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바스프·에보닉, 이란전쟁 덕에 월 수익 55% 급증…"사재기가 실적 견인"

글로벌이코노믹

바스프·에보닉, 이란전쟁 덕에 월 수익 55% 급증…"사재기가 실적 견인"

호르무즈 봉쇄로 아시아·중동산 화학제품 유럽 유입 막히자 역내 생산자 반사이익
재고 소진 뒤 찾아올 '2단계 충격'…가격 전가 한계에 수요 붕괴 우려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 사진=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독일 화학업계가 이례적인 반등세를 누리고 있다.

독일 최대 경제일간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아시아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화학제품 공급이 끊기자, 원료 부족을 우려한 유럽 기업들이 독일산 제품을 앞다퉈 사들이며 바스프(BASF)와 에보닉(Evonik Industries)의 실적이 단기간에 크게 개선됐다고 보도했다.

"공장 가동률 70%대 → 전력 풀가동"…수혜 기업과 피해 기업의 극명한 엇갈림


아시아와 중동에서 화학제품을 싣고 유럽으로 향하던 선박 다수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서 유럽 화학제품 구매자들이 역내 생산자 제품 사재기에 나섰다. 이 흐름이 독일 화학 대기업들의 단기 실적을 끌어올리는 직접적인 동력이 됐다.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 분석에 따르면, 바스프의 월간 수익은 전쟁 이전 약 4억 5000만 달러(약 6646억 원)에서 4월에는 7억 달러(약 1조 339억 원) 이상으로 뛰었다. 에보닉의 월간 수익도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늘어 약 2억 3000만 달러(약 3397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S&P 글로벌 세계 석유화학 컨퍼런스에서 에너지 리서치 부문 수석인 짐 버크하드는 "3월 1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약 21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정제품, 즉 전 세계 공급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쳤으나 3월 한 달간 하루 약 1400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졌다고 버크하드는 밝혔다.

바스프 이사회 멤버인 아눕 코타리는 컨퍼런스에서 "아직 전체 파급효과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모두 그것을 예상하고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유럽에서 수입 압박이 줄어든 덕분에 예상 밖으로 순수익이 플러스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수혜 구조는 세 갈래로 작동하고 있다. 아시아·중동의 화학시설 일부가 피해를 입어 경쟁이 줄었고, 생산된 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유럽으로 나오지 못하며, 원료 확보에 나선 구매자들이 역내 생산자에게 몰린 것이다.

S&P 글로벌 에너지의 화학 컨설팅 전무인 제시 티제리나는 아시아에서 폴리에틸렌을 생산하는 변동비가 전쟁 시작 이후 두 배로 뛰었고 폴리에틸렌 가격 자체도 40~50% 올랐다고 밝혔다.

실적 수혜에 가세해 독일 기업들은 가격도 올렸다. 바스프는 가정용·산업용 세정제 원료 가격을 30% 올렸고, 에보닉도 가축·가금류 사료 첨가물 가격을 인상했다.

바스프 대변인 다니엘라 레헨베르거는 "단기 원료 확보는 마쳤으며 생산에 큰 차질은 없다"면서도 "현재의 높은 변동성과 불투명한 전황을 감안할 때 재무적 파급 효과를 지금 단계에서 수치로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2단계 충격이 온다"…재고 소진 뒤 수요 붕괴 경고


낙관론 이면에는 이미 경고등이 켜져 있다. 뉴 노멀 컨설팅 폴 호지스 회장은 "많은 기업이 원유와 제품 가격이 공급 과잉으로 계속 하락할 것이라 보고 저재고 상태로 위기를 맞이했다.

지금은 서둘러 재고를 채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유럽 화학기업들이 누리는 이 수혜는 고객들이 '지금 사자, 최대한 많이'로 돌아선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호지스 회장은 "사재기가 끝나고 나면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며 "2단계는 결국 높아진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최종 소비자들이 구매를 끊는 수요 파괴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급망 안팎의 취약성도 불균등하게 드러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베테랑 컨설턴트는 "자산 특성과 원료 유연성에 따라 결과가 극명히 갈린다"며 "코로나19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기업은 더 나은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단선적 공급망에 의존하는 기업은 타격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일 화학업계의 구조적 취약성도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 독일화학공업협회(VCI) 볼프강 그로세 엔트루프 전무는 "화학업계 연간 실적이 처참하다. 생산, 판매, 가격 모두 마이너스"라며 현황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VCI에 따르면 2025년 화학·제약 산업 전체 매출은 2196억 유로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고, 화학 부문만 따로 보면 3.8% 줄었다. 화학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72.5%에 머물러 채산성 기준을 밑돌았다.

유럽 화학산업 협의체 세픽(Cefic)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럽 화학 생산 능력의 약 9%가 폐쇄됐으며, 특히 최근 2년간 공장 폐쇄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독일과 벨기에의 암모니아 공장은 이미 이 기간 문을 닫은 바 있다.

전쟁이 끝나도 공급망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S&P 글로벌 에너지의 앤드루 닐 화학 글로벌 총괄은 "세계 각지에서 컨테이너 대란이 벌어질 것이고 이를 수습하는 데는 몇 달이 아니라 분기 단위 시간이 필요하다"며 "포스트 코로나 때와 같이 수요에도 큰 진폭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비료, 원유, 천연가스가 먼저 나오고 석유화학제품은 그 다음 순위"라고 덧붙였다.

독일 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충격파


이번 사태는 화학업계를 넘어 독일 거시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독일 경제에너지부는 이달 22일(현지시각) 발표한 봄철 경제전망에서 이란 전쟁 발 에너지 가격 충격을 반영해 202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0%에서 0.5%로 대폭 낮췄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1%에서 2.7%로 올렸다.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는 물가상승률이 단기적으로 3%에 바짝 다가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질 경우 상방 리스크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독일과 이탈리아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주요 경제국이 올해 안에 기술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경제장관은 "독일 경제가 완만한 회복 경로에 있었지만, 외부의 지정학적 충격이 다시 한번 발목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코메르츠방크의 수석 경제학자 요르크 크레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근무일 수 증가를 반영하면 사실상 0.3%에 불과하다. 이건 블랙제로(멈춰있는 상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봉쇄의 파장은 한국 산업계에도 직접 닿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3월 19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한국 제조업 평균 생산 비용이 11.8%까지 치솟는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주요 나프타분해설비(NCC) 업체들이 약 한 달 치 나프타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공급 불안과 원가 부담이 동시에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는 독일 화학기업들이 누리는 이 반짝 수혜가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착시일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재기 수요가 가라앉은 뒤에는 다시 에너지 비용 부담, 중국의 공급 과잉, 수요 위축이라는 3중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까지 공급망 다변화와 원가 구조 개선을 마무리하지 못한 기업은 더 가혹한 2단계를 맞이할 수 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