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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 반도체 허브” 도전한 말레이시아, 트럼프 관세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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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 반도체 허브” 도전한 말레이시아, 트럼프 관세에 ‘제동’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시내.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시내.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견제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주목받던 말레이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고부가가치 반도체 산업으로 도약을 꾀하던 말레이시아의 청사진이 흔들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말레이시아는 오랜 기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조립 및 테스트 허브로 자리 잡으며 수십만 개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현재는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반도체 규모만 162억 달러(약 2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미국 반도체 수입의 약 20%를 차지한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레이시아산 제품 전체에 대해 24% 관세를 예고하고 현재는 기본 10% 관세를 유지한 채 협상을 벌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전 품목에 25% 이상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21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우리 편을 강요하려 해선 안 된다”며 “국가는 스스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말레이시아가 전략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부터 AI용 첨단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안와르 총리는 대만 TSMC처럼 ‘설계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기술국가를 표방하며 10년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계획을 내놨다. 지난 3월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2억5000만 달러(약 3410억원) 규모의 협약도 체결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협약을 통해 10개의 자국 반도체 설계사를 육성하고, 연간 200억 달러(약 27조26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미국 반도체 기업은 인텔, AMD, 오라클, HP 등 65%에 달한다. 정부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최근 안와르 총리와 직접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UOB은행 줄리아 고 선임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중국과의 협상에서 관세를 철회했지만 반도체처럼 국가안보 논리가 개입된 분야에선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북부 케다 주엔 오스트리아의 AT&S가 AMD를 위한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AT&S는 오스트리아, 인도, 한국, 중국 등지에도 공장을 운영하며 미국 관세 정책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인골프 슈뢰더 AT&S 미세전자 부사장은 “공급망을 최대한 유연하게 만들어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말레이시아는 최근 AI 칩 설계 부문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와도 협력해 YTL그룹과 함께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 호주, 일본 등도 중국 대안을 찾기 위한 투자처로 말레이시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인 오프스타의 응멍타이 공동대표는 “관세 불확실성이 클수록 기업들은 지출을 줄이고 제품 개발을 미루게 될 수 있다”며 업계 전반의 타격을 우려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