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니 신주' 구상에 1650억 달러 투자…2027년 애리조나서 2나노 양산
대만 '전력난'이 미국행 부추겨…기술 유출·생태계 약화 우려 공존
대만 '전력난'이 미국행 부추겨…기술 유출·생태계 약화 우려 공존

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세계 공급망 재편이라는 격랑 속에서 TSMC가 던진 전략적 승부수라고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 아시아가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결정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대만의 첨단 반도체 생산 독점 체제는 처음으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TSMC는 현재 대만 신주 바오산의 F20 팹과 가오슝의 F22 시설을 중심으로 최첨단 2나노 공정의 양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흐름은 이미 태평양을 건너고 있다. TSMC는 당초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며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팹 21 부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 3나노 공정용으로 설계했던 애리조나 P2 팹에 2나노 생산 라인을 전격 추가 도입하기로 했다. 2나노 공정은 본래 후속 단계인 P3 공장에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이 앞당겨진 것이다. 이에 따라 P2 팹의 양산 시점은 이르면 2027년 말로 예상되며, 대만 내 최첨단 팹과의 기술 격차를 획기적으로 좁히는 결정이다.
애리조나에 1650억 달러 투입…'미니 신주' 현실로
첨단 반도체 제조 역량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야망은 확고하다. 미국 정부의 장기적인 구상은 애리조나를 대만의 핵심 반도체 집적지인 '신주 과학단지'를 본뜬 '미니 신주(Mini Hsinchu)'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2030년대 초, TSMC의 2나노와 그 차세대 공정인 A16 노드가 애리조나에서 본격 가동하면, 대만이 독점해 온 첨단 반도체 제조 분야의 아성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전을 맞게 된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지정학적 명령과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으로 되돌리려는(리쇼어링) 시대적 과제를 안고, TSMC는 전례 없는 투자를 결정했다. 애리조나에 총 1650억 달러(약 230조 원)를 투입해 6개의 반도체 생산 팹, 2개의 첨단 패키징 공장, 1개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아우르는 초대형 집적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생산 계획을 보면, P1 팹은 2024년 말 5나노에서 4나노로 공정을 개선해 양산을 시작하고, P2 팹은 기존 3나노에 더해 2나노 공정까지 포함해 2027년 말 양산을 개시한다. 이어 P3와 P4는 2나노 및 A16급 노드를, P5와 P6는 A14와 그 이상의 차세대 공정을 담당한다.
TSMC의 미국 투자는 웨이퍼 생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성능을 극대화하는 핵심 기술인 첨단 패키징 역량 역시 미국 안에서 대규모로 확장한다. 애리조나에 신설하는 AP1, AP2 패키징 공장은 2026년 착공에 들어가는데, AP1에서는 SoIC(System on Integrated Chips)와 CoW(Chip on Wafer) 기술을 활용해 2028년 양산을 시작하며, AP2에서는 패널 레벨 패키징 기술인 CoPoS(Chip on Panel on Substrate)를 통해 2029년 생산을 목표로 한다.
물론 대만 본토의 위상이 당장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만 자이현의 AP7 부지는 여전히 세계 최대이자 최첨단 패키징 중심지로 남는다. 첫 라인인 P1은 애플의 WMCM(Wafer Module Chip Mainboard) 제품 전용으로 운영하고, P2와 P3는 SoIC 기술에, 그리고 P4 또는 P5 라인은 CoPoS 기술에 집중해 2029년 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만 '전력난'이 변수…세계 공급망 재편 가속
TSMC의 이번 전략은 공급망을 다변화해 '세계 삼각 거점(대만-미국-일본/유럽)' 체제를 구축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이미 일본과 독일에도 첨단 팹을 건설 중이며, 이에 따라 장비·소재 업체들 역시 대만 본사에서 발주를 받더라도 실제 설비는 미국, 일본, 독일 등 해외 거점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재배치의 배경에는 대만이 가진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전력 공급' 문제다. 공급망 전문가들은 대만의 고질적인 전력 부족과 불안정한 공급망이 앞으로 대만 안에서의 추가 증설을 가로막는 '병목 현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미국은 광활한 부지와 안정적인 에너지 기반시설, 그리고 미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미국 내 2나노 이하 공정 생산 비중이 당초 목표인 30%를 웃돌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대만 정부는 타이난의 '살룬 스마트 녹색에너지 과학도시'를 차세대 1나노 공정의 유력 후보지로 지정하며 본토 생태계 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7년은 TSMC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대만에서 동시에 최첨단 노드 양산이 이뤄지는 해가 될 것이다. 2030년 무렵 애리조나에 안정적인 첨단 공정 집적단지가 형성되면, 대만의 독점적 지위는 처음으로 도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전환에는 위험도 따른다. 공급망 재편에 따른 비용 증가, 핵심 기술의 역외 유출 가능성, 그리고 대만 본토의 반도체 생태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TSMC의 2나노 승부수가 세계 반도체 지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