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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끝나가는 미·러 핵 통제의 시대, 중국 없는 핵 통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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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끝나가는 미·러 핵 통제의 시대, 중국 없는 핵 통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New START 곧 만료 이후, 미러를 넘어 중영불까지 포함하는 다극 핵 통제 질서 수립의 필요성과 그 조건은 무엇인가
중국이 수십 년간 핵융합 과학계를 괴롭혀온 플라즈마 밀도 한계를 실험으로 돌파하면서 실용 핵융합 발전소 건설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수십 년간 핵융합 과학계를 괴롭혀온 플라즈마 밀도 한계를 실험으로 돌파하면서 실용 핵융합 발전소 건설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사진=로이터

마지막 상한선이 사라지는 순간, 핵 질서는 다시 불확실성으로 돌아간다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 스타트, New START)이 만료를 앞두고 있다. 동 조약의 만료는 하나의 조약이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냉전 이후 수십 년간 유지돼 온 핵 억지와 통제의 마지막 제도적 안전판이 사라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 수를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호 사찰과 검증을 통해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는 장치였다. 핵 억지의 안정성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상대의 행동을 미리 가늠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이 확신이 사라지는 순간, 억지는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뉴 스타트 이후의 세계에서 핵무기는 다시 불투명해진다. 상한선은 사라지고, 사찰은 중단되며, 데이터 교환은 끊긴다. 그 결과 각국은 상대의 의도를 추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추정은 언제나 최악의 가정을 낳고, 최악의 가정은 군비 경쟁을 자극한다. 이 과정에서 억지는 안정 장치가 아니라 위기 증폭 장치로 변질될 수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미러 관계의 복원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신냉전기의 핵 질서는 더 이상 양자 구도가 아니다. 중국의 핵 전력 증강, 영국과 프랑스의 지속적인 핵 억지 유지, 그리고 지역 차원의 핵 연동 구조까지 고려하면, 핵 통제는 다극적 틀로 재설계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양자 통제의 한계와 다극 핵 질서의 현실

미러 간 핵 통제는 오랫동안 국제 핵 질서의 중심이었다. 냉전기에는 양측의 핵 전력이 압도적으로 컸고, 양자 합의만으로도 세계 핵 질서의 안정성을 상당 부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지난해 핵무기가 600기에서 1000기로 증가하는 등 핵 전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으며, 단순한 최소 억지 단계를 넘어 구조적 억지로 이동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독자적 핵 억지를 유지하며 유럽 안보의 핵심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러 간 상한선만 복원한다고 해서 핵 질서가 안정될 수는 없다. 오히려 양자 통제는 다극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새로운 불균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미러가 제한을 받는 동안, 다른 핵 보유국들은 제도적 구속 없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균형은 다시 미러로 하여금 제한을 무력화하거나 탈피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따라서 신냉전기의 핵 통제는 출발점부터 다극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문제는 이 다극성이 무질서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관리 가능한 안정으로 전환될 것인가다. 그 분수령이 바로 미러에 중영불을 포함하는 최소한의 다자 핵 통제 메커니즘을 구축할 수 있는지 여부다.

감축이 아니라 안정, 숫자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


신냉전기의 핵 통제는 냉전기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감축이 곧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감축보다 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안정이란 핵 전력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위기를 증폭시키지 않도록 관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복원돼야 할 것은 검증과 사찰이다. 숫자 제한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상호 검증과 정보 교환이 존재하면 오판의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 핵 억지는 상대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려 하지 않는지를 알 때만이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또한 신형 무기 체계와 경보 태세에 대한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 극초음속 무기나 핵과 재래식이 혼합된 운반 체계는 위기 상황에서 오판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무기들은 숫자보다 운용 방식과 사용 원칙이 더 중요하다. 핵 통제의 첫 단계는 이러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행동 규칙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중국을 포함하지 않으면 통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중국을 배제한 핵 통제는 더 이상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을 기존 미러 방식의 감축 체제에 그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의 핵 전력이 아직 미러에 비해 열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동일한 감축 의무를 거부해 왔다.

중국을 참여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은 감축이 아니라 동결과 투명성이다. 핵 전력의 급격한 증강을 제한하고, 일정 수준의 정보 공유와 위기 관리 규칙에 합의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게도 전략적 이익이 있다. 통제 틀에 참여함으로써 중국은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규칙 형성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강제적 사찰이 아니라 단계적 신뢰 구축이다. 완전한 검증을 한 번에 요구하기보다, 관리 가능한 수준의 투명성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갖는 결정적 의미


영국과 프랑스의 핵 전력은 규모 면에서 미러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이들 국가를 포함하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다자 핵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다.

특히 유럽 안보 차원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참여는 핵 억지의 연동성을 강화한다. 신냉전기에는 동맹의 자동성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다자 핵 통제 틀에 참여하면, 유럽 내부의 전략적 불안을 낮추고 정치적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참여는 또한 핵 통제가 특정 강대국의 이해를 넘어서는 보편적 규칙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는 비확산 체제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다극 핵 통제는 새로운 억지의 기반이다


신냉전기의 핵 통제는 억지를 약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통제 없는 억지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할 때, 통제는 억지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핵 억지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상대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미러에 중영불까지 포함하는 다자 핵 통제는 완전한 해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을 경우, 핵 질서는 무제한 경쟁과 오판의 영역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다극 핵 통제는 감축의 이상을 당장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통제의 언어와 규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핵 통제 공백을 방치하는 선택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뉴 스타트 이후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상한선이 사라지고, 검증이 중단된 상태에서 각국이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핵 억지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길이다.

신냉전기의 핵 통제는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존재해야 한다. 미러를 넘어 중영불까지 포함하는 다자적 틀은 핵 억지와 통제의 기반을 이어가는 최소 조건이다. 이 틀이 없다면, 핵 질서는 다시 공포와 추정의 영역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제 선택의 문제다. 통제의 불완전함을 감수하고 안정의 규칙을 복원할 것인가, 아니면 통제의 공백을 방치하고 불확실성에 의존할 것인가. 신냉전기의 핵 통제 질서는 이 선택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