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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對중국 기술 수출규제 역효과 심화... 중국 자체 기술 생태계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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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對중국 기술 수출규제 역효과 심화... 중국 자체 기술 생태계 급성장

화웨이 AI칩 성능 엔비디아 앞서, 전기차·드론·태양광 패널도 미국 제품 능가
2024년 10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미디어 투어 중 양산 심해 항구의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4년 10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미디어 투어 중 양산 심해 항구의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이 중국의 기술 굴기를 막기 위해 추진해온 각종 수출 통제 정책이 오히려 중국의 자체 기술 생태계 발전을 가속화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30(현지시각) 미국의 대중국 기술 억제 계획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산 전기차와 드론, 태양광 패널이 미국 제품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인공지능(AI), 에너지, 자율주행차, 드론, 전기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고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왔으나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의 전기차는 미국보다 저렴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우수하며, 소비자용 드론 시장에서는 압도하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역시 웨이모(Waymo)와 테슬라가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로 우한과 베이징 거리에 등장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첨단 마이크로칩과 AI 분야에서 근소한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화웨이 AI, 엔비디아 성능 추월...메모리 용량 5배 차이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AI 반도체다. 미국에서 칩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중국은 화웨이, 캄브리콘, CXMT, 중국국제집적회로제조(SMIC) 등 전적으로 중국 기업이 설계하고 제조한 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화웨이의 최신 어센드(Ascend) 910C AI 칩은 엔비디아 제품 대비 3분의 1 수준의 성능에 그치나, 클라우드매트릭스 384 AI 슈퍼컴퓨터에는 엔비디아보다 5배나 많은 칩이 탑재됐다.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의 더그 오라플린 애널리스트는 "순수 성능과 클라우드매트릭스 컴퓨터에 얼마나 많은 메모리가 탑재됐는지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에서 화웨이가 이미 엔비디아를 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웨이의 클라우드매트릭스 384는 기존보다 4배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나, 오라플린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지난 10년간 에너지 생산량을 늘려왔으며 전체 공급망을 통제하고 있어 에너지 생산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의 프로세서를 제조하는 SMIC는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칩 제조업체이며, 수출 금지 이전의 오래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고품질 칩 제조에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중국 칩 제조업체들을 미국의 경쟁에서 보호하는 것은 해외에서 중국 업체들을 강화하고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뿐"이라며 "수출 제한은 중국의 혁신과 규모를 촉진해 왔다"고 비판했다. CEO는 중국이 2026AI용 칩과 서버에 500억 달러(69조 원)를 지출할 수 있으며, 첨단 AI 칩 수출 금지로 엔비디아가 해당 시장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리티지재단 브라이언 버락 중국 분석가는 미국이 새로운 냉전에 돌입했기 때문에 AI 같은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주 100명의 직원이 감원될 때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원으로 활동했던 버락은 "유도 무기의 목표물을 포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 AI를 중국이 개발하도록 돕는 게 괜찮을까"라며 "그것이 건전한 사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라고 반박했다.

◇ 트럼프 1기 때 본격화된 수출 통제, 중국 자급자족 가속화


워싱턴에서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한 우려는 새로운 것이 아니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의 기술 발전을 방해하려는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행정부 때 본격화됐다. 2018년 당시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중국 통신회사 ZTE와 마이크로칩 등 미국 기술 기업 간의 거래를 중단했다. 이로써 중국 정부와 연계된 이 회사의 세계 야망은 사실상 종식됐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댄 왕 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단번에 중국 정부와 중국 기술 기업에 중국의 기술 선도 기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후 마이크로칩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일련의 제한 조치가 취해졌는데, 특히 중국 스마트폰과 통신 대기업 화웨이에 대한 제한 조치가 두드러졌다.

실리콘밸리의 엔젤 투자자이자 중국 기술 분석가인 루이 마는 당시 중국 기술 기업들조차 미국, 한국, 대만에서 생산되는 미국산 칩보다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국산 칩 구매를 꺼렸다고 말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 기술 기업들은 국산 칩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라플린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미국에서 첨단 기술을 반복해서 구매하고 모방한 후, 이를 거대 기업으로 키워온 과정을 학생이 다른 학생의 숙제를 베끼는 것에 비유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반기업적인 것처럼 들리나, 그들의 일을 더 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AMD에서 11년간 임원으로 근무한 반도체 산업 분석가 패트릭 무어헤드는 중국이 크게 뒤처졌거나 영원히 뒤처질 것이라는 생각은 역사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저는 30년 동안 기술 업계에 종사했는데, ', 중국은 이걸 알아내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언제쯤 알아낼 수 있을지다."

무어헤드는 장기로 보면 중국이 대만의 TSMC나 미국 인텔 같은 기업들의 역량에 필적하거나 심지어 능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무역 전쟁 역사상 다른 어떤 나라도 보유하지 못한 독특한 자산 조합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거대한 인구는 숙련된 공장 노동자부터 국내 대학에서 교육받은 엔지니어까지 매우 잘 훈련돼 있다. 엔비디아의 황 CEO는 전 세계 AI 엔지니어의 절반이 중국에 있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엔비디아는 최근 상하이에 새로운 엔지니어링 사무실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미국 상원의원들의 비난을 받았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어, 해외 진출 전에 자국 내 기업들을 육성할 수 있다. 중국은 많은 원자재와 특화 상품을 미국과 전 세계에 의존하고 있으나, 중국 공산당의 체계적이고 자금 지원이 풍부하며 꾸준한 자급자족 정책 덕분에 이런 의존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댄 왕 연구원은 미국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면 자국 칩과 소프트웨어 강자들이 중국 국내 시장을 계속 장악하도록 허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시작된 수출 통제로 이것이 불가능해진 만큼, 앞으로 유일하게 논리상 가능한 방법은 통제를 유지하고, 어쩌면 더 강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댄 왕 연구원은 "지금 미국의 정책은 최선이 아니라 최악에 가까운 선택"이라며 "한번 틀어진 중국과의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길은 없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