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측근' 수사 지지, '거리 민주주의'로 독재 저지
이미지 확대보기전쟁 중에도 터져 나온 1억 달러(약 1469억 원) 규모 에너지 인프라 복구 기금 횡령 사건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독립적인 수사를 지지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각)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2014년 마이단 혁명 이래 부패 척결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위해 싸워왔으며, 부패와의 싸움이야말로 러시아의 침탈 야욕에 맞서는 근본 이유임을 강조한다.
전쟁 중 터진 1억 달러 횡령 사건, 왜 절망 대신 희망인가
러시아의 공격으로 전국이 정전과 추위에 시달리는 상황에,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들이 국가의 핵심 에너지 기반 시설 복구와 방어 계약에서 1억 달러(약 1469억 원)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소식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절망할 수도 있지만, 외신분야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를 다행으로 보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하는 근본 문제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의 엄청난 규모의 부패와 이로 말미암은 모스크바에 예속된 처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시작됐다.
보도에 따르면, 부패는 1991년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가 이웃 국가를 견제하는 끈이었다. 러시아는 부패를 매개로 우크라이나의 안보 기관에 침투했고, 지도자를 조종했으며, 군대를 무력화했다. 이러한 '아나콘다식 흡수' 메커니즘을 위협한 것이 바로 유럽연합(EU)과 체결하려던 무역 및 연합 협정이었다. 이 협정 체결을 포기하는 대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야누코비치에게 150억 달러(약 22조 원)를 제시했다.
야누코비치가 EU 협정 서명을 거부하자 이른바 '마이단 혁명'이 일어났고, 그의 도주,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동부 우크라이나 하이브리드 전쟁 발발, 그리고 마침내 전면적인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체계적인 부패 속에서 형성된 관료들이 전쟁 중에도 돈벌이 방법을 찾았다는 의혹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횡령 의혹의 중심에 러시아와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정황이다.
우크라이나 국립반부패국(Nabu)과 전문반부패검찰청의 수사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안드리 데르카치라는 인물이 연루됐다.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 직후 모스크바로 도주했다. 그 이듬해(2023년) 우크라이나는 그가 없는 상황에서 재판을 진행해 반역죄를 적용했고, 2024년에는 러시아 의회의 상원의원이 됐다. 현재 그의 사무실이 횡령 자금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되고 있다
젤렌스키도 막지 못한 반부패 기구의 독립성
젤렌스키 대통령과 가까운 사업가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일 수 있다는 의혹도 보도에 나왔다. 젤렌스키와 공동 설립한 TV 제작사 '크바르탈'의 소유주인 티무르 민디치가 그 중심에 있다. 이 회사는 우크라이나의 만연한 정치 부패를 풍자해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만든 인기 드라마 '국민의 종'을 제작했다.
Nabu는 민디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나, 그의 재산을 수색했고, 우크라이나 언론은 그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수사 직전에 출국했다.
러시아 선전 매체와 여론 조작 세력은 이 사건을 두고 '우크라이나를 도울 가치가 없으며, 민주주의를 외쳐도 침략국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며 여론을 호도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놀라움은, 국가의 생사를 건 전력 및 난방 유지 노력에서 1억 달러를 빼돌리려 한 음모가 공식적으로 폭로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영 원자력 발전 회사인 JSC 에네르고아톰의 운영에 대한 15개월간의 수사 끝에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Nabu와 검찰은 2014년 마이단 반부패 시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강한 압력으로 창설된 독립적인 기관이다.
지난해 7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 기관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했지만, 전시 상황인데도 즉각적인 거리 시위가 발생하여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민의 반발은 대통령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번에는 젤렌스키가 Nabu의 수사를 지지하며 정부 기관의 협조를 명령했다. 그는 "유죄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EU 가입 후보국이 갖춰야 할 요건이다. EU 가입의 기준은 부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부패 척결을 위한 독립적인 사법부의 활동을 정부가 지지하는 데 있다.
국민의 분노가 지탱하는 '거리 민주주의'
검찰은 젤렌스키나 그의 고위 참모가 에네르고아톰 횡령 사건에 연루됐다고는 아직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Nabu가 1000시간 분량의 도청 기록을 확보했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 더 많은 폭로와 혼란이 예상된다.
보도에 따르면, 나토와 EU 내의 일부 국가들은 이미 사법부와 수사 기관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거나, 부패를 파헤치는 판사와 검사를 해임하거나 불신임하려 한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Nabu를 막을 수 없었는데,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장치가 핵심 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도자들이 선거를 조작하거나, 독립적인 법 집행기관 설립 같은 힘들게 얻은 성과를 되돌리려 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이 수백만 명 규모로 거리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에 바탕을 둔다.
물론, 이러한 국민의 직접 행동에 의존하는 방식은 헌법 질서로서 이상적이지 않다. 국가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현실이며, 독재를 막고 적어도 지금은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즉, 부패와의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는 국민의 강력한 의지가 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근본적인 저항 동력임을 시사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