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보고서 "中, 경쟁 넘어 '대체 질서' 구축 시도" … 기술·금융·군사 전방위 압박 韓, '전략적 모호성' 설 땅 없다 … 한미 동맹 '핵(核)·우주'로 확장하고 기술과 군사, 경제 부문의 독자 생존력 키워야
이미지 확대보기미 온라인 뉴스 매체인 악시오스(Axios)가 11월27일 보도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 연례보고서가 강조하는 핵심은, 베이징이 더 이상 기존 미국 중심 질서 안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진핑 체제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을 축으로 한 권위주의 블록을 엮어, 서방과 병렬적인 대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이 구상은 통상·기술·금융·군사·우주·사이버를 가리지 않고 전 영역에 걸쳐 작동한다.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을 금융·기술·정보 측면에서 떠받치고, 북한과 이란이 탄약·미사일·드론 공급망의 일부가 되는 구조는 이미 현실화된 네트워크다. 이 축이 공고해질수록, 미국과 유럽의 제재와 압박은 점점 더 우회되고 상쇄된다.
중국·러시아·북한 축의 공고화,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지형 변화
동시에 중국은 대만과 필리핀 주변에서 회색지대 공세를 통해 ‘힘의 사실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수천 차례의 군용기 진입, 필리핀 선박 괴롭히기와 해상 충돌은 모두 미국 동맹망을 시험하는 행동이다.
한반도 입장에서 보면, 이 흐름은 단순한 주변 소식이 아니다. 중국·러시아·북한이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엮일수록,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더 이상 “북한 단독 카르텔”이 아니라 “중·러가 뒤에서 조율하는 다자 구조”로 변한다. 한국이 북핵 문제를 미국과의 양자 공조만으로 관리하기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안보에 주는 함의: 다중 전선 시대의 ‘핵·우주·해양’ 압박
첫째, 북핵은 중국·러시아와 연결된 복합 억지 구조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평양의 군사·기술·외교적 안전판 역할을 할수록,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나설 유인을 잃고 핵전력의 체계적 강화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SCMP가 보도한 영변의 ‘핵 산업화’ 과정은 바로 이 흐름 위에 놓인다.
셋째, 우주와 사이버 영역이 새로운 전장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의 취약지점도 늘어난다. 미국이 우주군 예산 증액과 공격자 역할 위성 배치를 논의하는 것은, 중국의 위성 요격 능력과 전자전 능력이 이미 실전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은 군사·통신·금융·물류의 상당 부분을 우주·사이버 인프라에 의존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어·대응 능력은 아직 제한적이다.
한국 경제에 닥칠 전략·기술·공급망 리스크
중국이 주도하는 대체 질서 구상은 한국 경제에도 중층적 도전을 낳는다.
하나는 공급망 블록화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기술 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반도체, 첨단 장비, AI·양자 분야에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러시아·이란·글로벌 사우스와의 자원·에너지·인프라 연계를 통해 서방 제재를 상쇄하려 한다. 이 사이에 낀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조선·에너지에서 어느 쪽 질서와 더 깊이 엮일지 선택을 요구받게 된다.
다른 하나는 제재·보복 리스크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대중 기술통제에 적극 동참할수록 중국 시장과의 관계 악화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중국 요구에 지나치게 호응하면, 미국의 이차 제재 리스크가 불거진다. 러시아·이란·북한과 관련된 제재망이 촘촘해질수록, 한국 금융·물류·보험 시스템이 우발적 충격을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또한 중국·러시아·북한 축이 디지털 위안화, 비달러 결제망, 자체 결제 시스템을 확대할 경우, 한국은 달러·위안·원화 간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라는 새로운 금융 전략 과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의 대응 전략: 동맹을 축으로, 자립 역량을 기둥으로
이런 구조적 변화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대응 전략은 크게 세 방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한·미 동맹의 질적 업그레이드다. 단순히 확장억제 공동성명에 머무르지 않고, 핵·미사일·우주·사이버를 포괄하는 통합 억지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한·미가 공동 위기 시나리오, 전술·전략 자산 운용 원칙, 우주·사이버 방어 규칙을 사전에 조율할수록, 중국·러시아·북한 축이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서 모험주의를 시도할 여지는 줄어든다.
둘째, 한국형 전략 자산과 기술 기반 강화가 필요하다. 재래식 영역에서는 현무 계열 미사일, 천궁·L-SAM 같은 다층 방어체계를 고도화하고, 우주 감시·정찰·통신 위성, 군사 GPS 보정 체계, 사이버 방어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다. 경제 영역에서는 반도체·배터리·AI·양자·방산을 축으로 한 전략 산업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 간주하고, 미국·유럽·일본과의 공급망 연합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셋째, 중견국 외교를 통한 전략 공간 확장이다. 한국은 일본, 호주, 인도, 아세안, 유럽과의 다자 협력을 활용해 중국 견제의 부담을 분산시키고, 동시에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 필리핀·대만해협·남중국해 문제에서도 한국은 방관자가 아니라, 규범과 원칙에 기반한 입장을 분명히 하되, 직접적 군사 개입 대신 외교·경제·기술 협력으로 역할을 설계할 수 있다.
대체 세계질서의 시대, 한국은 어떤 편에 설 것인가
미 의회 자문기구의 이번 경고는 추상적 이념 논쟁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권력 재편의 윤곽을 보여준다.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을 축으로 한 권위주의 네트워크가 현실의 세력 구조로 굳어질수록, 한반도는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이 맞부딪히는 최전선이 된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중국이 주도하는 대체 질서에 부분적으로 편승해 단기적 경제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략 자율성을 잃어가거나,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삼되 스스로의 기술·군사·경제 역량을 키워 동맹 안에서 주체적인 파트너로 자리 잡는 길이다.
두 번째 길은 더 어렵고,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북핵, 미·중 경쟁, 러시아 전쟁, 남중국해 긴장이 한꺼번에 겹쳐 있는 오늘의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생존과 번영을 동시에 추구하려면 그 길 외에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다. 이번 보고서는 바로 그 현실을 직시하라는 신호에 가깝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