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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기후변화가 부른 '살인 곰팡이' 공포, 영국 넘어 전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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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기후변화가 부른 '살인 곰팡이' 공포, 영국 넘어 전 세계로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 기온 상승 업고 유럽·미주 확산 전망…수백만 명 감염 우려
전문가들 "치료 어렵고 치명적…기후 대응 늦으면 더 큰 재앙 부를 것"
기후변화에 따라 확산이 우려되는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 이 곰팡이는 특히 서늘한 기후에 잘 적응하는 특성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기후변화에 따라 확산이 우려되는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 이 곰팡이는 특히 서늘한 기후에 잘 적응하는 특성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사진=로이터
지구 온난화에 따라 치명적인 '살인 곰팡이'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곰팡이는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라는 한 종류의 곰팡이로, 사람 몸에 감염되면 폐와 호흡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스카이 뉴스, 인디펜던트 등 영국 유력 일간 신문들이 지난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곰팡이는 이미 더운 기후 지역에서 해마다 수백만 명을 감염시키고 있으며, 사람과 동물, 농작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어 보건 당국에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기온 상승 때문에 유럽, 아시아와 미주 대륙의 북부 국가들로 확산되면서 해마다 수백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다.

문제의 곰팡이는 '아스페르길루스' 종으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뇌 감염을 일으키고 가축을 병들게 하며 농작물을 오염시켜 먹을 수 없게 만든다.

새로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곰팡이는 현재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북쪽으로 이동해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될 것으로 연구진은 예측한다. 확산 범위는 전 세계가 화석 연료 사용을 얼마나 빨리 줄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기후변화 대응이 늦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위험에 노출된다고 보고서는 경고했다.

◇ '임계점' 다다른 곰팡이의 위협


웰컴 트러스트 연구원이며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맨체스터 대학교의 노먼 반 라인 박사는 세계가 곰팡이 병원균 증가와 관련해 '임계점(티핑 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균은 집 내부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반 라인 박사는 곰팡이 감염이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수백만 명 사망의 한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말라리아나 뎅기열처럼 모기가 옮기는 질병의 위협도 늘리고 있는데, 곰팡이 때문에 생기는 위험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점점 커지는 우려로 떠오르고 있다. 곰팡이는 공기, 토양, 심지어 우리 몸속에도 있으며 공기 중 포자를 통해 퍼진다. 그러나 과학계에 알려진 곰팡이는 전체의 10%가 안 될 것으로 추정되어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맨체스터 대학교의 노먼 반 라인 박사는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곰팡이 감염은 치료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현재 쓸 수 있는 항진균제는 종류가 매우 적은 반면, 곰팡이 자체는 약물에 대한 내성을 빠르게 키우고 있어 발견과 진단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아스페르길루스는 좋은 점도 있어, 간장이나 사케(일본식 청주) 발효 등 산업과 식품 생산에도 쓰인다.

또한 반 라인 박사는 "이 유기체는 유기물을 분해하고 기후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등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구실도 한다"고 덧붙였다.

반 라인 박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수십만 명의 생명과 종 분포의 대륙 규모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50년 뒤에는 생물이 자라는 곳과 사람이 감염되는 경로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최근 인기를 끈 TV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뇌를 조종하는 곰팡이가 사람 사는 세상을 파괴하는 어두운 미래를 그려 시청자들에게 곰팡이의 위험성을 뚜렷이 알렸다. 이에 반 라인 박사는 스카이 뉴스 진행자 리아 볼레토에게 "현실은 이미 충분히 무섭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모든 종류의 곰팡이 감염 때문에 생기는 사망자는 250만 명에 이른다. 건강한 사람은 면역 체계를 통해 곰팡이 포자를 이겨낼 수 있지만, 천식, 낭포성 섬유증 같은 바탕 질환이 있거나 면역 체계가 약해진 사람에게는 이 치명적인 곰팡이가 특히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아스페르길루스 포자 때문에 생기는 폐 질환인 '아스페르길루스증' 같은 치명적인 감염에 걸리기 쉬우며, 이 질병은 폐에서 시작해 뇌 등 다른 몸 부분으로 빠르게 퍼져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 해 18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 확산 예측…북유럽도 안전지대 아니다


지난 일을 보면, 2012년 10월 13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뇌수막염 환자 검체에서 곰팡이(엑세로힐룸)를 계속 확인했으며, 그때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 양성 반응은 한 건뿐이었다. 같은 해 10월 19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는 미국 전역을 휩쓴 곰팡이성 뇌수막염 사태에서 처음으로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가 진단되었다. 그때 밴더빌트 임상 미생물학 연구소에서 처음 확인된 이 일로 나라 안에서 257명이 감염되고 20명이 숨졌다.

반 라인 박사는 "대부분의 곰팡이는 환경 속에 산다"며 "그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50년 안에 우리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질병과 감염병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연구팀은 현재 곰팡이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과 지구 온난화 진행 속도에 따른 서식지 변화 모습을 살폈다. 현재 지구는 평균기온이 섭씨 2.6도에서 3.1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예상으로는 섭씨 2도만 따뜻해지는 때에도,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특히 서늘한 기후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알려짐)와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북쪽으로 올라가 퍼지는 반면, 남유럽에서는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

곰팡이 연구에 따르면, 세계의 많은 화석 연료 사용 때문에 2100년까지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는 현재보다 77% 더 넓은 곳으로 퍼질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유럽에서만 900만 명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고 FT는 보도했다. 이 종은 퇴비 더미처럼 더운 환경에서 빠르게 자라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람의 체온인 섭씨 37도에서도 잘 적응해 번식한다. 아스페르길루스 니게르는 확산 범위가 10% 더 넓어져 유럽에서만 최대 천만 명에게 추가로 피해를 줄 수 있다.

엑서터 대학교 MRC 의료 진균학 센터 공동 책임자인 일레인 빅넬 교수는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에게 사람 폐에 자리 잡는 데 필요한, 적응에 유리한 점을 주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다른 종인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는 농작물에 살며, 2100년까지 중국 북부,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알래스카 등지에서 지금보다 16% 더 넓은 곳으로 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오진 가능성…보건 체계 대비 시급"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브리스톨 대학교의 댄 미첼 교수는 "병원균이 새로운 지역에 나타나면 오진이 자주 생길 수 있으므로, 보건 체계는 이런 새로운 위협을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이 연구는 아프리카에서는 기온이 지나치게 올라가 일부 곰팡이 종류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와 브라질의 지금 있는 서식지가 살기에 알맞지 않게 바뀌면 그곳 생태계가 해로울 수 있다. 이 연구는 아직 학계의 공식 동료 심사를 거치지는 않았으나, 연구 자금을 댄 이름난 보건 연구기관인 웰컴 트러스트의 지원을 받고 있다.

◇ "건강·식량 안보 동시 타격"…국제 공조·연구 절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감염병과 의료 진균학 교수인 다리우스 암스트롱-제임스는 FT에 "이 유기체는 사람 건강과 식량 안보 양쪽에 다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웰컴 트러스트의 비브 구센스 연구 관리자는 "곰팡이 병원균은 감염을 일으키고 식량 체계를 어지럽혀 사람 건강에 큰 위협을 가져온다"며 "기후 변화는 이런 위험을 더욱 키울 것이다. 이 문제에 대처하려면 연구상 빈틈을 빨리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