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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금 22t 팔아 재정 적자 90조 원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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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금 22t 팔아 재정 적자 90조 원 메웠다

전쟁·제재에 20년 쌓은 '황금 곳간' 열어… 재정난 장기화 우려
국내선 금 거래 350% 폭증… 루블화 약세에 개인 자산 피난처 된 금
러시아 중앙은행이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 약 21.772t의 금을 매각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중앙은행이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 약 21.772t의 금을 매각했다. 사진=연합뉴스
전쟁과 서방 제재라는 이중 압박 아래 러시아 중앙은행이 올해 들어 금 22t 가까이를 공개 시장에 내다 팔면서, 20여 년에 걸쳐 쌓아온 '황금 외환보호막'이 무너지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 금융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베트남 경제 매체 단치(Dân trí)는 지난 22일(현지시각) 모스크바타임스와 키트코뉴스(Kitco News) 등의 자료를 인용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 약 21.772t의 금을 매각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재정 적자는 3월 말 기준 612억 달러(약 90조5760억 원, 4조6210억 루블)까지 불어났다. 이는 러시아 재무부가 올해 목표로 잡은 연간 적자 한도 3조8000억 루블을 1분기에 이미 웃도는 수치다.

재정 구멍 막으려 '전략 자산' 내다 팔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이번 금 매각은 전통의 내부 자산 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모스크바타임스는 "그동안 러시아의 금 거래는 재무부와 중앙은행 간 내부 이전이 대부분이었다"며 "공개 시장에서 실제 매각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매각 시점도 눈길을 끈다. 단치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에만 30만 온스의 금을 온스당 5500달러(약 814만 원)를 웃도는 고점에서 처분해 14억1000만~16억8000만 달러(약 2조873억~2조4867억 원)의 예산 수익을 확보했다.

금값 상승 덕분에 1월 러시아의 금 보유 자산 가치는 오히려 23% 올라 4027억 달러(약 596조765억 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3월 들어 국제 금값이 12% 하락해 온스당 4466달러(약 661만 원) 선으로 내려앉자 상황은 달라졌다.

단치는 주식 플랫폼 셰어즈프로(SharesPro) 설립자 데니스 아스타피예프가 이즈베스티야(Izvestia)에서 밝힌 내용을 인용해, 달러 강세와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기조가 금값 하락을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서방이 러시아 해외 자산 약 3000억 달러(약 444조600억 원)를 동결한 상황에서 금은 사실상 마지막 유동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리덤파이낸스글로벌(Freedom Finance Global)의 수석 애널리스트 나탈리아 밀차코바는 단치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지출이 당초 계획을 크게 웃도는 상황에서 금을 재정 적자 보전에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 피남(Finam)의 니콜라이 두드첸코도 같은 맥락에서 "국방비, 에너지 비용, 루블화 환율 방어까지 모두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재정 적자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15조 루블(약 294조 원)을 넘어섰으며, 올해 단 두 달 만에 3조5000억 루블(약 68조 원)의 적자가 추가 발생했다.

국내 금 거래 350% 폭증… '동쪽으로 흐르는 금'


금 매각 압박과 맞물려 러시아 내부에서는 금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폭발하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흔들리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자산 방어 수단으로 금을 대거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치에 따르면 모스크바거래소에서 최근 한 달간 금 거래량은 42.6t으로 1년 전보다 350% 넘게 급증했다. 이 중 현물 거래가 14t, 스와프 거래가 28.6t이었다.

금액으로는 5344억 루블(약 70억 달러, 약 10조4742억 원)로 500% 폭등했다. 지난해 러시아 개인들이 사들인 금만 75.6t으로, 자국 연간 금 생산량의 25%를 흡수한 셈이다.

국제 시장으로도 금이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025년 상반기 러시아산 귀금속 광석의 중국 수출 금액이 전년 동기보다 80% 늘어난 10억 달러(약 1조 4800억 원)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팔라듐(38% 상승)과 백금(59% 상승) 등 다른 귀금속 가격 강세도 러시아 주요 광산 그룹의 수익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세계 5위 금 보유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 외환보유액은 약 8090억 달러(약 1196조7000억 원) 수준이며 금 비중이 47%에 이른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에너지 부문 수입이 전쟁 전 수준을 되찾지 못하고 재정 적자 폭이 계속 넓어진다면 추가 금 매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세계 최대 금 매수 주체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중앙은행이 공급자로 돌아선 만큼, 국제 금 시장의 수급 구조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