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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러시아 상표권 6건 만료…브랜드 공백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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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러시아 상표권 6건 만료…브랜드 공백 현실화

삼성·기아는 신규 등록으로 복귀 채비, LG만 홀로 보호막 상실
연간 20조원 러시아 가전 시장 재진입 경쟁서 치명적 약점 우려
러시아 가전 매장.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가전 매장. 사진=연합뉴스


루자(Luga) 공장 굴뚝이 멈춰 선 지 3년이 넘었다. LG전자가 2006년 모스크바주에 세운 가전 생산 거점, 그 공장 부지 8만3000㎡는 지금도 'LG'라는 이름을 달고 서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법적으로 보호하던 상표권 6건이 올해 러시아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러시아 국영통신사 리아노보스티는 30일(현지시각) 러시아연방지식재산서비스(이하 로스파텐트) 자료를 인용해 'LG 일렉트로닉스 인크(LG Electronics Inc)'가 보유하던 '듀라 스킨 커버(Dura Skin Cover)', '듀라 커버(Dura Cover)', '듀라 가드(Dura Guard)', '듀라 스킨(Dura Skin)', '듀라 실드(Dura Shield)', '듀라 슈트(Dura Suit)' 등 6개 상표의 유효기간이 올해 중 모두 끝났다고 보도했다.

2015년 7월 신청해 2016년 승인받은 이 상표들은 텔레비전부터 스마트폰·태블릿·스마트워치까지 폭넓은 전자제품군을 아우르는 브랜드 방패였다.

갱신 포기의 무게 — 브랜드 공백이 부른 위험


상표권 만료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해당 브랜드명으로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소멸하는 것이며, 제3자가 유사 명칭을 선점하거나 위조품 유통에 악용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브랜드 관리의 핵심 공백이 된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경쟁사와의 온도 차다. 삼성전자는 최근 러시아에서 네오 큐엘이디(Neo QLED)·무빙 스타일(Moving Style)·스페이셜 사이니지(Spatial Signage) 등 텔레비전·모니터 관련 상표권을 잇달아 등록했다.

기아 역시 로스파텐트로부터 로고 형태 상표권 2건을 이달 승인받았고, 유효기간은 2034년까지다. 삼성과 기아가 러시아에서 '깃발 꽂기'에 나선 사이, LG전자만 홀로 브랜드 보호막을 거두어들인 형국이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러시아에서 가전 공장뿐 아니라 판매 채널도 정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다른 나라를 거치거나 병행수입 형태로만 일부 제품이 러시아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간 20조원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LG전자가 러시아 시장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배경이 있다. 숫자가 말한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는 러시아 가전 시장이 2023년 111억 2000만 달러(약 16조 원)에서 2029년 131억 8000만 달러(약 20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 1억 4000만 명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4400달러에 이르는 이 시장에서 LG전자는 전쟁 직전까지 냉장고·세탁기 분야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2021년 러시아와 인근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 LG전자가 거둔 매출은 약 2조 335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2.7%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2년 3월 공급 중단, 같은 해 8월 루자 공장 가동 정지 이후 이 매출은 사실상 증발했다.

러시아 전자 공시 사이트 오딧잇(Audit-it.ru)에 따르면 LG전자 러시아 법인 매출은 2021년 554억 루블(약 1조 원)에서 2022년 277억 루블(약 5200억 원)로 반 토막 났다.

그럼에도 LG전자는 루자 공장 설비를 매각하지 않고 유지해 왔다. LG전자 관계자는 "러시아 법인이 보유한 재고와 자재를 활용해 세탁기, 냉장고 일부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규제가 해제되거나 하면 다시 공장 가동 및 영업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채운 빈자리 — 복귀해도 험로


문제는 3년의 공백이 시장 지형을 바꿔놨다는 점이다. 25%를 웃돌던 삼성전자의 러시아 텔레비전 시장 점유율은 2023년 5% 수준으로 급락했고, LG전자의 세탁기·냉장고 점유율도 25%에서 사실상 판매 중단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중국 하이얼(Haier)·샤오미(Xiaomi)·하이센스(Hisense) 3개사가 러시아 텔레비전 시장을 나눠 장악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이 러시아 공장을 재가동하더라도 전쟁 전 수준까지 매출과 점유율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중국·튀르키예와 한국기업 사이에 기술 격차가 있는 만큼 만회할 기회는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도에서 상표권 공백은 LG전자에 이중 부담이 된다. 복귀를 결정하더라도 브랜드 재등록부터 다시 밟아야 하며, 그 사이 유사 명칭 선점 리스크까지 떠안게 된다.

삼성과 기아가 '상표권 깃발'을 꽂으며 종전 후 시장 선점 경쟁의 출발선에 선 것과 달리, LG전자는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상태다. 현재 LG전자 측은 이번 상표권 만료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