이 지난 2일 앞으로 러시아와 모든 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리비아 하원의 외교 국제협력위원회 유세프 알-아쿠리 위원장이 리비아 주재 러시아 대사 아이다르 라시도비치 아가닌과 동부 벵가지 시에서 만나 양측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리비아 하원이 공식 발표했다. 리비아 측은 앞으로 이른 시일 내에 벵가지에 러시아 영사관을 개설하도록 현재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