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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제조업 일자리 7만8000개 줄고 AI 투자 45% 폭증…'양극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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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제조업 일자리 7만8000개 줄고 AI 투자 45% 폭증…'양극화' 심화

데이터센터 투자 37% 급증에도 공장 78개월째 고용 감소…관세 정책 역효과
미국의 미래를 이끌 두 산업으로 꼽혔던 인공지능(AI)과 제조업이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올해 AI 관련 투자가 급증하는 동안 제조업은 일자리와 투자 모두에서 침체에 빠졌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미래를 이끌 두 산업으로 꼽혔던 인공지능(AI)과 제조업이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올해 AI 관련 투자가 급증하는 동안 제조업은 일자리와 투자 모두에서 침체에 빠졌다. 이미지=GPT4o
미국의 미래를 이끌 두 산업으로 꼽혔던 인공지능(AI)과 제조업이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3(현지시각) 올해 AI 관련 투자가 급증하는 동안 제조업은 일자리와 투자 모두에서 침체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AI 투자 폭발 증가, 제조업은 하락세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데이터센터 투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늘어난 반면, 공장 건설 투자는 같은 기간 약 3% 줄었다. 물가상승을 감안한 컴퓨터 장비 투자는 전년보다 45% 이상 급증해 2450억 달러(350조 원)를 기록했지만, 전통 산업 장비 투자는 2640억 달러(377조 원) 수준에서 정체됐다.

브루킹스연구소 마크 무로 선임연구원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며 문화 전체가 여기에 집중하는 동안, 제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더 나빠지고 있다""AI 붐이 경제의 다른 부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가리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버, 고성능 반도체, 전력 시스템 등 AI 경제의 핵심 하드웨어 수입은 올해 들어 64% 급증했다. 이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의 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조업 일자리 78개월째 줄어


반면 고용 상황은 심각하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제조업 일자리는 38000개 줄었다. 지난해 8월로 끝나는 1년간 제조업 일자리는 78000개 감소했다.

미국 제조업 고용은 1979년 정점이었던 1950만 명에서 현재 1300만 명 미만으로 축소됐다. 20221255만 명이었던 제조업 고용은 2023년 초 1295만 명까지 일시 반등했지만, 이후 계속 하락해 올해 1273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제조업 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경제분석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1년간 공장 투자는 약 6% 줄었다. 이는 2021년 초 이후 처음 나타난 감소다. 인구조사국 데이터는 새로 문을 여는 제조업체도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완성품 생산은 늘어났지만, 크리스 윌리엄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생산 증가가 실제로는 "관세 선제 대응"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제조업체들이 관세 부과 전에 사들인 원자재를 소진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관세가 부른 역설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 부흥을 위해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KPMG 미건 마틴-슈넨버거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철강과 알루미늄 같은 부문을 보호해 얻은 일자리는 이들 투입재 가격이 비싸지면서 생긴 손실보다 훨씬 적었다"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GM), 캐터필러, 존디어 등 미국 제조업체 경영진들은 최근 투자자들과 논의에서 관세와 관련해 수십억 달러 비용이 생겼다고 밝혔다. 미시간주립대 제이슨 밀러 교수가 분석한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률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업체들은 이를 부분으로 관세 탓으로 돌렸다.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핵심 투입 비용도 급등했다. 알루미늄 생산 및 가공 가격은 연간 21.1% 올랐고, 철강 제조는 12.4%, 전기 장비는 6.7%, 반도체 제조는 4.8%, 기계 제조는 3.6% 각각 상승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제조업 프로젝트에 수백억 달러를 배정했다.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포함한 연간 제조업 투자는 반도체법 이후 2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가 2024년 정점을 찍었다. 이들 프로젝트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건설 중이다. TSMC가 피닉스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들이 대표 사례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시대 반도체 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전체 공장 투자가 그 뒤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산업협회는 반도체 운영이 직접 약 345000개 일자리를 차지하고, 간접으로 200만 개 미국 일자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의 일자리 창출 한계


AI 투자 붐이 전통 제조업만큼 일자리를 만들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보기술혁신재단 스티븐 에젤 부회장은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1000명 이상 인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운영 단계에서는 보통 100~300명만 일한다""전통 자동차 공장은 같은 면적에서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JP모건 스테파니 알리아가 글로벌시장전략가는 "이번 AI 지출 붐은 이전 인프라 구축 물결들보다 일자리, 특히 블루칼라 일자리를 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루스벨트연구소 토드 터커 소장은 "블루칼라 노동자가 제조업 일자리를 갖는다면 어느 정도 복권에 당첨된 것"이라며 제조업 일자리가 같은 업종 다른 일자리보다 거의 모든 노동자 집단에서 더 나은 임금을 준다고 설명했다. 터커 소장은 반도체 제조 운영도 주변 지역에 높은 임금의 엔지니어 일자리와 훈련 파이프라인을 가져와 도움이 되지만, 20세기 조립 라인만큼 노동 집약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버블 붕괴 우려도 제기


일각에서는 AI 투자 버블 붕괴 가능성도 경고한다. 팬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 올리버 앨런 선임이코노미스트는 "AI 투자 붐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진다면 경제 성장에 상당한 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고 AI 혁신가들은 이론으로 인간과 비슷한 인지능력을 가질 수 있는 알고리즘인 범용 인공지능 개발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AI 도구들이 과대광고에 맞먹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기업연구소 마이클 스트레인 이코노미스트는 AI"언젠가 우리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 믿지만, 단기로는 생산성에 순손실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현 시점에서 AI는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낮췄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서 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쿠시 데사이 대변인은 관세와 장비 구입 세제 혜택 등을 들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조업을 지원하려고 성장 친화 정책 조합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제약업체, 대만 반도체업체, 일본 자동차업체 등 여러 외국 기업이 미국 공장 건설을 약속했지만, 이들 투자가 현실화하려면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포스트는 전했다.

데사이 대변인은 "미국 제조업 우위는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지거나 잃은 게 아니다. 쌓아 올리는 데 수십 년간 집중 투자와 뒷받침하는 정책이 필요했고, 풀어지는 데도 수십 년간 느슨하고 무능한 정책이 필요했다"고 이메일로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